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는 수요일 오전 11시 30분 마리엔 플라츠 분수 앞에서 만났다. 어머니는 나와 아이의 생일에 필요한 걸 사라고 준비해 오신 현금을 건네셨다.
며칠 전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용건은 짧고 간단했다. 시어머니와의 통화가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다. 어머니는 말씀하시고 나는 들었다. 간혹 Ja 네,라고 대답하며 내가 전화기 이쪽에 있음을 알려 드린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한번 더 확인한다. 통화 중에는 메모를 꼭 해두고, 통화가 끝나면 폰 일정에다 입력한다. 요즘에는 한 가지 더 하는 일이 있는데 당일 약속 시간 30분 전에 알람을 설정해 두는 것이다.
용건은 두 가지였다. 아이의 생일이 2월인데 무슨 선물을 받고 싶냐는 것이다. 생일 날짜만 손꼽아 기다릴 뿐 정작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 지는 아이도 몰라서 답을 못했다. 아무리 눈치를 주어도 아이는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흠흠.. 이걸 어쩐다. 어른들이 여쭤보실 땐 제깍 대답을 드리는 게 예의 아닌가. 그게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독일의 카톡인 WhatsApp으로 벌써 며칠 전에 물어보신 터라 답을 미루기도 곤란했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아이의 생일에는 옷을 사주시고 내 생일에는 향수 같은 걸 사주셨는데 내게는 필요한 게 아니어서 곤혹스러웠다. 차라리 현금으로 주시면 요긴하게 쓸 텐데. 독일에 오자 며느리의 마음을 아셨는지 작년 우리 생일과 크리스마스 때는 봉투를 주시며 필요한 걸 사라고 하셨다. 잠시 고민한 끝에 집과 학교에서 신을 아이의 실내화를 사겠노라 말씀드렸다. 아이도 반대하지 않았다. 저도 같이 하나 살게요. 슬쩍 한 발을 걸쳤다. 1년을 신은 내 실내화 바닥이 닳아서 종잇장처럼 얇아졌기에.
아이와 남편 생일 사이에 보통 내 생일이 있다. 다만 나만 음력으로 생일을 지내기에 매년 날짜가 바뀌어 어머니께 혼란을 드려 죄송하긴 하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보름 사이에 우리 세 식구의 생일이 몰려있는 셈. 어머니는 흔쾌히 실내화를 접수하셨고 두 번째 용건을 말씀하셨다. 수요일 점심때 뮌헨에 볼 일이 있어 오실 예정이니 그때 만나자는 것이다. 시누이와 함께 셋이서. 어머니를 뵙기 전에 아이와 나의 실내화 두 켤레를 사고 사진을 찍어두었다. 앞코가 버선처럼 튀어나온 폭신한 신발이었다.
어머니와는 수요일 오전 11시 30분에 마리엔 플라츠 분수 앞에서 만났다. 뮌헨 시청사 광장 후겐두벨 서점 앞이었다. 약속 시간 10분 전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먼저 나와 계셨다. 날씨가 얼마나 좋던지 어머니와 같이 빅투알리엔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집에 계신 양아버지가 좋아하신다며 생선 샐러드를 사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복 많으신 영감님. 영양가 있는 삼시 세 끼 밥상을 날마다 받으시니 말이다.
바바라와는 후겐두벨 뒤편 건물 꼭대기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뮌헨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성당 꼭대기가 보이는 곳이었다. 햇볕이 비치는 창가에서 바바라와 나는 샐러드를, 어머니는 토마토 수프를 드셨다. 양아버지와 식사를 같이 하셔야 해서 배부르게 드시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나와 아이의 생일에 필요한 걸 사라고 준비해 오신 현금을 건네셨고, 아들에게는 해마다 선물하시는 와이셔츠를 사겠노라 하셨다. 생일 축하 식사는 아들 날짜에 맞추셨다.
회사일 때문에 30분 늦게 온 바바라가 메뉴를 주문하고 식사를 마치기 전에 어머니는 밥값을 계산하고 먼저 일어나셨다. 그날도 어머니는 몇 가지를 챙겨 오셨는데 치약이었다. 약국에 갈 때마다 여행용 치약을 주는데 다 쓰실 수가 없으니 시누이와 나누어 쓰라며. 그럴 때마다 나는 감사하게 받는다. 그런 게 어머니의 알뜰하고 살뜰한 마음이자 정이 아니면 뭐겠나 싶어서. 바바라와 나는 빅투알리엔 마켓의 스탠딩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헤어졌다. 그녀는 치약을 딱 두 개만 챙겨 들고 갔다. 그날 빅투알리엔 마켓의 비어 가든에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햇살의 기세로 보아 봄도 멀지 않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