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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un 22. 2019

독일의 정원사라는 직업

독일 시어머니의 정원


내가 그 정원사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그러나 시어머니로부터 말씀만 들었는데도 행복한 직업 같았다.

나무에 걸어두는 새 모이함 채우기는 아이의 일.


외국인이 독일에서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직업은 뭘까. 내 생각엔 정원사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 시어머니의 정원일을 하며 든 생각이었다. 핑스턴 방학이 시작되던 지난주 월요일 시어머니와 아버지가 재활 클리닉에서 집으로 돌아오신 후 주에 번씩 총 네 번을 방문했다. 그 사이 주말에는 따로 새어머니도 방문하고, 매일 알바도 해서 바빴다. 오전에는 아이와 집에서, 오후에는 아이와 야외 수영장을 오가느라 2주간 글쓰기도 제대로 하지 못했.


지난주 월요일과 이번 주 목요일은 핑스턴 공휴일이었다. 이번 방학과 공휴일에는 왜 그리 피곤하던지. 금요일인 어제는 샌드위치 데이라 알바까지 하루 쉬었다.  내내 아이는 내가 알바를 가는 3시간 동안 혼자 집에 있었다. 학 후 종교 시험을 대비해 기도문 6개도 외웠, 좋아하는 짱구도 보며  기다려 주었다. 아이의 친구 율리아나는 2주 동안 아침마다 초급 수영 강좌에 다녔다. 강좌 마지막 날인 어제 오전에는 율리아나와 수영장에서 만나 신나게 놀았다.


어제 오후에도 시어머니를 방문했다. 알바를 마치고 아이를 픽업한 후 뮌헨 중앙역에서 오후 3시 기차를 탔다. 30분이 걸리는 S반에 비해 15분밖에 걸리지 않는 기차는 시아버지 병원을 방문하던 때부터 내가 선호하는 교통편이었다. 지금까지는 역에서 택시를 탔는데 어제는 버스를 타고 갔다. 알아보니 1시간에 한 번 운행하는 버스 시간이 딱 맞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덥고 피곤해서 엄두가 안 났는데, 슈탄베르크 역에서 호수를 끼고 시어머니 댁으로 가는 길은 다섯 정거장에 5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진분홍 꽃나무 이름은 칼미아!


어머니 말씀대로 정원일은 끝이 없었다. 그러니 서두를 게 없단다. 충천한 사기와는 달리 2주 동안 집 앞 입구의 작은 정원도 끝내지 못했다. 지난번에는 아이도 거들었다. 아이가 찜한 진분홍 꽃나무의 이름은 칼미아 Kalmia. 아메리카 산으로 어머니가 알려 주신 독일 이름은 칼미에였다. 어제는 도착하자마자 부슬비가 내렸다. 언제나처럼 어머니가 내려주신 블랙커피를  잔 마셨고, 아이는 하던 대로 정원의 새 모이 함에 모이를 가득 채운  할아버지와 사이좋게 거실에서 영화를 보았다. 작별 인사를 나눌 때 아버지가 기쁜 표정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점점 아이와 친해지는 것 같아 좋다고.


지난번에도 금요일 방문 후 다음 방문 날짜를 물어보시길래 이번 주 화요일 가겠노라 말씀드렸는데 하루 전날 시어머니 톡을 받았다. 할아버지가 둘은 또 언제 오냐고, 오늘 하루에만 벌써 세 번이나 물으셨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은 목요일이나 금요일 올게요, 했더니 두 번 다 와도 좋단다, 하셔서 아이도 나도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이런 시절이 좋은 것이다. 좋은 때도 나쁜 때도 영원하지 않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또 기다려지는 게 사랑이고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관계의 최대치 아닌가. 그 속에서 아이도 큰다. 할머니 할아버지 혼자 자고 갈 거냐고 물으시자 냉큼 '곧요!' 하고 대답할 만큼. 


아이는 어제저녁을 할머니 댁에서 꼭 먹고 가자고 엄마를 졸랐다. 굵어지는 비 때문에 정원일은 일찍 마감했다. 돌아갈 버스 시간도 알아놨고, 정류장은 어머니 댁에서 걸어서 몇 분도 걸리지 않는 곳이라 두 분이 좀 쉬시게 일찍 돌아갈까 고민할 때였다. 어머니내 남편이 언제 귀가하는가도 궁금하셨을 것이다. 오늘은 일찍 갈까요, 했더니 아이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수영한다고 배가 많이 고팠나. 이럴 때는 솔직한 게 최고다. 마침 남편도 오겠다고 했다. 저녁에 어머니가 차려주신 빵과 치즈와 살라미 그리고 햄 접시는 깨끗이 비워졌다.


시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장미 꽃다발과 연꽃들(위) 본 지 2주 만에 피기 시작하는 라벤더(아래)

어제는 어머니의 작업복인 레인 코트와 내가 들고 간 챙이 넓은 밀짚 모자를 쓰고 일했다. 지난주에 일할 때는 모기 때문에 성가셨는데 모기 스프레이를 뿌렸더니 얼씬도 못했다. 내 뒤쪽에서 장미 꽃밭을 손질하시던 어머니가 탄성을 지르시더니 가장 탐스런 꽃줄기를 잘라 우리가 돌아갈 때 꽃다발을 만들어 주셨다. 마른 꽃봉오리를 자를 때마다 규칙적이고 절도 있게 들려오는 정원용 가위 소리가 세상평정하는 저녁 무렵이었다. 하늘은 흐리고 공기는 고요했다. 나뭇잎에 내려앉는 빗소리가 검고 흰 피아노 건반을 건너듯, 연못 위에 길게 누운 연꽃들 위로 지나는 바람의 발자국 소리 같았다.


어제 화제는 단연 분재형 소나무였다. 다이닝 룸 앞에 서 있는 이 소나무는 일본산이다. 주기적으로 정원사를 불러줄 필요가 있는 나무 중 단연 으뜸이다. 어머니는 언제나 오는 단골 스페인 정원사를 부르셨다고. 이번에는 남미 쪽에서 온 보조 정원사가 함께 와서 세 시간 동안 꼼꼼하게 손질을 해줘서 두 분을 흡족하게 다. 소나무 한 그루에 든 비용은 230유로. 팁 포함 250유로였다. 내가 그 정원사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그러나 시어머니로부터 설명을 듣기만 했는데도 행복한 직업 같았다. 거리도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독일 사람들은 사람도 물건도 여행지도 큰 하자가 없는 한 잘 바꾸지 않으니까. 


역 신문에도 간간히 구인 광고가 뜬다. 노부부의 정원을 손질해 줄 사람을 찾고 있음! 해외 이민을 고려하시는 분들이 참고하시기 바란다. 기술 이민 항목에 정원사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튼 아이의 길고 긴 핑스턴 방학도 드디어 끝이 보인다. 세상에 2주가 이렇게 길 수 있다니! 내가 원하는 건 평범한 일상이다. 아이는 학교 가고, 남편은 출근하고, 내게 글 쓸 시간이 주어지는 날들 말이다. 시누이 바바라도, 아버지 딸 미하엘라도 각각 1, 2주씩 휴가를 보내고 돌아오는 토요일. 오늘도 우리는 야외 수영장에 갈 것이다. 저녁엔 아이가 바바라 고모집에 가서 자고 싶단다. 정말 바라던 바다!

 

시어머니 정원의 분재형 소나무(before&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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