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시아는 오늘도 눈 뜨자마자 독일어 책을 찾는다. 독서광?그건 아니고 빨리 독일어 책을 읽어 치우고 짱구를 보고 싶겠지. 자식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부모로서의 기대가 착각이라는 아우라를 베일처럼 드리우기 때문이다. 그런 착각의 늪에서 탈출하는 일은 빠를 수록 좋다. 내 자식이 하는 일은 뭔가 특별해 보일 때 일단 의심해 보는 것도 훌륭한 자가 점검이 될 터. 이것은 세상의 부모가 겪는 일. 그들의 이모과 고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통과 의례이기도 하다. 그분들의 착각은 오래 갈수록 좋고 부모들의 그것은 짧을 수록 좋다.
부모가 자식에 대해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우리 모두 겪어본 일 아닌가. 그럼에도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아이들의 행동에 적절한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 적당히 봐주든 타협하든 금지하든 간에. 그렇지 못할 경우 나중에 호된 비용을 치를 수 있다. 그들이 사춘기를 지날 때. 심한 경우엔 다 커서까지. 어릴 때 알리시아의 막무가내 떼쓰기 앞에서 쩔쩔매던 내게 친구가 날린 일격은 정확했다. 그러다 애 망친다. 그 모든 것은 훗날 고스란히 부모의 몫이다. 초등 교사인 친구의 말이 맞다는 것은 아이가 자랄수록 동감했다. 그때 내가 친구에게 화가 난 것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형편 없는 아이의 떼쓰기가 엄마인 내 책임 같아서.
첫경험이란 어슬프기 마련이고 육아 역시 마찬가지란 것, 어느 부모 할 것 없이 그런 시행 착오를 거친다는 것을 몰랐던 시절 얘기다. 부끄러워 하거나 방어에 급급할 게 아니라 애들 먼저 키운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더라면 나았을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완벽한 부모가 되려는 부모들의 허영과 지나친 기대, 내 자식이 부족할 리 없다는 착각에 부응하느라 아이들이 두고두고 감당할 심리적 부담과 에너지 낭비를 줄여주는 것도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다.
에밀 아자르의 경우만 봐도 답이 나온다. 홀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며 투혼을 불사르다 전쟁터에서 살아돌아와 훈장까지 받았는데 목숨을 건 빛나는 훈장을 목에 걸어드릴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다면? 아들아 살아서 돌아와다오. 그의 작품 속에서 전쟁터로 날아간 200통이 넘는 편지 대신 실제로는 매일 아들을 위해 쓴 기도서만 한 권의 노트로 기다리고 있었다면?이 아들이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 역시 그랬다. 우리의 예상처럼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자식을 파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아는 일. 알리시아를 낳고 일찌감치 내가 좋은 엄마 되기는 틀렸다는 걸 알았다. 나는 누구보다 내가 소중한 사람이었다. 부모 자식 형제보다 나 자신이.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우리 숙모만 봐도 답이 나왔다. 대학에 들어갈 무렵부터 5년 정도 삼촌, 숙모와 같이 살았다. 마당이 있는 거꾸로 쓴 ㄱ자형 연립주택 1층이었다. 그때 함께 자란 사촌 동생 셋 중 막내 동생이 그 집에서 태어나 서른이 넘고 작년에 결혼도 했다.
그 시절 대학을 졸업하고 언니와 나는 직장을 다녔다. 둘 다 공무원이었다. 사촌 동생들 셋은 올망졸망 미취학 아동일 때였다. 손바닥만한 거실과 부엌, 방 두 칸짜리 연립에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하면 매직이 따로 없다. 거기다 화목하고 평화롭게 살았다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숙모 입에 들어갈 먹거리가 과연 있었겠느냐는 말이다. 철 없는 군식구였던 우리는 생활비 하나 보태드리지 않았다. 다섯 식구 살기에도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랬다.
세월이 흘러 동생들이 자라 큰 애와 둘째가 공무원이 되고 교사가 되었다. 올해 육십이 되신 숙모는 내게는 여전히 아름답다. 깡마른 몸이 소녀 같다.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숙모를 뵐 때마다 뭉클하다. 자기 속에 들어갈 것 죄다 자식 입에 넣어주고 틈만 나면 속엣것 모조리 빼내어 자식들 떨어지면 다치지 말라고 영롱하고 촘촘하게 허공에 그물을 짜는 거미의 헌신을 보는 듯하기에. 그런 사람의 마음을 저울에 달아보면 어떨까. 저울의 눈금이 꼼짝도 안 하겠지. 허공처럼 넓고도 한없이 가벼워서. 그런 분이 내 숙모다.
"오늘은 일찍 깼는데 꿈이 너무 재미 있어서 억지로 계속 잤어!"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아이가 묻지도 않는데 그런다. 이런 건
아이들이 커 간다는 증거다. 눈치가 늘고 분위기 파악도 해가면서 소위 늘푼수가 생겨가는 것을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아이가 남은 페이지 다섯 쪽을 마저 끝냈다. 150페이지 책을 스스로 다 읽은 것이다. 알리시아의 첫 독서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정확하게 1시간 15분 짱구 시청을 요구하는 아이에게 당연히 허락했다. 만 8년 엄마의 독서 열정의 한 획을 스스로 자축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