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정원사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그러나 시어머니로부터 말씀만 들었는데도 행복한 직업 같았다.
나무에 걸어두는 새 모이함 채우기는 아이의 일.
외국인이 독일에서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직업은 뭘까. 내 생각엔 정원사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그동안 시어머니의 정원일을 하며 든 생각이었다. 핑스턴 방학이 시작되던 지난주 월요일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재활 클리닉에서 집으로 돌아오신 후 한 주에 두 번씩 총 네 번을 방문했다. 그 사이 주말에는 따로 새어머니도 방문하고,매일알바도 가야 해서 바빴다. 오전에는 아이와 집에서, 오후에는 아이와 야외 수영장을 오가느라 2주간 글쓰기도 제대로 하지못했다.
지난주월요일과 이번 주 목요일은 핑스턴 공휴일이었다.이번 방학과 공휴일에는 왜 그리 피곤하던지. 금요일인 어제는샌드위치 데이라알바까지하루쉬었다.방학내내 아이는 내가 알바를 가는 3시간동안 혼자 집에 있었다. 방학 후 종교 시험을대비해기도문 6개도외웠고,좋아하는 짱구도 보며 잘 기다려 주었다.아이의 친구율리아나는 2주 동안 아침마다 초급 수영 강좌에 다녔다.강좌마지막 날인어제 오전에는 율리아나와 수영장에서 만나신나게 놀았다.
어제 오후에도 시어머니를 방문했다.알바를 마치고 아이를 픽업한 후 뮌헨 중앙역에서 오후 3시 기차를 탔다. 30분이 걸리는 S반에 비해 15분밖에 걸리지 않는 기차는시아버지 병원을 방문하던 때부터 내가 선호하는 교통편이었다. 지금까지는 역에서 택시를 탔는데 어제는 버스를 타고 갔다. 알아보니 1시간에 한 번 운행하는 버스 시간이 딱 맞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덥고 피곤해서 엄두가 안 났는데, 슈탄베르크 역에서 호수를 끼고 시어머니 댁으로 가는길은 다섯 정거장에 5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진분홍 꽃나무 이름은 칼미아!
시어머니말씀대로 정원일은 끝이 없었다. 그러니 서두를 게 없단다. 충천한 사기와는 달리 2주 동안 집 앞 입구의 작은 정원도 끝내지 못했다. 지난번에는 아이도 거들었다. 아이가 찜한 진분홍 꽃나무의 이름은 칼미아 Kalmia. 아메리카 산으로 시어머니가 알려 주신 독일 이름은 칼미에였다. 어제는 도착하자마자 부슬비가 내렸다. 언제나처럼시어머니가 내려주신 블랙커피를 한 잔 마셨고, 아이는 하던 대로 정원의 새모이 함에 모이를 가득 채운 후 할아버지와 사이좋게 거실에서 영화를 보았다. 작별 인사를 나눌 때 시아버지가 기쁜 표정으로 내게 말씀하셨다.점점 아이와 친해지는 것 같아 좋다고.
지난번에도 금요일 방문 후 다음 방문 날짜를 물어보시길래 이번 주 화요일 가겠노라 말씀드렸는데 하루 전날 시어머니 톡을 받았다. 할아버지가 둘은 또 언제 오냐고, 오늘 하루에만 벌써 세 번이나 물으셨다는것이다.또 한 번은 목요일이나 금요일 올게요, 했더니 두 번 다 와도 좋단다, 하셔서 아이도 나도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이런 시절이 좋은 것이다. 좋은 때도 나쁜 때도 영원하지 않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또 기다려지는 게 사랑이고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관계의 최대치 아닌가. 그 속에서 아이도 큰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언제 혼자자고 갈 거냐고 물으시자냉큼 '곧요!' 하고 대답할 만큼.
아이는 어제저녁을 할머니 댁에서 꼭 먹고 가자고 엄마를 졸랐다. 굵어지는 비 때문에 정원일은 일찍 마감했다. 돌아갈 버스 시간도 알아놨고, 정류장은 시어머니 댁에서 걸어서 몇 분도 걸리지 않는 곳이라 두 분이 좀 쉬시게 일찍 돌아갈까 고민할 때였다. 시어머니는 내 남편이 언제 귀가하는가도 궁금하셨을 것이다. 오늘은 일찍 갈까요, 했더니 아이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수영한다고 배가 많이 고팠나. 이럴 때는 솔직한 게 최고다. 마침 남편도 오겠다고 했다. 저녁에시어머니가 차려주신 빵과 치즈와 살라미 그리고 햄 접시는 깨끗이 비워졌다.
시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장미 꽃다발과 연꽃들(위) 본 지 2주 만에 피기 시작하는 라벤더(아래)
어제는 시어머니의 작업복인 레인 코트와 내가 들고 간 챙이 넓은 밀짚 모자를 쓰고 일했다. 지난주에 일할 때는 모기 때문에 성가셨는데 모기 스프레이를 뿌렸더니 얼씬도 못했다. 내 뒤쪽에서 장미 꽃밭을 손질하시던 시어머니가 탄성을 지르시더니 가장 탐스런 꽃줄기를 잘라 우리가 돌아갈 때 꽃다발을 만들어 주셨다. 마른 꽃봉오리를 자를 때마다 규칙적이고 절도 있게 들려오는 정원용 가위 소리가 세상을 평정하는 저녁 무렵이었다. 하늘은 흐리고 공기는 고요했다. 나뭇잎에 내려앉는 빗소리가 검고 흰 피아노 건반을 건너듯, 연못 위에 길게 누운 연꽃들 위로 지나는 바람의 발자국 소리 같았다.
어제 화제는 단연 분재형 소나무였다. 다이닝 룸 앞에 서 있는 이 소나무는 일본산이다. 주기적으로 정원사를 불러줄필요가 있는 나무 중 단연 으뜸이다. 시어머니는 언제나 오는 단골 스페인 정원사를 부르셨다고. 이번에는 남미 쪽에서 온 보조 정원사가 함께 와서 세 시간 동안 꼼꼼하게 손질을 해줘서 두 분을 흡족하게 했다. 소나무 한 그루에 든 비용은 230유로. 팁 포함 250유로였다. 내가 그 정원사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그러나 시어머니로부터 설명을 듣기만 했는데도 행복한 직업 같았다. 일거리도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독일 사람들은 사람도 물건도 여행지도 큰 하자가 없는 한 잘 바꾸지 않으니까.
지역 신문에도 간간히 구인 광고가 뜬다. 노부부의 정원을 손질해 줄 사람을 찾고 있음! 해외 이민을 고려하시는 분들이 참고하시기 바란다.기술 이민 항목에 정원사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튼 아이의 길고 긴 핑스턴 방학도 드디어 끝이 보인다.세상에 2주가 이렇게 길 수 있다니! 내가 원하는 건 평범한 일상이다. 아이는 학교 가고, 남편은 출근하고, 내게 글 쓸 시간이 주어지는 날들 말이다.시누이 바바라도, 시아버지 딸 미하엘라도 각각 1, 2주씩 휴가를 보내고 돌아오는 토요일. 오늘도 우리는 야외 수영장에 갈 것이다. 저녁엔 아이가 바바라 고모집에 가서 자고 싶단다. 정말 바라던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