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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10. 2019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끝이 있다

시어머니가 차비를 주시겠다고 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끝이 있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어제는 흐렸던 슈탄베르크 호수가 오늘 아침 맑고 푸르게 갠 것처럼.

이게 전날의 그 호수란 말인가!!! 다음날 아침 슈탄베르크 역의 호수 전경.


시부모님께 이런 일이 있을 줄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잘한 게 있다면 금요일에 휴무를 신청해 놓은 것. 사실 지역 킨더 벼룩시장에 참가할 생각이었다. 벼룩시장이 열리는 장소가 우리 집 근처라 이동하기도 쉽고 신청 조건도 까다롭지 않아 참가 신청을 다가 어제 취소 메일을 보냈다. 금요일 아침에는 남편의 대장 내시경 예약도 있어서 남편의 병원에도 동행할 생각이다. 집안에 갑자기 환자가 셋이나 생기다니! 내가 휴무  받았으면 어쩔 뻔했나.


시어머니는 원래 토요일에 병원차로 재활원까지 가실 계획이었다. 그런데 담당 의사가 SUV 차량이라면 가족과 움직여도 된다고 허락한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차가 바로 그 차였다. 아버지가 편하게 타실 수 있게 바꾼 지 년도 지나지 않은 차였다. 운전이라면 남편이 제격이었다. 북독일에 사는 남편의 형은 내려올 가능성이 적고, 시누이 바바라는 운전 경력이 짧, 아버지의 장녀는 산부인과를 개업하고 아이도 어려서 늘 피곤하다. 내가 붙여준 남편의 별명은 차와 일심동체, 소위 움직이는 네비였다.


토요일 한글학교는 빼먹기로 했. 그러면  생활을 너무 희생하는  아니냐고? 글쎄. 좋아서 하는 것도 희생이라고 쳐준다면 그렇게 불러도 좋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희생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도움이 절실한 부모님을 위해 시간을 나누는 걸 그렇게 하면 곤란해진. 나도 나름 생각이 있다. 이참에 며느리 노릇을  볼까 한. 결혼 1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끝이 있다.  얼마나 다행인가. 어제 흐렸던 슈탄베르크 호수가 오늘 아침 맑고 푸르게 갠 것처럼.



수요일엔 아이 선언했다. 방과 후에 하루를 쉬겠다고. 할머니 할아버지 방문도 고. 그럴 만도 다. 월요일 오후엔 할아버지를, 화요일 오후에는 할머니를 방문했으니. 알바를 마치고 잠깐 시어머니 병실들렀. 아버지 상태도 알려드리고 어머니의 형편살피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용감하셨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침대에 앉고 보조기를 잡고 일어서고 화장실까지 무사히 다녀오고 다시 침대에  일련의 과정을 훌륭하게 해내셨다. 그것도 혼자서. 런 내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 시어머니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 다. 시무룩하거나 지쳐있거나 우울한 모습을 좀처럼 보 힘들다. 시골 마을의 처녀처럼 생기 가득하시다. 잘 웃고 쿨하시다. 아버지가 쓰러지셨어도 본인에게 예정된 고관절 수술을 진행하셨다. 언젠가는 올 일이 닥쳤다고 생각하신다. 수술을 미룬다고 나아질 것도 없고, 어머니의 인생도 있는 법이니까. 3주간 자식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으려고 아버지와 오스트리아의 풍광 좋은 재활원에서 같이 지내시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삶이 끝장난 것은 아니다.


그날 오후의 병실에는 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물으셨다. '매일 차비는 얼마나 드냐?' 뮌헨에서 슈탄베르크까지 1 day ticket 가격이 8.90유로였다. 어머니가 잠시 생각하시더니 내 차비와 바바라 차 기름값을 챙겨주시겠단다. 어머니는 이런 분이다. 괜찮다고 해도 그러는 게 아니란다. '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차비는 받아야지.' 시부모님 병문안 가서 차비 얻어오는 며느리는 드물지 않나? 그날 저녁 남편과 나와 어머니3인 공동 왓츠앱에 어머니가 날리신 멘트가 다. '혼자 걷기에 성공하심! 할머니 멋지지 않니, 알리시?'


시아버지가 입원하신 병실 밖의 풍경(왼쪽)과 병원 입구(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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