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법으로든 서로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기도해 주며 지내자. 자주 못 보더라도."
토요일 한글학교에 갔다. 추석 전 주말이라 추석 행사도 있을 예정이라 했다. 물론 내 관심은 다른 데 가 있었다. 이틀째 브런치에 글을 못 올리고 있어 마음이 급했다. 글에도 금단 증상이 있나. 주 5일 글쓰기를 할까 생각 중이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주말은 쉴까 했는데 하루를 건너뛰었더니 이렇게 마음이 급해지다니. 금요일은 왜 글을 못 썼나? 뮌헨의 마지막 햇살이 너무 좋아서였다면 누가 믿어줄 것인가. 그날은 일기 예보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뮌헨의 마지막 햇살이었다.
햇살이 좋아서 이틀째 빨래를 돌리고 널고 개었다. 내친김에 이불보랑 베갯잇이랑 침대 시트들도 줄줄이 불려 나왔다. 금요일엔 아이를 학교에 혼자 버스로 보내고 집 정리도 했다. 밀린 서재방 정리와 어지럽던 수납장도 말끔히 닦고 서랍 속에 들어 있던 그릇과 찻잔들을 꺼내 차곡차곡 올렸다. 정작 햇살이 좋던 여름엔 너무 더워서 미뤄둔 일이었다. 아이를 보내며 빵집에서 사 온 크루아상과 커피 한 잔도 마셨다. 카페가 아닌 집에서 마시는 블랙커피도 좋았다. 늘 혼자면서, 혼자 있는 시간도 좋구나 생각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아이가 등교한 후의 시간 말이다.
우리 집 부엌과 발코니는 동향이라 아침에 잠깐 햇볕이 들었다. 여름엔 그마저 더워서 발코니 쪽 출입문 창에다 커튼을 달았는데 이젠 그 커튼까지 걷어야 할 때였다. 5층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니 빨래를 하느라 바쁜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우리 건물 안쪽 마당에는 독일에선 보기 드물게도 거미줄 모양의 빨랫줄이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부지런히 빨래를 널고 계셨다. 늘 저분 혼자만 빨래를 너시는 걸 보면 다른 집은 모두 건조기를 사용하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나도 생각 없이 건조기를 마구 돌렸다. 다시 돌아온 독일에서 나는 드디어 주부로 거듭나고 있는 것일까.
다음 빨래가 다 돌아갈 때까지, 세탁기가 소리 내어 알려줄 때까지 내게 남은 시간을 가늠하며 빵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가.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정확히 안다는 것은 얼마나 짜릿한가. 순간순간이 촘촘해지고 밀도가 달라진다. 우리 삶에도 정해진 시간이 있을 텐데 그건 왜 항상 잊을까. 서울에서 수술을 마치고 무사히 집 근처 병원으로 내려갔다는 내 친구는 어떤 마음으로 병원에 누워있을까.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은 얼마나 안심이 되는 일인가.
"고마워 친구야. 여기 내려오자마자 다른 병원에 입원해서 몸조리 잘하고 있어. 신생아처럼 20시간씩 자면서. 이렇게 견디는 시간이 힘들지만은 않아. 지독한 열과 통증과 불안과의 싸움이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안하고 그지없이 평화롭기만 해. 이 모든 것을 겪고 난 후의 내가 오히려 기대될 만큼."
겪어보지 않은 일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직접 수술을 받아야 하고 수술 전의 불안한 마음과 수술 후의 끝도 없고 대책도 없는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친구의 일인데. 그 초조하고 무서웠을 마음을 내가 무슨 수로 헤아린단 말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간간이 안부를 전하는 일. 병원에 있는 친구가 직접 만나지 못하는 창밖 풍경을 전해주는 일. 친구의 마음이 약해지거나 두려움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부지런히 글을 올려 친구의 눈을 바쁘게 만드는 일. 그러니 이틀 동안 내 마음도 얼마나 바빴겠는가.
"어떤 방법으로든 서로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기도해 주며 지내자. 자주 못 보더라도."
친구여, 네 마음이 내 마음이다. 도토리가 즐겨 먹는다는 저 씨앗 한 알 가슴에 품고 그 씨앗이 든든한 나무 되어 자랄 때까지 우리 곁에서 건강하게 있어다오. 아프기 전까지, 아파 누울 때까지 너의 소중함을 몰라주어 미안하구나. 새벽에 잠이 깨어 너에게 이 글을 쓴다. 이것만이 먼 곳에 있는 네게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내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