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 행복한가

아이의 질문

by 뮌헨의 마리


"우린 각자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해. 그래야 행복해. 알았니?"



"엄마? 머해?"


철자도 안 맞는 메시지로 아이가 물었다. 이른 저녁이었다. 만둣국으로 저녁도 실컷 먹었겠다, 설거지는 개수대에 잔뜩 쌓아놓은 채 내일 브런치에 올릴 글의 초고라도 써야지 하고 노트북을 앞에 켜놓은 채로 읽고 있던 책에 빠져 있었다. 글에 맞는 사진을 몇 개 골라 놓고 다시 책을 읽던 나는 아이가 뭘 하나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갑자기 폰에 하늘색 바탕에 흰색 종이비행기가 그려진 텔레그램 메시지가 떴다. 남편이 아이패드에 자기 명의로 설치해놓은 텔레그램으로 아이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아이는 부엌 식탁의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장난기가 동해서 나도 텔레그램으로 답을 보냈다.


"엄마, 책 읽고 있어!"


남편이 보안상 가장 안전하다는 이유로 요즘 새로 사용하기 시작한 텔레그램이 나는 싫다. 동영상이 바로 뜨는 텔레그램의 의뭉스러운 시스템도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카톡으로도 충분한 걸 왜 새로운 SNS를 또 개설한단 말인가. 나 자신이 동영상을 싫어한다는 것을 여기 독일에 와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보이스톡도 충분한데 왜 얼굴까지 보며 통화를 해야 하나. 어색하고 불편해서 통화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양희 언니와는 서로가 비디오톡을 안 좋아해서 실수로 누른 비디오톡을 끊고 다시 보이스톡으로 통화를 한 적도 있다.


"심심해!"

"왜 심심해?"

"엄마 가 책 만 읽고(있어)서 심심해."


띄어쓰기도 문장도 제멋대로다. 차차 나아지겠지. 문제는 그런 게 아니다. 또 시작이었다. 내가 그 속을 모를까 봐. 슬슬 짱구가 보고 싶은 거겠지. 어림도 없지. 지금이 언제라고. 일요일 저녁 아닌가. 오늘은 진지하게 한 마디 해 주어야 한다. 이런 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번개가 치듯, 천둥이 울리듯, 뇌리에 금이 가도록, 바위가 쩍쩍 갈라지도록 한 마디 해 주리라.


"알리시아! 엄마 말 잘 들어. 엄마 눈을 쳐다봐. 우린 각자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해. 그래야 행복해. 알았니? 너처럼 어릴 때는 놀 때, 조금 더 크면 사랑을 할 때, 그리고 엄마 나이가 되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사람은 그럴 때가 가장 행복한 거야. 그걸 꼭 기억해, 알았니?"



맥락이 아주 맞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본론으로 들어갔다. 맘먹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이들은 금방 분위기를 파악한다. 그래서 조금 더 멀리 나가봤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의 눈이 반짝 빛난다. 엄마 눈에만 그렇게 비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 눈이 빛난 건가?


여자의 행복도 아이와, 남편과, 가정에만 있는 게 아니야. 그걸 꼭 명심하고 살아야 한다. 비록 언젠가는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야 마지막엔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지. 그래야만 진정으로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어. 물론 그날 밤 아이에게 얘기까지는 안 했다. 결론은? 완전 즐겁게 각자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이는 최근에 산 패션 스티커북으로 열심히 인형에 옷 스티커를 붙이며 창작에 열중했고, 나는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남편은 나중에야 왔다. 저녁 8시경이었다. 1시간 넘게 엄마와 같은 공간에서 재밌게 자신의 일에 몰두했던 아이는 파파에게 부엌 식탁에서 책을 소리 내어 읽어달라고 주문한 뒤 계속해서 스티커 놀이를 했다. 나는? 나도 계속 내 책을 읽었다. 그 정도 소음쯤은 아무렇지 않게 극복할 수 있었다. 누가 나한테 놀아달라고 징징거리지만 않고 내 독서에 집중할 시간만 주어진다면! 남편 밥은 안 챙기냐고? 내가 보기엔 똑같은데 한국에 있을 때보다 몸무게가 늘었다고 요즘 다이어트에 골몰하는 남편은 저녁 7-8시 이후면 밥 먹기를 거부한다. 미리 조금 먹고 들어온다.


100세 시대라는데. 넉넉하게 80까지만 보더라도 아직 남은 시간이 길다. 책 읽기면 어떤가. 글쓰기면 어떤가. 뜨개질이나 바느질, 그림이나 악기나 요리나 운동 뭐든지 상관없다.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차를 마시든 그게 무엇이든 자신만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만 기대는 건 한계가 있지 않나. 가족을 돌보고 가사일로 충분히 행복하다면 그것도 괜찮겠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아는 게 중요하다. 나는 그런 인간이 아니어서, 가족보다 친구보다 나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어서 그렇게 살면 우울증 오기 십상이다. 그래서 이타적인 삶은 일찌감치 접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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