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항암을 하던 날은 일찍 병원에 갔다. 아침 8시 15분 병원 도착. 주말에 쌓인 눈으로 길은 계속 얼어붙어 있었으나 날은 흐리지 않고 오후에는 해까지 나왔다. 8시 30분 항암 시작. 새 약은 케릭스 Caelyx (독소루비신 Doxorubicin. liposoma으로 더 알려져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선 '공포의 빨간 약'으로 불리며, 제1세대 항암약으로 항암 효과가 큰 반면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고 한다. 먼저 희석액부터 맞았다. 예전 항암에 비해 단출한 느낌으로 출발했지만 역시나 나중에 희석액을 3개나 더 추가해야 했다.
9시 30분 항암약 투여. 10시에 항암 중단. 이유는 호흡 곤란이었다. 항암약을 맞을 때 나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흡이 불편하고 숨이 가빴다. 이어서 어지러움과 한기가 느껴졌다. 의사에게 말하자 당장 항암이 중단되었다. 30분 정도 경과를 지켜본 후 증세가 호전되고 난 후 10시 30분에 다시 시작했다. 의사가 항암 투여를 더 천천히 하자고 했다. 그 후로는 피로감 말고 다른 부작용은 없었다. 추워서 항암 내내 패딩을 입고 있었다. 졸리면 자고 화장실도 두 번 다녀오고, 도중에 배가 고파서 평소처럼 싸간 과일과 채소를 먹었다. 걱정했던 오심과 구토는 없었다. 항암이 끝난 시간은 12시.새 항암은 총 3시간 반이 걸렸다.
새 항암 후 이자르강 산책.
집에 오자 배가 고파서 아침에 준비해 두고 간 뮤슬리를 먹었다. 항암 후 생긴 첫 부작용은 입 안 헐기였다. 심하지는 않아서 음식을 먹는 데 큰 불편은 없었다. 둘째 날부터 입 안 증세가 나아졌다.오후에는 생각보다 피로하지 않아서 산책을 나갔다. 오전 항암 때 호흡 곤란을 경험해서인지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땅바닥이 얼어 꽤 미끄러웠지만 모래가 뿌려진 곳만 골라 조심조심 걸었다. 해가 나와서인지 추위가 한결 누그러져서5 천보 정도를걸었다.오후 늦게 피로해서 잠을 자고 나서는 밤새 못 잤다.두 번째 항암 부작용이라고 생각했다. 항암을 한 날은 자주 못 잤기에 편안하게 생각했다. 책을 보다 새벽 5시에 잠시 눈을 붙였다가아이 도시락까지 챙겨주었다. 다음날부터 오전 산책으로 산책 시간을 바꾼 후로 불면증이 해결되었다. 멜라토닌을 받아서 그런 것 같다.
세 번째 부작용은 항암 다음날 찾아온 변비였다. 1시간 남짓 계속 물을 마시며 노력한 결과 변비를 조금 해결했고, 다음날부터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며 증상을 해결했다. 네 번째 부작용은 위 통증과 더부룩함, 소화불량이었다. 이건 수술 후 퇴원과 함께 시작된 문제였다. 항암과 함께 더 심해졌을 뿐. 앞으로 계속 안고 가야 할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음식을 조금씩 천천히 오래 씹는 게 해결 방법인데 습관이 안 되어 늘 깜빡한다. 친정 엄마를 닮아 소화는 잘하는 편이었는데 항암 앞에는 장사가 없구나. 매일 아침 신선한 과일과 채소 한 접시를 꼭꼭 천천히 먹는 연습부터 하고 있다. 뮤슬리 한 공기까지 소요 시간 1시간이 목표다. 의사 말로는 구토 방지약이 소화에도 도움을 준다길래 저녁마다 한 알씩 먹고있다.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는데 위통은 잦아들고 있다. 산책도 위통 해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가끔 걸을 때 트림이 나고 속이 시원해질 때가 있다. 항암 첫째 날과 둘째 날은 5 천보, 셋째 날부터는 6 천보씩 걷고 있다.
이자르 강변 로젠 가르텐의 얼음 꽃들.
항암 주기는 4주에서 2주로 당겨졌다. 항암 다음날 내 담당인 Dr. 마리오글루 샘의 제안이었다. 퇴원 후 새 항암에 관한 상담은 다른 샘과 했는데 그때는 주기가 4주였다. 마리오글루 샘 말로는 4주는 너무 길고 느리니 2주로 가보자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부작용이 안 커서 저런 제안을 하시는 걸까. 제발 그렇기를. 아님 매주 항암을 할 때도 큰 부작용이 없었으니 2주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는 걸까.항암 후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걱정하던 오심과 구토는 없다.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항암이 진행될수록 나중에 올 확률도 크다. 지금은 위 상태를 잘 살피면서 잘 먹고 면역력을 높이는 게 급선무다.(참, 한국에서 나와 같은 약으로 항암 하신 분들의 후기를 읽으니 항암 후 며칠 동안 소변색이 빨갛다고 하던데 나는지금까지 소변색이 변하지 않았다. 내 경우엔 한국보다 항암약 용량이 적은 걸까?)
내일이면 두 번째 등 수술을 받은 지 한 달이 된다. 첫 번째 등 수술을 하고 한 달 뒤에는 너무 멀쩡해서 차로 4시간이나 걸리는 남티롤로 가족 휴가까지 갔는데. 한 번과 두 번은 하늘과 땅 차이인지 지금은 산책을 갈 때빠르게 걷지를 못한다. 그럼에도 수술한 등은 조금씩 회복 중이다. 등 전체가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불편함은 남아있지만 통증이 없으니 다괜찮다. 엉덩이 마비도 조금씩 풀리는 중이다. 화장실을 혼자서 문제없이 다니고 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다만 혈액 순환이 안 되어서 엉덩이 부분이 차가운 게 신경쓰인다. 잊기 전에 새가발을 산 얘기도 해야겠다. 가발 가게에가발 처방전을 제출한 지 며칠 만에 건강보험으로부터 통보가 왔다. 무려 1,093유로를 보조받았다!(가발 가격은 1,200유로였다. 내가 지불한 돈은 152유로. 가발 샴푸/발삼/린스 세 통 가격 포함. 가발은 4주에 한 번 세탁하라고 한다.) 남편과 아이가 새 가발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기념으로 브런치에도 한 컷 남기기로 했다. 언젠가 이 순간을 웃으며 기억할 날이 오겠지?
첫 번째 가발(왼쪽/2021.6) 두 번째 가발(가운데&오른쪽/2024.1). 두 번째 가발은 아래에 컬이 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