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칠란드 티켓(49€)으로 등산 가기

뮌헨에서 등산을 시작하다

by 뮌헨의 마리
저 꼭대기에 노이로이트 Neureuth 산정이 보인다. 다 왔다!



"네? 항암을 다시 해야 한다고요?""


4월 초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이달 초에 정기 검사를 받았다. 가슴뼈 전이 때문에 석 달에 한 번씩 맞는 뼈주사와 함께. 가슴뼈는 전이 이후로 조금 커진고는 2년째 통증 없이 잘 관리되는 중이다. 뼈전이가 통증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첫 뼈주사를 맞은 이후로 통증이 사라졌으니까. 항암을 시작한 지 2년째인 나는 두 개의 전이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가슴뼈, 두 번째는 림프절. 첫 항암 후 왼쪽 어깨가 부어서 조직 검사를 하니 림프 전이라 해서 방사선 치료를 받고다. 작년 가을 다시 복부에 림프 전이가 왔을 때도 항암과 방사선 치료로 나았다. 크게 힘들지 않아서 그때는 일도 했다. 경우 항암 치료가 부작용이 없이 수월한 편인데 방사선 치료도 힘들지 않고 지금까지 효과도 좋았다.


올봄에는 오른쪽 복부에 뭐가 보여서 다시 방사선 치료를 했다. 척추뼈에 붙은 근육이 커진 것 같다는 방사선과 소견에 따라 CT와 MRI를 찍고 방사선을 시작했다. 치료 전부터 아프기 시작한 허리가 방사선 치료 열흘 만에 마법처럼 사라지는 경험을 하고는 방사선아, 고마워! 절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난데없이 암센터 쪽에서 방사선 치료 후 달 만에 검사에서 CT상 효과거의 없는 것 같다는 소견이 나왔다. 왜? 난 효과 만점이라고 느꼈는데. 그럼 어쩌라는 말씀인지? 방법은 다시 항암을 해야 한다고. 그것도 첫 항암처럼 18주씩이나! 아이고..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여름에 한국도 못 가겠네? 애한테는 어떻게 말하지? 소리없이 이어지는 물음에 남편도 나도 한동안 말을 었다.



우리 인생길의 노란 표지판 같다. 가장 가까운 노이로이트 Neureuth만 보고 걷기로.



이틑날은 공휴일인 아버지 날이었다. 독일은 올해 5.18일이 아버지 날이었는데 가톨릭의 어떤 날과 겹쳐서 해마다 쉰다. 원래 이날은 남자들끼리 모여 술도 마시고 맘껏 노시는 날이란다. 참 마음에 든다. 그런데 '이 집 아버님'은 함께 노실 친구가 없으신지 가족 등반에 동참하기로 했다. 병원에서 다시 항암을 하든 하든 무조건 등산! 이렇게 등산이 나의 새로운 셀프 항암법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매주 가고 싶지만 아이의 의견을 반영해 매달 1회 가족 등반을 하기로 했다. 매달 1~2회는 다른 팀들과 가면 되지. 팀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고 그것도 안 되면 혼자라도 간다. 이것이 내 결심의 요지였다. 그사이 체력이 꽤 좋아져 산책만으로 조금 부족하다 느끼던 터였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있잖나. 암에 걸리면 무조건 산으로 가라. 그 말에 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산소와 저체온은 암이 좋아하는 환경이니 이것을 동시에 잡는 게 등산 아니겠나. 거기다 체력 키우지, 스트레스 날리지, 일석사조. 근처에 산만 있다면(운 좋게도 독일엔 평지가 많고 산이 적은데 내가 사는 남쪽 바이에른만 알프스 산자락이라 산이 있다).


