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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un 15. 2019

너의 이름은 르누아르

시어머니 정원에서 하는 정원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생각한 것이 정원! 예전부터 도전해 보고 싶던 일이었다. 꽃과 나무를 상대하는 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


슈탄베르크 역에서 바라본 슈탄베르크 호수 풍경


이것은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정원 나무에 관한 이야기다. 다시 시부모님을 방문한 것은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 시어머니와 아버지가 재활 클리닉에서 돌아오신 이후의 일상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내가 도와드릴 일이 무엇인지, 얼마나 자주 방문할 것인가가늠할 수 있기 .


어머니는 고관절 수술 이후에도 일상적인 가사 일과 운전을 계속하신다. 다림질과 장보기 등 오래 서서 하 일이 무거운 것을 가사 도우미 정기적으로 와서 도와드리기로 했다. 아버지를 위한 요양 도우미도  3회 아침에 샤워를 도우러 오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생각한 것이 정원! 예전부터 도전해보고 일이었다. 


두 번 다 알바를 마치고 아이와 함께 S반으로 다. 마음 같아서는 차를 운전하 싶었지만 아이가 불안하다 해서 접었다. 아버지께서 언제라도 슈탄베르크 역에 도착하거든 택시를 타거라. 택시비는 우리가 주마, 하신 호의를 고맙게 받기로 했다. 택시비는 8.80유로 (기본요금 3.60유로). 팁 포함 10유로를 지불했다. (참고로 뮌헨-슈탄베르크 왕복 성인 차표는 8.90유로. 아이는 2.80유로.)

 

내 이름은 르노와르!(위) 꽃이 지고 갈색으로 변한 꽃대 자르기(아래)


수요일 오후 어머니 댁에 도착할 무렵엔 무더운 탓인지 몹시 피곤했다.(금요일 기온은 최고 28도.) 어머니께 블랙커피를 부탁해서 한 잔 마셨더니 한결 나았다. 내가 정원 일을 해보겠다고 하자 어머니가 기뻐하셨다. 아이가 할아버지와 어린이용 고전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그늘이 진 낮고 파란 대문에서 현관 입구까지 골목에서 보이는 대외 정원부터 시작했다. 단한 일은 아니었다. 꽃이 지고 갈색으로 변해버린 꽃대를 자르는 일. 시어머니가 알려주신 첫 번째 나무 이름은 르누아르. 세상에 누가 나무에다 그런 이름을 갖다 붙였나! 평범했던 나무가 예술이 되는 순간이었다.


두 시간 동안 두 종류의 꽃대를 자르는 일은 마음에 들었다. 말이 필요 없다는 것. 단순한 일에 마음을 쏟는다는 . 전지 가위가 지나간 나무들은 이발을 한 듯 금세 말쑥해졌다. 시간이 가는 줄도 피곤함도 잊었다. 돌아올 때는 비 온 후 나무들처럼 싱싱한 기분마저 들었다. 금요일은 남편이 퇴근 후 어머니 댁으로 오는 바람에 서둘러 일을 마무리 했다. 섭섭하여 이른 저녁을 먹고는 장미 꽃대를 조금 정리하고 왔다. 장미 꽃잎이 분분히 날리면 일이 많다는 것도 배웠다. 꽃과 나무를 상대하는 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일. 양말을 뚫고 수시로 발목을 공격하모기도 두렵지 않았.


수요일에는 아버지께서 아이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할아버지'라고 불러주니 좋구나!' 그날은 세 번째로 아버지의 손톱을 잘라드렸다. 금요일인 어제는 몇 번이나 여름에 한국을 가면 얼마나 있다 올 건지, 오늘 가면 언제  건지를 물으셨다. 시어머니께서 밤새 시아버지를 찾아 헤맨 꿈 이야기를 들려드리자 흐뭇한 표정으로 듣고 계시던 아버지. 어제는 고관절 수술로 상체를 구부리기 힘든 어머니께도 발톱을 깎아드리고 발톱 위에 매니큐어처럼 바르는 약도 발라드렸다. 이런 소소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좋다. 셀 수 없이 많은 나무들이 있어서 더욱 좋다. 다음 주엔 화요일에 찾아뵐 생각이다. 두 분이 너무 오래 기다리시지 않도록.


장미 꽃대들(위) 빵, 치즈, 살라미로 소박한 저녁 식사(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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