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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an 08. 2024

배추김치를 담그다

새 항암 준비

1년 반 만에 직접 담근 배추김치. 맨 아래엔 무, 가운데는 잔파, 맨 위는 배추. 사진에는 양념 범벅처럼 보이지만 설렁설렁 무쳤다.


김치를 담갔다. 배추김치를 직접 담근 게 얼마만인지. 하도 오래전이라 기억도 안 난다. 그동안은 사 먹었다. 뮌헨의 한인마트에서 일하던 1년 반 동안 말이다. 가게에서 종갓집 포기김치를 사 와자주 김치찌개를 끓다. 김치찌개 가장 적화된 익은 김치여서 내가 직접 담그고 익다 해도 그 맛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은 김치를 담는 것 자체가 피곤하고 귀찮았다. 자주 안 하니까 갈수록 더 하기가 싫고 엄두가 안 났.


독일 마트에 1년 내내 배추를 판다. 그런데 크기만 크고 맛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담도 맛이 그저 그렇다. 내가 찾는 건 크기가 작은 알배추인데 잘 안 보인다. 이걸 어디서 찾았냐 하면 우리 동네 유기농 가게였다. 알이 작고 달아 보이는 배추 말이다. 남편에게 가게에 있는 배추를 다 사 오라고 했더니 총 3kg에 10유로 정도였다. 유기농 가게에 파김치용 잔파도 있었다. 가격이 제법 비쌌지만 이런 잔파를 일반 독일 마트에서 구하기 힘들 것 같아서 배추김치에  같이 넣으려고 남아 있는 두 단을  샀다.


이제는 무를 구할 차례. 동치미용 통통하고 단단한 무는 꿈도 꾸지 않는다. 기서 본 적이 없다(한인 마트에 한 번 들어와서 사 먹은 걸 빼면). 허옇고 긴 무라도 살 수 있다면 다행인데 우리 동네 마트 에데카 Edeka에는 작년 내내 무를 구경도 못했다. 큰길 건너 다른 마트 레베 Rewe에 무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거기도 잘 없었다. 마지막 보루는 빅투알리엔 마켓. 내가 사서 직접 들고 오기는 무거우니 이럴 땐 무조건 남편을 보낸다. 게으름이란 걸 모르는 남편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런 잔심부름을 귀찮아하지 않고 기꺼이 준다. 알배추와 무와 잔파 마늘(생강은 까먹음), 거기다 언니가 보내준 한살림 유기농 고춧가루까지 갖췄으니 뭐가 더 부족한가. 이제는 김치를 담글 차례.



알배추를 소금물에 절이고 물을 빼는 동안 양념을 만들었다.


어떤 음식을 하든 언제나 고민하는  어떻게 하면 가장 간단한 조리법으로 요리를 할 수 있을까, . 김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동영상을 보고 각각의 레시피를 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 내가 직접 해보는 게 가장 낫다는 결론을 얻었다. 나에게는 또 다른 고민도 있는데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김치를 가르쳐줄까 하는 것이다. 그것도 쉽게! 열세 살 아이에게 김치를? 왜 안 되는가. 일단 계속 는 게 배우는 거다. 문제는 복잡하면 안 다는 것. 너무 복잡하면 아이의 흥미를 끌기가 어렵고 김치는 불가능=엄마가 해 주는 것이란 결론에 이르 . 


내 생각은 이렇다. 아이가 의식주의 기본인 청소/빨래/요리만 할 수 있어도 언제 독립을 해도 걱정이 안 된다. 그건 그냥 익혀지는 경우도 있지만 조금 배워두면 훨씬 도움이 된다. 요령을 알면 가사가 생각보다 수월할 수도 있, 모르면 만사 귀찮고 부담이고 하기 싫은 게 . 요리도 그렇다. 밥과 김치, 김과 계란만 있어도 생존이 가능하다. 그런데 김치를 직접 담글 줄 안다면? 천하무적 아닌가! 우리 아이 세대에는 직접 김치를 담가먹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미래에 김치 담글 줄 안다는 건 엄청난 능력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쉽고 만만한 레시피 필요하. 앞으로 한식은 최소 30년은 대세가 될 것 고, 한식의 핵심은 김치 될 테니까.


우선 배추 절이기. 천일염을 적당히 푼 소금물에 켜켜이 소금을 조금 뿌린 배추를 5-6시간 절이고 물을 뺀다. 배추를 절일 때는 짜지 않도록 주의했다. 살짝 씻을 때 맛을 보니 안 짜고 괜찮았다. 양념은 어떻게? 이것도 내 맘대로. 중요한 건 양념 역시 너무 간이 세지 않도록 하는 것. 생김치로 먹어도 짜거나 맵지 않도록. 비율도 대충대충 했다. 물을 끓여 한 김 식힌 후 찹쌀가루 한 스푼 반을 넣고 풀었다. 계량은 쌀컵으로 했다. 고춧가루 1컵, 멸치액젓 1컵(까나리 액젓이 없어서!), 설탕 2스푼(설탕을 안 넣니 짜고 맵고, 대신 넣을 매실청도 없어서), 마늘 10쪽(생강은 없어서 생략!), 귤과 사과도 썰어 넣었다. 최종 간을 보니 괜찮았다. 김치통 바닥에 무를 깔고 양념 조금 버무림. 그 위에 잔파를 올리고 양념 조금 버무림. 맨 위에는 절인 배추를 한 포기씩 올려 양념 대충 묻혀 차곡차곡 쌓기. 배추김치 담그기 끝.(이번 배추김치는 역대급으로 쉬웠다!)


재료를 준비하고 김치통에 치를 담그기 직전 아이를 불렀다. 절인 배추와 양념을 보여주고 과정을 간단히 설명, 배추에 양념을 묻히는  보여주었다. 아이에게 직접 해보고 싶냐니까 아니라고 했다. 나처럼 요리에 관심도 재능도 없는 엄마가 아이에게 요리를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한 건 아이에게 요리가 엄청 간단하다는 걸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아이가 쉽네, 나도 하겠네, 이런 기분이 들도록. 정말 쉬웠다. 절임 배추와 양념이 준비되었으면 게임 오버 아닌가. 쉽지? 물으니까 쉬운 것 같단다. 이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더 쉬운 버전도 있다는 걸 강 타이밍이다. 배추를 썰고 무를 깍둑 썰어 김치를 담그면 간단하다고. 아이가 오호, 솔깃해했다. 그건 다음에 나씩 보여줄게. 오늘 마가 접 만든 김치 맛부터 보. 안 짜고 안 매워서 는 대만족, 아이도 맛있어했다. 아이는 음식 맛에 대해서 솔직한 편이고, 난 아이의 그런 솔직함을 좋아한다. 안 그러면 엄마 음식 솜씨에 발전이 없으니까. 몇 년 만에 담 배추김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다음 미션은 아이와 같이 하는 백김치다..



귀한 잔파와 무. 사진에서는 커 보이지만 일반 독일 마트에서 파는 파보다 굵기가 가늘다. 무는 바람이 조금 들었지만 그대로 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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