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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는 뭘 먹지?

군고구마에서 팥빙수까지

by 뮌헨의 마리
저런 카페도 있더라! 군고구마와 아메리카노(위). 한여름의 복숭아. 한여름 참외 한 소쿠리는 만원(아래).



부산에도 다녀왔다. 엄마와 언니가 서울로 온 이후로 한국에 오면 부산은 한번 다녀오는 곳이 되었다. 제일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곳인데. 부산에 가기 전까지는 폭염 때문에 름이 넘도록 서울에 여있었다. 강제 휴식 낌이랄까. 무더위와는 별개로 서울에서는 한가한 날들이었다. 아침에 눈 뜨면 과일 한 조각(사실은 한 접시!). 가까운 공원에 가서 언니와 맨발로 걷기. 처음엔 양말을 신고 걸었다. 발바닥이 아파서. 공원엔 나무가 무성해서 그늘이 좋았고, 개미들이 줄지어 다니 곳만 잘 피하, 모기는 이 없었다. 누군가 비로 쓴 흔적이 있는 정하고 반질반질한 흙길을 맨발로 걸을 때의 기분이란. 돌아올 때는 햇살이 따가워 양산을 들었다. 어느 날은 산책 후에 과일 가게에 들렀다가 군고구마를 파는 <청자 다방>이라고 푸른색 간판을 보았다. 팔월 아침에 청자 다방에서 사 온 달달한 군고구마로 런치를 먹는 호사를 누렸다.


부산 가기 전 서울에서는 루 한 끼 점심만 챙겨 먹었다. 엄마 집에서 먹거나, 찾아오는 친구와 식당에서 먹거나, 엄마를 모시고 동네 맛집 갔다. 그때만 해도 8월 중순까지 워서 동네 골목에 밥 먹으러 나가는 만으로도 치고, 밥 먹으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냉동고 같은 카페를 찾아 몸을 식혀야 했다. 국의 폭염이 이 정도였나 새삼 놀랐다. 더위에 출근하고 일하는 사람들에겐 미안한 마음. 시 2주가 지나 부산을 거쳐 서울로 오니 어느새 9월. 바람도 열기가 조금 빠졌다. 처서 매직은 석이 된 것 같았다. 처서 지난 지도 열흘이 되어가니 아침저녁으로 더위가 수그러질 만도 했. 서울에서는 저녁 약속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점심때 만났고, 배가 고플 일도 없어서 저녁에는 과일이나 김밥 한 줄을 나눠먹고 언니와 책을 나갔다. 아보니 서울에서 하이라이트는 침저녁으로 언니와 걸은 맨발 걷기였다. 거기에 팔월의 폭염 속에도 몇 번이고 찾아와 준 친구들 Y와 E와 J언니. 두 번이나 만난 또 한 명의 소중한 언니와 언제 봐도 어제 헤어진 듯 변함없던 연지맘. 그 만남들이 내겐 울에서 핫하다는 소금빵과도 같은 시간이었. 산책 후 먹던 수박과 복숭아와 참외 맛은 말해 무엇. 한국의 름 맛.



너무 맛있었던 솥밥! 저 단순함에 반했다. 나는 차돌된장, 아이는 비빔밥. 먹고 나서 숭늉까지(위/가운데). 가운데 오른쪽은 꼬리곰탕. 아래는 전과 쭈꾸미와 살얼음 동동 묵사발.



