뮌헨의 오월은 라일락의 달이다. 산책길에도 이웃집 정원에도 보랏빛 일색이다. 우리 집 주변에서 라일락이 가장 많은 곳은 이자르 강변의 로젠 가르텐. 강변 산책로를 따라서 1km 남짓, 걸으면 15분. 행복은 이 15분 안팎에 있다.보라를 사랑하게 된 것. 핑크빛을 사랑하게 된 것도 라일락 덕이다. 오월이면 기다려지는 라일락 그 향기.
뮌헨의 로젠 가르텐에 핀 라일락 나무.(2022.5.6)
5월 어느 날. 보슬비 내리다 그친 늦은 오후였다. 로젠 가르텐은 텅 비어 사방이 고요한데. 진분홍, 핑크빛, 옅은 분홍, 연보라, 진보라, 청보라, 흰색까지 갖가지 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라일락의 향연을 즐긴 사람은 나를 포함한 산책자들 몇 명뿐. 하이라이트는 라일락 군락 옆에서 촉촉하게 젖은 잔디 위로 떨어진 꽃잎들로 수놓은 수채화를 감상하던 일. 꽃은 떨어져도 위엄을 잃지 않더라는 것.
뮌헨의 로젠 가르텐. 꽃사과나무?(2022.5.6)
저 핑크빛 꽃나무 아래를 걸은 적이 있지. 비는 내리지 않았지. 대신 여린 봄바람. 부드러운 스침. 그 바람에도 꽃잎은 흩날리고. 우수수수 실연당한 꽃잎들. 절망한 몸짓들 미련 없이 낙하하는 풍경이라니. 그 아래를 걷는 일이라니. 살아서 좋구나. 참 아름답구나. 말이 필요 없는 때가 있지. 고개를 들어 희고 고운 존재들이 나비처럼 날아서 무심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볼 때. 그런 순간의 존엄함. 저렇게 살다 저렇게 가고 싶어 진다. 바람처럼 꽃잎처럼.가볍게 가볍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