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할머니와 옥토버페스트

뮌헨의 축제

by 뮌헨의 마리


연간 600만 명이 다녀가는 축제, 옥토버페스트


친할머니 카타리아와 기념품을 고르는 알리시아


독일의 시어머니와 함께 옥토버페스트에 갔다. 옥토버페스트 두 번째 주에 들어서니 아니나 다를까 월요일에는 비가 왔고, 화요일은 흐리고 추웠고, 수요일에도 해가 나지 않았다. 해는 목요일이 되어서야 다시 나왔다. 사흘 동안의 평균 기온은 12도였고, 해가 나오자 15도로 올라갔다. 옥토버페스트가 끝나는 이번 주말에는 20도를 회복한다는 반가운 예보도 있다. 수요일엔 집안에 있어도 쌀쌀해서 저녁을 먹은 후에는 바닥 매트를 켜기도 했다. 조만간에 아이와 나는 겨울 내내 이 매트 위에서 살게 될 것 같다. 독일의 겨울도 이겨내는 온돌 매트라니.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신 시어머니의 남편분인 양아버지는 집에 계시게 하고 시어머니 혼자 옥토버페스트에 오셨다. 오랜만에 친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을 얼마나 즐거워하시는지 보는 내내 내가 흐뭇할 정도였다. 아이도 좋아했다. 시어머니와 옛날 식으로 재현해놓은 오리지널 구식 옥토버페스트 구역 Oide Wiesn에도 들어가 보았다. 나 역시 여기엔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아 궁금하던 참이었다. 어린이는 공짜, 어른들만 입장료 3유로를 받았다. 무시무시한 현대식 놀이 기구와 비교하면 얼마나 귀엽던지. 아이가 할머니와 같이 탄 마차는 어른만 단돈 1유로를 받았다.


그 유명한 호프브로이 맥주를 운반하는 마차도 여기서 보았다. 옥토버페스트 첫 주말에 시내를 관통하며 옥토버페스트 맥주를 운반하는 퍼레이드로 유명하다. 어머니께서 몇 번이나 우리에게 가보라고 하셨는데 올해엔 못 봤는데 어머니는 댁에서 양아버지와 함께 TV로 시청하신단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연간 600만 명이 옥토버 페스트에 다녀간다고 한다. 그러니 이 기간에 소모되는 맥주와 유명한 돼지고기 슈바인 학센 Haxn의 양은 대체 얼마겠는가.



옥토버페스트에 올 때 기억해야 할 것은 큰 가방이나 짐은 들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 미리미리 숙소에 두고 작은 손가방이나 백팩, 여성들의 핸드백 정도만 들고 가야 하다. 그런 가방도 출입구에서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테러 방지 차원인 모양이다. 급한 경우에는 U반을 타고 중앙역으로 나가 짐을 맡길 수도 있고, 코인 락카도 있다. 자체 짐 보관이 가능한 지는 모르겠다. 나도 아이 학교 백팩과 던들 옷가지를 챙겨 온 가방을 카페 디바에 맡기고 왔다. 시어머니와 만나기로 한 곳이 바로 한글학교 앞 지하철 역이었기 때문이다. 단골 가게가 편리할 때는 바로 이런 때다.


모처럼 시어머니의 뮌헨 나들이에 동참하기 위해 남편도 시누이도 합류해서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옥토버페스트 안 텐트에서 먹으려고 몇 바퀴를 돌았으나 자리를 못 찾고 결국 밖으로 나왔다. 평일 저녁 5시였는데. 다음날인 10/3일이 독일의 통독 기념 공휴일이었다. 그래서 더욱 붐볐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지하철 한 코스 떨어진 시누이 회사 근처 중국집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독일에서 드물게 퓨전이 아닌 중국 본토 맛이어서 시어머니도 좋아하시고 우리도 맛있게 먹었다. 남편이 저녁을 사려고 했지만 허락하지 않으셨다. 집으로 돌아오자 남편이 시어머니께서 주신 용돈을 내밀었다. 아, 어머니는 왜 나를 울리시나. 물론 며느리 주라고 쥐어주신 용돈은 아니겠지만.

우리 집 근처 슈퍼 앞에는 양로원이 하나 있다. 규모도 제법 있고 밖에서만 봐도 괜찮아 보인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나중에 양아버지께서 떠나시면 외롭지 않으시게 우리 집에서 모시고 싶은데 어머니가 불편해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집 가까운 양로원이나 요양원에 모시고 매일같이 아이와 함께 찾아뵙고 싶다. 물론 앞으로 한 10년쯤 후에 말이다. 아니지, 그럼 10년 후 내 한국행은 어떻게 되는 거지. 반반씩 사는 절충안도 고려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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