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누는 한밤의 대화

알리시아의 두 번째 독서

by 뮌헨의 마리


듣는 것보다 읽는 게 더 재밌어!


한밤에 잠도 안 자고 두 번째 책을 읽던 아이가 말한다. 파파와 해리 포터를 읽고 난 10시 이후의 일이다. 첫 책을 뗀 기념으로 새 책을 사러 갔다가 친구들이 재밌다고 말한 책을 서점에서 발견한 건 며칠 전이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재미있는 스토리와 대화가 많아 술술 읽힐 만한 책이었다. 제목은 <할머니의 인터넷 소동>.


"엄마! 듣는 것보다 읽는 게 훨씬 더 재밌어. 엄마도 해 봐."


저 말을 기다린 지 8년. 다만 엄마가 기대했던 한국 책이 아니라 독일 책이라는 게 다르긴 했지만. 그게 대수인가. 한국 책이든 독일 책이든 하나라도 먼저 터져주는 게 중요했다.
분량이 있는 책을 한번 독파하는 경험은 이래서 값지다. 책 사이즈가 작고 60페이지 정도의 단행본이라면 이삼일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어젯밤 아이는 40페이지를 읽고 스스로 흐뭇해하며 잠이 들었다.


"그래도 엄만 니가 읽어주는 게 더 재밌어."


아이는 아이 참, 쫑알거리면서도 신이 나서 계속 읽는다. 엄마가 열심히 듣나 안 듣나, 핸드폰을 보나 안 보나 가자미처럼 곁눈으로 감시까지 해가면서.


"엄마, 자꾸 핸드폰 볼 거야? 그러면 나 읽고 싶은 생각 안 난다. 날 사랑하면 핸드폰 꺼!"


아니, 책 읽고 있는 제 사진 찍느라 그런 건데. 엄마는 억울하다. 거기에 사랑 카드까지 들고 나올 건 뭐람. 입씨름해봐야 나만 손해지. 애 화를 키워서 좋을 게 뭔가. 이 늦은 시각에. 허둥지둥 변명 모드.


"아니야. 핸드폰 안 봤어. 너 사진 찍느라 그런 거지. 다 듣고 있었어."



사실은 못 들었다. 아이가 믿어주지 않는 건 당연한 수순. 눈치가 빤한 아이가 결정타를 날렸다. 그다음부터 이어진 모녀의 대화.


"그럼 '징거'를 말해 봐. 내가 뭐 읽었는지."


"'징거'가 뭐니. '증거'라고 해야지."


"그러니까 빨리 '징거' 말해보라니까. 엄마는 꼭 이렇게 내 기분 상하게 만든다니까."


"'징거'가 아니고 '증거'라니까. 따라 해 봐 '증거'!"


그래 봐야 엄마 게와 아기 게다. 경상도 엄마에게 'ㅡ'나 'ㅓ'는 모국어 사용시 여전한 애로 사항 중 하나다. 나는 바로 백기를 들었다.


"엄마 못 들었어. 미안해. 다시 읽어 줘. 부탁이야. 비테 비테 비테 Bitte, bitte, bitte. (please)."


이럴 때 백기는 빨리 들수록 좋다. 아이의 기분은 간지럼 태우기와 함께 순식간에 정상화. 그럴 때마다 엄마는 신기하다. 난 누가 간지럼 태우는 거 젤 싫은데.



p.s 다음 날 오전 아이는 남은 20페이지를 다 읽고 반나절을 짱구와 신나게 놀았다. 이 정도면 아이 독서의 팔할은 짱구의 덕이라고 봐야 겠다. 짱구를 보며 낄낄거리던 아이가 갑자기 내게 묻는다.


"엄마, 바다가 왜 짠 줄 알아?"


글쎄. 이런 질문은 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아니면 바다가 아니니까! 짱구한테 배운 거야!"


짱구야, 넌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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