목표는 테게른제 Tegernsee 호수로 정했다. 거기에도 산이 있어서. 맨 꼭대기 산장인 노이로이트 Neureuth까지 오르는 게 첫 미션이었다. 사람들이 좋다고 추천도 했고, 1시간 반 정도로 산행 시간이 길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첫날 난 오르는데 2시간, 하산할 때는 스틱 짚고 1시간이 걸렸음. 힘들어도 좋았음). 가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30도쯤 경사길인 것도 널 위해 준비했어! 그런 느낌이었다. 꼼수는 이랬다. 남편과 애랑 가 본 코스가 맘에 들면 여럿이든 혼자서든 다시 갈 수 있겠지. 기대와 바람과 희망은 현실이 되었다. 뮌헨 중앙역에서 테게른제까지는 30분마다 기차가 있다(소요 시간 1시간). 예전 같으면 27유로짜리 바이에른 티켓을 사야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도 없다. 독일에 사는 우리에겐 <월정액 49€ 도이칠란드 티켓>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겐 유레카! 를 외칠 일이다. 등산을 결심하자마자 올해(2023년) 5월부터 뮌헨은 물론 독일 전역을 값싸게 갈 수 있는 티켓이 나왔으니까(물론 빠르고 비싼 기차 3종 세트(IC/EC/ICE)만 빼고. 뮌헨에서 잘츠부르크까지도 이 표로 갈 수 있음). 단순 계산법으로 두드려봐도 한 달에 두 번만 등산을 다니면 남는 장사 아닌가. 대중교통으로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 우리 가게의 J언니처럼 뮌헨 외곽에서 출퇴근하시는 분들, 대학생들, 외국인들, 기차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딱이다. 독일은 관대하다. 누구나 살 수 있다. 기차만 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표 하나로 독일 어디서든 대중교통(버스/트람/지하철/지상철)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이게 가능한 일인지? 이럴 때 정말 독일이 좋다(여행객들도 살 수 있나?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당연하지! 남편이 당연한 듯 대답했다. 하나 아쉬운 점은 아이들 무료 동반은 불가. 아이들은 따로 표를 사야 함. 애한테도 49유로 티켓을 사주고 등산을 2번 가나 마나 고민 중..).



아버지 날은 날씨가 흐리고 추웠다. 계속 저런 느낌의 경사길이다. 걸을 땐 힘들어도 걷고 나면 성취감을 준다.



아이에겐 산 위에서 항암 소식을 알려주기로 했다. 살아보니 매는 어떤 종류건 빨리 맞는 게 최고더라. 올라갈 때 나는 힘들었고, 아이와 남편은 잘 갔다. 언젠간 그들과 같은 속도로 걸을 날도 오겠지. 아버지 날을 맞아 올해엔 선물도 카드도 준비를 못했다. 살 경황도 받을 경황도 없었다. 아이도 깜빡했고. 어머니 날엔 이틀 동안 그림을 두 개나 그려주더니. 하나는 연습용, 하나는 완성작으로. 다행히 그런 일에 흔들릴 쪼잔한 아버님은 아니었다. 나는 그날 아침부터 실내 자전거를 탔다. 이런 일은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가족 등반 1일이 바람직한 계기가 되어주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책을 읽거나 음악도 듣고 글도 쓰고 유튜브 동영상도 본다. 아무것도 안 하면 정말 지루하기 때문이다. 경험상 30분이 지나면 몸이 따뜻해져 온다. 목표는 45분에서 1시간. 그것도 매일. 아버지 날에 내가 남편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


아이에게는 남편이 말했다. 보통 이런 경우엔 내가 하는데 그날은 남편이 총대를 멨다. 노이로이트 Neureuth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났을 때였다. 이러저러해서 엄마가 다시 항암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항암이 길어서 한국행을 포기할 수도 있다. '넌 혼자라도 갈 수 있다'는 희망의 단서를 달기도 전에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직 아기구나. 키는 커서 엄마만 한데. 아이가 울어서 다행이었다. 이런 걸 꾹꾹 누르거나 참으면 애나 어른이나 병이 된다. 하산하는 길에 아이는 우리랑 떨어져 저만치 혼자 앞서 내려갔다. 그래도 중간에 자주 멈춰서서 엄마가 잘 따라오나 안 오나 살피고 기다려주었다. 이때쯤 이 집 아버님은 갈 길이 먼 지 제일 앞에서 앞장서서 걸어내려가고 있었다. 남편과 떨어져 걷기 전 남편이 걱정스럽게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 말. 오늘 타이밍이 별로였나? 자기가 말을 잘 못 했나? 둘 다 아니라고 했다. 이럴 때 적절한 타이밍이란 없다고. 말을 하는 순간이 베스트 타이밍일 뿐. 듣는 쪽이나 말하는 쪽이나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잘 설명했다고 남편을 칭찬해주며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오히려 자연 속에서 말한 게 다행이었다. 아이는 마을 입구까지 내려오자 벌써 마음이 안정됐는지 엄마를 기다리며 민들레 꽃씨를 입으로 불고 있었다. 아직 애기 맞구나! 가슴속으로 한 줄기 안도의 바람이 지나갔다.



