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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an 17. 2024

물김치를 담그다

새 항암 준비 2

백김치는 통째로 안 담그고 어슷하게 세로로 길게 잘라서 담갔다.


물김치를 담그기까지 2박 3일이 걸렸다. 남편이 무와 배추를 사은지 며칠이 지나도록 엄두를 못 냈다. 추워진 날씨도 그렇고, 배추를 절이고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을 생각하니 시작하기가 지 않았다. 발코니에 둔 배추는 신문지로 한 통씩 돌돌 말아두었는데도 겉이 조금씩 얼어가고 있었다. 옇고 긴 에 두면 금세 바람이  것 같아서 신문지로 하나씩 싸서 부엌에 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중 듣고 시무룩해진 말썽꾸러기들처럼 시들해지고 있었다. 무와 배추의 상황을 보니 서둘러야 했다. 더 있다가는 귀한 무와 배추를 버리게 생겼다. 우선 배추부터 절놓기로 했다. 무슨 일이든 시작 해놓으언젠가  는 법이니까. 해에 로 시작한 항암처럼 말이다.


구토 방지제가 소화에 도움이 된다는 건 이번에 의사 샘의 조언에 따라 알게 되었다. 항암 후 내 속은 1주일 동안이나 계속 더부룩했는데 그나마 통증이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그 후 하루 3회 먹으라는 구토 방지제 알약을 시키는 대로 먹었더니 속이 편안해졌다. 구토 방지제 약이 위의 음식물을 잘게 부수어 소화를 도와주는 걸까. 뭐 대충 그렇게 이해했다. 첫 항암 부작용은 그럭저럭 잘 견뎌냈다. 오심과 구토가 없는 항암 부작용은 정말로 감사할 일이다. 가족들을 위해 음식도 준비할 수 있고 나 역시도 조금씩 먹을 수 있으니까. 거기에 김치는 꼭 반드시 필요하다. 사 먹는 김치는 설탕도 너무 많고, 보존제 방부제 같은 것도 들어있을 수 있으니까. 특히 백김치는 유산균이 많아 소화 흡수를 도울 것이다. 그래서 도전다, 백김치!


귀찮을 때 배추를 절이는 타이밍은 저녁을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9시 이후 늦은 저녁이 낫다. 저염도로 밤새 절인다 생각하고 이른 아침에 한 번만 뒤적여준 후 하루 종일 채반에 건져두고 물기를 빼면 되니까. 그사이 언제라도 마음이 내킬 때 재료를 준비하면 된다. 채반에서 적당히 물기가 빠져가는 배추를 보다 보면 슬슬 마무리하고 싶은 용기가 샘솟기 마련이다. 내 경험상 그렇다는 말이다. 이번에는 하루를 또 그대로 두고 보다가 그다음 날에야 마무리를 지었지만.



무와 양파가 익을 게 기대되는 백김치. 간이 슴슴해서 다 담근 후 멸치 액젓을 한 숟갈 추가했다.


사실 김치를 만드는 과정은 배추김치보다 간단하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할 때는 더 복잡할 거 같은데 직접 해보면 반대다. 1. 다시마를 끓여 육수를 만들고 식힌 후 찹쌀가루를 한두 스푼 푼다. 2. 양파, 배, 고구마(유튜브를 참고함!), 귤(설탕 대신 사용!) 마늘과 생강까지 넣고 믹서에 갈고 다시마 육수에 베보자기로 맑은 국물만 따른다. 3. 다시마 육수를 천일염과 멸치액으로 간을 한다. 4. 통에 배추, 무, 양파, 쪽파, 사과, 배 등등을 차곡차곡 넣고 육수를 붓는다. 육수는 통에 1/3만 채웠다. 채소에서 물이 나와 실온에 2-3일 두는 사이 통이 2/3 정도로 차오른다. 타이밍이 안 맞아서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백김치 담그기가 다. 다음에 크면 엄마 레시피 보고 대충 따라 하겠지. 


요즘은 저녁에 채소 샤부를 먹고 있다. 가족들이 있으니 저녁을 건너뛰기도 뭐 하고, 속도 편하고, 채소를 더 먹을 수 있고, 만들기도 간단하고, 설거지도 편해서 1석 5조쯤 된다. 샤부라고 부르기 민망한데 채소 전골쯤 되나. 각종 채소를 넣고 다시마, 멸치, 가쓰오부시 육수에 국간장과 멸치 액젓으로 간을 한다. 가족들이 잘 안 먹는 버섯, 당근, 로콜리를 먹을 수 있어 좋다. 남편 역시 새해가 되자 연례행사처럼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 있고, 실제로 저녁을 많이 먹은 날은 남편이 잠을 잘 못 자서 가족 모두에게 좋은 메뉴였다. 익힌 채소와 따뜻한 국물까지 먹을 수 있어 한겨울에 먹기 좋고,  아이에게도 채소를 더 먹일 수 있는 것도 덤이다. 사춘기라 외모와 여드름에도 신경을 쓸 나이. 채소, 과일 좋다는 건 본인도 잘 알아서 잘 먹는다. 나에게도 당연히 좋고.


침은 뮤슬리와 신선한 채소 과일을 먹고 저녁에는 익힌 채소를 먹고 있으니 더 이상 식사 준비에 대한 갈등과 어려움이 없는 것도 좋다. 2주에 한 번씩 항암을 하니 항암 직전에는 얇게 썬 불고기용 소고기를 얹어 진짜 샤부 먹을 수 있겠다. 두부까지 넣으면 금상첨화! 그사이 배추김치는 잘 익어 맛이 들고, 백김치까지 담가놓았으니 나의 항암 준비는 그럭저럭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주말부터 허리가 다시 아파서 CT와 MRT를 찍고 결과를 기다리 중다. 삼시세끼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처럼 암치료 역시 바람 잘 날이 없지만 바람이란  오면 가는 것이고 오래 머무르지는 않으니 이번에는 또 어떤 바람이 온다 해도 무조건 잘 버티는 것이 답일 것이다. 너무 염려 마시길.



아침엔 생채소 과일. 저녁은 이름만 거창하고 실제로는 소박한 채소 샤부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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