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사과 파이 같은 압펠 슈트루델 쿠헨 Apfelstrudel. 따듯하게 데워 바닐라 소스를 듬뿍 끼얹어 먹는다. 다이어트에는 글쎄다.
카타리나 어머니 댁을 갈 때 꼭 챙겨가는 것은 쿠헨이다. 우리가 살 때도 있고, 시누이 바바라가 사 갈 때도 있다. 우리 어머니의 특별한 점은 자식들 중 누군가가 꽃, 음식(재료), 쿠헨 등을 사 오면 꼭 돈을 주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남편이나 바바라가 어머니를 위해 컴퓨터, 인터넷 뱅킹, 핸드폰, 기타 가전제품 수리 등 어떤 수고를 하면 꼭 그에 상응하는 경비를 주시거나 차 기름값이나 교통비라도 챙겨주신다. 늘 보는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놀랍다. 나는 정반대로 부모님이나 가까운 친척 어른들께 봉투를 챙겨드리는 문화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 것 같다.
이번에는 바바라가 스파게티 재료와 사과 쿠헨을 사들고 갔는데 비용을 후하게 쳐주셨다. 딸만 주면 안 되지. 우리 남편에게도 자세히는몰라도 무슨 무슨 명목으로 시누이와 똑같은 금액을 주셨다. 내 입에서도 절로 감사의 인사가 나올 정도. 물론 나와 아이에겐 아무것도 안 주셨다. 우리가 따로 준비한건 없으니까. 독일에서는 손녀라 해도 이유나 명목 없이 용돈을 주시진 않는다. 우리 시어머니의 경우는 그렇다. 아이가 시험을 잘 보거나 하면 주실 때는 있다. 우리 가족을 대신해 남편에게 주시는 거라 시누이와의 관계에서 보면 공평한 셈이다.
남편도 시어머니의 이런 모습에 엄마의 사랑을 느끼는 모양이다. 독일로 오기 전 남편은 시어머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오래전 시어머니가 이혼을 요구하셨고 그래서 가정이 깨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시어머니를 만난 건 남편이 열두세 살 무렵이었다. 지금 우리 아이 나이때였는데 아마도 남편은 정상적인 사춘기를 못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 새시어머니의 강한 성격을 삼 남매 중 남편이 유일하게 맞춰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본인도 친엄마보다 새엄마와 친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우리가 독일로 온 이후로 지난 5년 동안 미세한 지각 변동이 느껴진다. 친엄마가 만날 때마다 살갑게 용돈을 쥐어주시며 등을 토닥여 주시는데 돈은 마음과 동급 아닌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이다.특히 계산 없이 건네는 돈은 더더욱.내가 봐도 새어머니의 의문의 1패는 확실해 보인다. 다행히 본인은 모르신다.
삼월의 오후 빛이 비치는 카타라니 어머니 거실의 벽난로.
그날 카타리나 어머니는 점심을 드시고 우리 남편과 바바라와 마트 주차장 차량 접촉 사고 현장을 다녀오셨다. 오후의티타임 때는 오토 아버지의 침대 한쪽을 높인 후 두 분이 방에서 쿠헨을 드시는 사이 우리는 삼월의 봄햇살이 깊숙이 들어오는 거실에서 쿠헨을 먹었다. 점심 후 아포가토까지는 괜찮았지만 압펠 슈트루델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게 탈이었다. 작은 사이즈라도 삼겹만큼 두툼한 두께를 고려했어야 했는데. 거기다 바닐라 소스까지.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속이 거북했다. 요사이 내 정량이 평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걸 깜빡한 게 문제였다. 뮌헨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자르 강변으로 달려가 한 시간을 걷고 돌아왔다. 그제야 속이 가라앉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날은 저녁을 건너뛰고 싶었지만 남편은 끼니를 잘 거르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샐러드를저녁으로 먹고 있어 다행이었다. 이젠 샐러드 한 접시 만드는 건 일도 아닌 경지에 이르렀다. 전날 씻어서 물기를 빼고 통에 넣어둔 상추를 먹기 좋게 썰고 샐러드 볼 바닥에 2/3 정도 수북하게 깔았다. 그날의 재료는 마트에서 미리 익혀서 파는 붉은 비트와 아보카드한 개, 잘라놓으면 마치 당근과 구분이 어려운 생고구마를 길게 채 썰고, 위에는 짭짤하고 흰 페타 치즈를 깍둑으로 썰어 토핑으로 올렸다. 드레싱은 날이면 날마다 딜소스.신기하게도 남편은 질려하지 않는다.
샐러드는 매일 하다 보니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으로도 뚝딱 만들 수 있다. '오늘의 샐러드'처럼 일주일에 일곱 가지 레시피로 가볼까도 생각 중이다. 그날은샐러드를 만들다가 남은 생고구마와 아보카도와 비트 자투리만 먹고도나는 배가 불렀다. 삶은 계란 한 개는 아이와 반반 나눠먹었다. 아이는 비트가 싫네, 자기는 아보카도를 안 먹네 하더니 결국 다 먹었다. 생고구마는 안 먹을 줄 알았는데 고구마라고 안 밝혀서 그런가 당근인 줄 알고 먹은 것 같다(생고구마의 흰 즙이 암세포를 먹는다나 뭐라나. 믿거나 말거나지만 난 어렸을 적부터 생고구마를 광적으로 좋아했다. 그런데 왜 암에 걸렸지? 커서는 많이 안 먹어서? 독일 고구마는 비주얼도 괜찮고 생으로도 맛있는데 삶기만 하면 그냥 무 맛이 되었다..).
당근처럼 보이는 생고구마와 아보카드 밑에 깔려 존재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비트 샐러드.
거북한 속을 달래느라 이자르 강을 산책하고 돌아오며 쿠헨과의 이별을 결심했다. 다이어트에도 안 좋고 건강에도 도움이 안 되는 걸 왜 먹었는지. 더구나 암환자인 내가. 그날의 아포가토(아이스크림 한 스쿱과에스프레소 한 잔)는 봐주기로 했다. 평소 먹을 일이 거의 없기도 하고 그날의 만족감이 너무 컸던 탓이다. 요즘은 커피나 맥주나 와인은 잘 안 마신다. 남들이 안 좋다고 할 땐 이유가 있는 법이라서. 그날 우리가 떠나기 전에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전하셨다. 쿠헨을 드시면서 오토 아버지가 여름 한국행 비행기 티켓값을 물으시더라고. 오잉, 이건 뭐지? 비행기표를 사주시겠다는 뜻인가? 자꾸 받다 보니 뭐든 김칫국부터 마시는게 습관이 된 거 같다. 모든관계의 국룰은 기브 앤 테이크인데말이다.
PS. 어머니 댁에서 먹은 샐러드 하나. 건강을 중요시하는 바바라의간단 레시피다. 토마토 큰 것, 방울토마토(둘 다 짭짤이!)를 먹기 좋게썰고, 자주색 양파는 얇게, 파슬리는 송송, 드레싱은 간단하게 올리브 오일과 소금과 레몬즙. 맛은 대박이었다!(딜소스가 신 맛이 강해서나한테는 이 드레싱이 더 입에 맞았다.)아, 이러다 내 몸이 깨끗해도 너무 깨끗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