테게른제 Tegernsee 가까운 마을로 내려오자 마음도 가까워지고.



등산을 다녀온 다음날에는 방사선과 상담 예약이 있었다. 방사선 치료 후 의사와의 면담이었다. 남편도 함께 갔다. 면담 전에 이미 암센터에 들러 담당의인 마리오글루 샘과 곧 항암을 시작하자는 얘길 끝내고 왔기에 마음은 담담했다. 하면 하는 거지. 타이밍이 안 좋긴 하지만 세상에 항암을 하기 좋은 타이밍이란 없지 않은가. 남편이 곁에 있어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았다. 암센터에서 그렇게 판단했을 땐 이미 방사선과와 합의가 있었다고 보았기에 별다른 얘기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거기다 다시 항암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이 꽉 차서 다른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날 여의사는 나와 방사선을 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면담이 끝날 즈음 그녀는 내 복부와 허리 부분을 살피며 피부가 어둡게 변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곧 항암을 시작한다는 얘길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행운을 빈다고 했다. 표정이나 말투에 감정이 실리지 않는 타입이었다. 나는 고맙다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면담을 마치고 나오자 남편이 말했다. 저 샘은 암센터 담당 샘과 전혀 다른 소견을 말하던데? 뭐라구, 난 왜 못 들었지, 뭐라고 하셨는데? 그 여의사는 방사선 치료가 효과가 있는 걸로 본다고. 그리고 방사선 치료 결과는 한 달 만에 나오는 게 아니고 지금도 방사선의 효과는 계속되고 있다고 했단다. 그 순간 심봉사가 개안하듯 세상이 밝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정말? 진짜 저 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 아, 기억난다. 그래서 우리 남편이 물었구나. 선생님도 혹시 암센터 회의에 들어가셨냐고. 거기서 그런 의견을 말씀하셨냐고. 그녀는 자기는 안 들어가고 아마 그날 근무자였던 그녀의 동료가 회의에 참석했을 거라고 했다. 아, 이건 우리에게 너무 좋은 소식 아니야? 했더니 남편이 당연하지!로 받았다. 일단 남편을 집에 보내고 자연요법센터에 예약된 열치료를 받고 나오자 남편이 전화를 했다. 남편이 전하길, 암센터의 마리오 글루 샘이 전화를 주셨고, 당장 항암은 안 하고 암센터에서 회의를 해서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단다. 방사선과 여의사가 마리오 글루 샘께 직접 전화를 드린 것이다. 주가 지나 다음 회의 결과를 직접 들은 건 나였다.


"프라우 오, 회의 결과를 알려드릴게요. 우리는 프라우 오의 방사선 치료 결과를 두 달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항암 여부는 그때 다시 검사 후 결정하기로 합시다."


사람 간 떨어지게 만든 마리오 글루 샘이 원망스러웠냐고? 천만에, 그럴 리가! 너무 고마웠지. 사람이니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잖나. 샘 개인의 판단 미스도 아니었을 거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 내가 암인가, 하는 질문이 부질없는 것처럼. 또 한 번 행운의 여신이 내 편에 섰다는 생각뿐. 그때까지 최선을 다할 뿐. 그래서 다시 등산! 지난 토요일에도 갔고, 오늘도 간다. 가족들과 첫 등산을 갔던 곳으로. 오늘은 2주간 독일 학교 핑스턴 방학이 시작되는 월요일이자 공휴일이다. 아침 일찍 실내 자전거를 1시간 타며 워밍업을 하고 출발할 생각이다. 두 번째 갔을 때도 역시 힘은 들었지만 처음보다는 훨씬 나았다. 삼세번이니 오늘은 더 낫겠지. 날씨도 좋다!



테게른제 Tegernsee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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