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열네 살 우리 딸과 동갑인 현숙의 딸 서샤는 크리켓을 한다.(젊은 날의 현숙이를 쏙 빼닮았다!)
현숙이가 왔다. 호주의 애들레이드에서 출발카타르 도하에서 4시간을 기다린 후 비행기를 갈아타고 뮌헨까지 총 20시간을 걸려서 왔다. 호주 남편과 애 둘을 집에 남겨두고 오로지 나 하나 보겠다고 달려온 게미안한데일찍 못 와서 자기가 더 미안하단다. 애들은 괜찮냐고 했더니 열두 살짜리 아들은 엄마가 3주 동안 없다니까 환호성을 지르더란다. 좋아서. (돌아오자마자 언제 또 독일가냐고 묻더라고..흑흑..)열네 살 딸은 슬퍼하지 않더냐니까 조금 슬퍼하는가 싶더니 막 읽기 시작한 책이 너무 재밌어서 슬퍼할 겨를도 없이 책에 빠져들더라고.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궁금해서 책 제목을 물어봤다. <A Good Girl's Guide to Murder>란다. 이런, 제목이 끝내주네 싶었다. Good girl이 나오고 Murder(살인자)가 나오면 그 나이 또래 청소년들의 흥미를 끌기엔 충분한 거 아닌가. 현숙의 딸이 읽는다는 책 제목까지 물어본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딸과 그녀의 딸이 나이가 같기 때문이다. 현숙의 딸은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아서 언젠가 둘이 만난다면 우리 딸이 분발해서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할 같아서.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니책얘기로 소통하면 좋을 것 같아서.
우리 아이에게 얘기했더니 그 책을 벌써 읽었단다. 독일어로. 잘됐네! 그럼 이번엔 영어로 읽으면 좋겠네,라는 말도 내친김에 해버렸다. 이럴 때 보면 난 정말 하수다. 남편에게 부탁한 영어로 된 책이 도착하면 슬며시 책상 위에 올려두면 될 것을. 현숙 이모가 주는 선물이라고. 뒤에서 엄마랑 이모 둘이 미리 입만 맞춰놓고. 영어책에 대한 아이의 반응이 나쁘진 않았다. 이번 현숙의 방문이 반가운 건 우리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엄마들의 우정을 대물림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비록 나중에 내가 없어도 현숙이가 있으니 안심이 된다.
만 열네 살 우리 딸 알리시아는 가라테를 한다.
내가 현숙이를 만난 건 30년 전 일본 다카마쓰 시에서다. 부산시 공무원이었던 나는 일본에 1년간 파견근무를 갔고 거기서 현숙이를 만났다. 당시 현숙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을 다니며 돈을 모은 후 일본 어학연수를 왔다. 내 나이 스물여섯, 현숙이 나이 스물둘이었다. 현숙이를 만나고 나는 생각했다.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애구나.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동생이자 친구인 현숙이를 존경했다. 파견근무 1년을 마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현숙이는 어학연수를 하면서 쉬지 않고 일을 해서 돈을 모았다. 그리고 일본에서 전문대학을 갔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현숙이는 다시 호주로 영어 어학연수를 갔다. 문제는 거기서호주 남자를 만나버린 것이다. 그 결과 오늘의 서샤가 생겼다.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저렇게 예쁘고 참한 딸이 있으면. 대디랑도 사이가 좋아서 대디가 원한다고 하기 싫은 크리켓도 계속하고 있다고. 남동생 키언도 대디 보이란다. 슬슬 사춘기가 시작될 때인데도 아직까지는 대디랑 죽이 잘 맞다고.
현숙은 한 번도 쉬어본 적 없이 일한다(지금은 호주에서 코스트코에서 일한다. 지금까지 한 일 중에서 제일 편하다는 소리를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내가 현숙에게 놀라는 건 그럼에도 사는 게 힘들다고 징징거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가끔 있는 우리들 수다에 남편들 뒷담화가 빠지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녀의 20대는 그야말로 에너지가 통통 흘러넘쳤다. 부산 사투리는 얼마나 심한지. 목청은 또 왜 그렇게 높은지. 그녀의 웃음소리는 꺄르르르륵, 이라고 할까. 부산 갈매기를 닮았다. 정신없는 것 같으면서도 산만하지 않고, 물불 가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가렸다. 수다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질리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언제 어디서나 밝고 환했던 그녀의 표정이었다. 내가 근무하던 국제교류협회에서도 그녀가 나타나면 자갈치 시장 같은 분위기가 금세 만들어졌다. 소란함을 참기 어려워하는 일본인 스텝들조차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만들던 현숙의 매직은 무엇이었을까. 순진무구함. 유쾌 상쾌 깨발랄. 고운 마음. 열정. 그중에서도 압권은 의리. 한번 우정은 영원한 우정.서로 애 키우느라 바빠서 연락을 못하고 산 지도 여러 해째. 그럼에도 우리 사이가 이렇게 돈독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부지런한 현숙이 덕분이다.
현숙은 어제 뮌헨 도착과 동시에 내 병원으로 찾아왔다. 쉬라고 했는데도 말을 안 듣고병원에 와서계속 내 발과 다리를 마사지해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내일은 닭백숙을 해주겠노라고. 마사지도 기대하라면서. 비가 오면 내가 좋아하는 감자수제비를 해 올 것이다. 옛 친구가 오니 참 좋다. 내 상태가 조금만 좋았더라면 같이 휠체어를 타고 산책도 가고 시내에 놀러도 가고 맛있는 것도 사먹으러 갈 텐데. 등수술한곳에 통증이 다시 살아나서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만 있다. 원래 이번 주에 주사로 등 수술한 곳에 수액을 빼기로 했는데 저절로 터져버려서 감염의 우려를 걱정하고 있다. 비록 간에도 전이가 오고 상황은 조금씩 나빠져가지만자신을 장금이에 비유하며 백숙을 가져다주는 동생이 있어 다시 힘을 내보려 한다.
현숙이가 해 준 닭죽.(장금이의 닭백숙과는 쫌...^^) 그러나 영양과 정성면에서는 누구라도 당할 자가 없을 최고의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