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크리스마스 메뉴

밤비냐 루돌프냐

by 뮌헨의 마리


이런 속 편한 며느리 노릇이 또 있을까. 독일 최대의 명절인 크리스마스인데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시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손님으로 가다니.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 앞둔 일요일이었다. 독일을 포함한 서양의 크리스마스는 이브 날인 24일 저녁을 가리킨다. 독일에서 크리스마스는 늘 시아버지와 사시던 남편의 새어머니 댁에서 보내곤 했다. 시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남편의 친어머니와 시아버지 댁은 보통 크리스마스이브 다음날에 갔는데 명절에 시댁에 들렀다가 친정에 가는 기분 비슷하다고 할까. 긴장 후의 릴랙스가 자연스럽고 정신 건강에도 좋으니까.


독일에 와서 첫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낼까. 솔직히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양쪽 어머니들과 남편이 일정을 조정하면 나는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이런 속 편한 며느리 노릇이 또 있을까. 독일 최대의 명절인 크리스마스인데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시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손님으로 가다니. 집을 꾸미고, 선물을 사고, 성탄 음식을 준비하는 모든 것이 부모님들의 몫이다. 우리는 선물 하나만 들고 가면 끝! 시어머니 두 분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한국 며느리의 이 속 보이는 셈법을 보라.


그런데 이번 크리스마스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다. 우선 시어머니께서 성탄 전에 자녀들을 식사에 초대하셨다. 그것도 레스토랑에. 전에 없던 일이다. 최근에 거동이 불편해지신 시아버지를 돌보시느라 힘들어지신 게 이유다. 나는 대찬성. 한국이고 독일이고 명절은 여자들의 몫이다. 달랑 우리 가족 셋만 방문하는 새어머니와는 달리 시어머니의 경우엔 우리 셋에 시누이에 시아버지의 큰 딸네 가족 셋까지 총 9명. 너무 힘드시다.


바이에른 로컬 레스토랑의 메뉴는 다양했다. 생선 요리를 비롯, 남편은 멧돼지 요리를, 시아버지의 사위는 사슴 요리를, 시어머니는 야생 오리. 시아버지와 그의 딸은 뭘 시켰는지 자리가 멀어서 못 물었다. 나와 아이와 시누이는 생선 요리. 메뉴판에는 토끼 요리까지 있었다. 아이들은 사슴을 먹는다고 울상이 되었고, 짓궂은 파파 둘이 돌아가며 딸들을 놀려먹느라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밤비냐 루돌프냐. 무슨 차이냐. 나는 옆에서 듣고도 까먹었다. 남편의 형네는 북독일이라 크리스마스 때는 내려오지 않는다. 시아버지의 작은 딸은 미국에 살고.


생선요리(좌), 멧돼지 요리(가운데), 생선요리(우)


내가 우리 시어머니를 좋아하는 이유. 이혼한 시아버지의 전부인이 재혼을 하지 않고 미국에서 작은 딸 옆에 살다가 크리스마스 때면 독일에 사는 큰 딸을 보러 온다. 시어머니는 재혼 후 시아버지의 두 딸을 키웠다. 통 큰 시어머니가 어떻게 하신 줄 아는가. 크리스마스 때면 큰 딸은 아버지 집에 와야 하는데 미국에서 친엄마는 와 있지. 보통 난감한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 시어머니가 교통정리를 하시길 '다들 우리 집으로 와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자!'


나중에 내가 여쭈어 보았다. '카타리나! 어떻게 그런 결정을 다 하셨어요? 힘들지 않으셨나요?' 시어머니가 대답하시길 '그럼 어떡허니. 내가 키웠지만 엄연히 친엄마가 있는데. 지난 일은 지난 일이니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크리스마스는 우리 집에서 보내자 했지.' 우리 집과 큰 딸네가 나란히 아이를 낳은 후에는 크리스마스이브를 친엄마와 보내고 있다.


점심을 먹은 후 시어머니 댁으로 갔다. 거실 통로 작은 테이블 위에는 크리스마스 쿠키 플랫첸 일곱 개가 둥글게 머리를 맞대고 놓여 있었다. 우리 집 셋, 싱글인 시누이 하나, 시아버지와 큰 딸네 셋. 그야말로 머리 숫자만큼이었다. 성탄 카드와 선물은 하루 먼저 개봉했고, 거실에서 다 함께 캐럴송도 불렀다. 오후 티타임 후에는 아이들 영화도 다 같이 보았고, 귀가 전에는 시어머니가 다이닝룸에 미리 준비하신 빵과 치즈와 살라미와 햄 등으로 가벼운 요기를 마쳤다.

밖에는 캄캄한 어둠. 정원에는 비. 뭘 차려 주셔도 맛있는 시어머니의 식탁. 저 마법의 손을 한국 며느리가 늘 감탄하며 감사하며 살고 있다는 걸 어머니는 아실까. 요즘은 부지런히 식탁 차리기와 치우기를 돕는 사이사이에 어머니께 감사의 말도 잊지 않는다. '너무너무 맛있었어요, 카타리나. 감사해요!' 내 말에 함박웃음으로 답하시는 어머니. 독일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언젠가 내가 차려드리는 음식도 입에 맞으셔야 할 텐데.



p.s. 밤비도 루돌프도 둘 다 사슴인데 밤비는 암노루, 루돌프는 숫노루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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