한국에서는 덥다고 차고 매운 음식을 자주 먹어서인지 가끔 탈이 났다. 독일에서도 김치찌개는 자주 먹는 편인데 독일보다 자주 먹기도 하고 맵기의 강도가 달라서 그런 모양었다. 그렇다고 한국까지 와서 매운 음식을 포기할 수가 있어야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서울에 와서 마지막 외식은 엄마와 했다. 심사숙고 끝에 가마솥에서 끓여냈다는 뽀얀 국물이 일품인 설렁탕과 부드러운 수육으로 정했다. 딱딱한 걸 못 드시는 엄마에게도 최적의 메뉴였고, 나 역시 설렁탕이나 꼬리곰탕류를 좋아했다. 큰 고모댁 사촌 언니가 서울로 와서 사 주겠다는 점심을 내가 꼬리곰탕으로 정했을 정도. 그렇게 두 번을 먹고 왔다. 엄마집 근처의 다른 식당이었는데 둘 다 맛있었다. 꼬리곰탕은 차분하게 사진을 찍고, 설렁탕과 수육은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먹느라 사진은 었다. 그만큼 맛있었다는 거지. 2년 전에 왔을 땐 하루 걸러 먹던 샤부샤부를 이번에는 한 번도 안 먹었다. 생각이 안 나서. 대신 K언니 덕분에 채선당 가마솥밥을 알게 된 후 두 번나 먹고 왔다. 부산역에서 삼촌과 사촌동생과 한 번. 서울에서 언니와 아이와 또 한 번. 먹어보고 반했다. 그 소박함과 단순함에. 그 가성비에. 지금도 각난다, 그리운 그 솥밥.


친구 Y가 차로 청계산 자락까지 데리고 가서 사 준 주꾸미도 있다. 주꾸미를 먹어보고 싶었기에 Y집 앞의 보리밥집을 포기하고 간 맛집이었다. 짜로 매웠다. 예전보다 매운맛이 덜하다고 했는데도. 그래도 맛있었다. 불맛까지 나서 더 맛있게 먹었다. 심심한 콩나물과 먹으니 어찌나 궁합이 좋던지 이런 콩나물을 독일 가면 못 먹는다 생각하니 슬퍼질 지경. 살얼음이 동동 뜨는 묵사발까지 나오고 고소한 전도 빠지지 않았다. 묵을 좋아하진 않지만 묵과 두부는 위대한 발명품 같다. 도토리와 콩으로 어떻게 저런 먹거리를 생각해 냈을까. 부지런하신 분들. 토리 줍는 분들. 그래도 람쥐가 겨우내 먹을 남겨 두시지?



저 갈치를 내년부터는 한국에 가도 못 먹게 되는 건지!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아이가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먹은 건 합정역의 어묵이었다. 떡볶이도 좋아하는데 그날은 배가 부르다며 어묵만 두 개 먹었다. 먹어보진 않았지만 그 집에서 매운 어묵도 처음 보았다. 아이가 어묵을 먹는 동안 나는 어묵 옆 과일 가게에서 성주 참외를 한 소쿠리 샀는데 한 소쿠리에 만 원이라는 꽤 정겹게 껴졌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먹은 건 엄마의 집밥이었다. 일본 방사선 오염수 논란이 한창일 때라 다시 한국에 와서 이렇게 맛있는 갈치를 못 먹게 되는 건가, 생각하니 억울하기만 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생선을 못 먹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 많은 어촌과 어부들과 해녀들과 횟집들과 수산 시장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울에서 선구이 만큼이나 자주 먹은 건 엄마표 콩나물. 그리고 큰고모댁 사촌 언니가 직접 기른 채소로 담은 깻잎 장아찌와 담백한 백김치.


날씨 때문에 서울에서 팥빙수도 자주 먹었다. 팥빙수는 뭐니 뭐니 해도 팥이 들어간 오리지널을 먹어야 제 맛이지. 바닥에 콘플레이크 같은 걸 깔면 반칙. 고명으로 인절미나 찹쌀떡 같은 걸 올리기도 하고 눈꽃 빙수 위로 콩가루를 뿌리기도 하던데 나는 얼음에 팥이 듬뿍 든 게 최고였다. 어묵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짐을 싸려고 는데 또 아이가 팥빙수 대신 할머니 댁 옆 카페에서 팥 통통 스무디를 먹고 싶다고 했다. 아이는 먹고 싶은 것도 많았다. 더위 때문인지 나는 먹고 싶은 게 별로 없었는데. 아이와 함께 카페에 앉아 한국에서 마지막 루이보스 차를 마셨다. 따듯하게. 마지막 맛은 따듯해야 하니까. 가슴에 가득 담고 양손에 넘칠 듯 들고 가는 기억들처럼..



여름날 팥빙수(위). 팥 통통 스무디와 루이보스 차(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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