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시아의 새친구

포루투칼 친구 파트리치아

by 뮌헨의 마리


"너, 우리 애가 어떻게 너희 반에 들어왔는지 들었니?"


새친구 파트리치아 생일 선물로 준비한 핸드메이드 반지


3학년이 되자 알리시아 반에는 학생 수가 3명이나 늘었다. 그래서 현재 정원은 25명. 개학을 하자마자 아이는 신이 났다. 새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한 명은 다른 학교에서 전학을 왔고, 또 한 명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단다. 아이의 입에서 들은 건 셋 중 파트리치아라는 새친구 이름 뿐이었다. 파트리치아의 얼굴은 나도 몇 번인가 보았다. 아이 말대로 참 착하게 생긴 아이였다. 어느 날은 파트리치아의 엄마를 복도에서 만났다. 큰 감흥 없이 인사를 나누고 나서 파트리치아의 엄마가 내게 물었다.


"너, 우리 애가 어떻게 너희 반에 오게 됐는지 들었니?"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안도인지 체념인지 그런 류의 표정을 지었다. 알리시아가 파트리치아를 만나 기뻐한다는 내 말에도, 어디에 사는지 물어도, 다음에 우리 집에 놀러와서 알리시아랑 같이 놀게 하자는 제안에도 시큰둥했다. 김나지움에 큰 애가 있어서 같이 집에 가야 한다 했다.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파트리치아는 소위 미끄러져서 3학년에 진학을 못하고 2학년을 한 번 더 반복하는 케이스였다. 그런 경우가 있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그게 실제로 일어나는 지는 몰랐다. 이유는 아직 모른다. 대놓고 물을 수도 없어서.


저 엄마의 심정은 어떨 것인가. 개학 첫 주에 아이는 파트리치아라는 친구가 3학년에 못 올라가서 자기 반으로 왔다고 했다. 그 말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파트리치아가 너무 좋다고 노래를 불렀다. 율리아나는? 내가 묻자 율리아나는 다른 친구를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짐작이 되었다. 아이는 아직 학교에 단짝이 없는 것이다. 새로 오는 친구가 있으면 잘 대해주라는 엄마 말을 염두에 둔 건지 어떤 지는 모르겠지만 새친구를 사귄 게 천만 다행이었다. 소위 여자 아이들만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단짝이 없는 게 오히려 신기하다. 아직 그러기에는 이른 나이일까.



이미 밝혔듯 돌아보면 나 역시 그랬다. 친구는 많았어도 단짝은 없었다. 한 몸인 듯 심지어 화장실까지 붙어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조금 부럽다가도 금방 숨이 막혔다. 어린 나이에도 속박을 느꼈던 걸까. 조금 외로워도 자유로운 게 나았다. 그러다 찢어지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아, 알겠다! 나는 그걸 겁냈구나. 친구를 나의 분신인 양 여기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럴 때 감당할 자신이 없을 것 같아 미리 염려했구나. 어떤 관계든 깊어지기도 전에 뒷걸음질 치는 겁쟁이처럼. 그런 나 자신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


뮌헨에 와서 나 역시 새친구를 사귀는 중이다. 어떤 말이든 행동이든 자칫하면 진상이 되기 쉬운 중년의 나이에 말랑말랑한 관계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지나간 많은 상황과 현상을 유추해 보건데 나 자신이 그다지 편안하고 만만한 친구는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나 자신과 편안하게 사귀지 못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제 나는 나와 잘 지내고 싶다. 쓸데 없는 감정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 지난 날의 나 자신과 인연들을 조용히 내려놓기로 한다.


아이 역시 매 학년마다 숱한 새친구를 사귀고 마음을 주고 돌아서서 울기도 하겠지.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럽지 않은가. 엄마와 달리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니 가끔 버릇이 없을 수는 있어도 사랑이 부족해 징징대진 않을 것이다. 내가 제일 싫은 건 아이가 애어른처럼 구는 것. 때가 되면 누구나 어른이 된다. 그걸 앞당겨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아이들은 아이답게 자라야지. 포르투칼 출신인 아이의 새친구 파트리치아도 조용할 뿐 주눅이 들어 보이진 않았다. 그게 안심이 되었다. 가을날 두 아이의 우정도 도토리처럼 단단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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