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사월에 눈 덮인 산을 다녀왔다

뮌헨에서 등산하기

by 뮌헨의 마리
눈 덮인 슈피징제 Spitzingsee의 로스코프 Roßkopf 산.



아이의 2주 부활절 방학 끝났다. 다음 방학은 5월 말 핑스턴. 그때도 2주 방학이다(독일은 중간 방학도 통 크게 2주씩이나 한다! 아이는 벌써부터 날짜를 세고 있다). 실은 나도 남몰래 핑스턴 방학을 기다리는 중이다. 아이와는 다른 이유로. 부활절 방학 마지막 주말에 등산을 다녀왔다. 한국슈퍼에서 같이 일하는 J언니의 등산 모임에 따라갔다. 그 모임의 멤버분들이 얼마나 대단하시던지! 무려 연세가 60세~80세였다. 그날도 50대인 나보다 젊은 사람은 두어 명뿐인 것 같았다. 거기다 거의 모두가 등산의 달인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 '리스펙'이겠지?(참고로 이분들은 매주 등산을 다니시는데 분은 독일 남편분들과 같이 오신다.)


J언니가 이 등산 모임을 소개할 때부터 가보고 싶었다. 그렇잖나. 등산이라는 게 여행과 비슷해서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혼자서는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그랬다. 한국도 아니고 독일에서 내가 산을 어떻게 알겠나. 가벼운 등산은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체력도 기르고 신선한 공기도 마실 수 있으니 일석이조. 그런데 문제는 우리 남편이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가족 등산을 간 지도 오래전이다. 아이도 등산을 좋아하는데 내가 아는 곳이 있어야지. 등산 모임에 따라가 보고 싶었던 이유다. 가 본 곳을 잘 기억했다가 아이와 남편과 가고 싶어서.



여기가 슈피칭제 Spitzingsee. 여기서부터 걸어올라감.



그날의 목적지는 뮌헨의 남쪽 로스코프 Roßkopf라는 산이었다. 뮌헨 중앙역에서 토요일 오전 9시에 슐리어제 Schliersee(슐리어 호수)로 가는 기차를 탔다. 뮌헨에서 슐리어제까지는 1시간, 술리어제 역에서 다시 버스(9562번)를 타고 슈피칭제 Spitzingsee(슈피칭 호수)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렸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걸어가니 슈피칭제 호수가 나왔고, 호숫가를 빙 돌아 산 위로 올라갔다. 세상에, 춘삼월도 아니고 춘사월 중순에 눈을 보았다. 신기했다. 며칠이나 내렸는지 등산길도 온통 눈세상이었다. J언니가 빌려주신 스틱이 없었다면 고생깨나 했을 같다. 눈은 내리고 발은 눈에 푹푹 빠지고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이었으니까.


드디어 중턱 휴게소에 도착. 총 13명이 갔는데 나와 몇 명이 마지막에 도착하자 거기서 각자 준비해 간식을 먹었다. 나는 다리도 아프고 호흡도 가쁘고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다. 아침을 안 먹고 간 게 실책이었다. 아침에 급히 나오느라 보온병과 사과 한 개와 작은 오이 두 개만 챙겨 온 게 다였다. J언니가 사 오신 송편을 세 개나 얻어먹고 나서야 조금 것 같았다(그렇게 쫄깃하고 맛있는 송편은 처음이었다! 평소 떡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간식을 먹은 후에도 눈발이 그치지 않아서 나를 포함한 희망자 다섯 명만 휴게소에 남고, 전문가급 여덟 분은 더 올라갔다 내려오기로 했다. J언니도 당연히 그쪽에 속했다. 나는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왕초보가 무리를 하면 꼭 민폐를 끼치게 되니까.



산 중턱의 휴게소 겸 레스토랑.



창밖에는 계속 눈 내리고. 알프스가 생각나는 스위스풍의 긴 식탁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뜨거운 수프와 특이하게 돌려 깎아 갓 튀겨낸 바삭하고 고소한 감자튀김을 나눠먹으며 산에서 돌아올 분들을 기다리는 시간은 달콤했다. 이런 즐거움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마침내 그분들 도착. 힘들거나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베테랑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나도 언젠가 저런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그러나 산에까지 와서 욕심은 금물. 마음을 비우고 남편과 아이에게 카톡으로 눈 풍경을 보냈다.


내려오는 길은 즐거웠다. 한겨울에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길이라 했다. 올라갈 때와 다른 길이라서 더 좋았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눈이 더 쌓인 것 같았다. 앞사람의 발자국을 놓칠세라 부지런히 스틱을 움직인 덕분에 미끄러지거나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내려왔다. 내려올 땐 가장 연세가 많으신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젊을 때부터 다양한 운동을 해오신 분이었다. 거기다 등반 경력 사십 년이 넘으시다고 하니 건강은 말해 무엇하랴. 연세가 팔순이신데도 몸이 날렵하시고 자세가 곧고 얼굴에는 주름도 없고 피부가 맑고 고우셨다. 새삼 존경심이 다시 한번 새록새록 샘솟았다. 저만치 산 위에는 하얀 눈으로 뒤덮인 크리스마스트리들이 호위병처럼 둘러서서 하산하는 우리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렇게 사월의 설산을 다녀왔다. 5월 말 핑스턴 방학 때도 등산 계획이 있다고 해서 따라나설 생각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오월의 산은 어떤 모습일까. 나의 등산 역사도 이렇게 시작되는 아닐까. 상상은 자주 현실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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