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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Oct 09. 2018

가을 햇살이 비쳐 드는 곳

타니아 슐리 <글쓰는 여자의 공간>


시월부터 삼월까지 햇살 따라잡기


주말에는 복도에 가득했던 책장과 책들을 아이방 창가로 옮기는데 시간과 노력을 다 쏟아부었다. 내가 염두에 두는 건 가을볕뿐만 아니라 겨울 햇볕까지다. 시월부터 삼월까지 반년 동안 햇살 따라잡기. 한국처럼 어디 바닥에 앉을 곳이 마땅찮아서 지금까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던 것도 같이 해소가 되었다. 

책을 옮기며 발견한 책이 타니아 슐리의 <글쓰는 여자의 공간>이다. 여성 작가 35인의 창작 공간을 집중 조명하는 책. 비슷한 책으로 남성 작가들을 더 많이 소개했던 <작가의 책상>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되겠다. 그녀들을 글쓰기로 몰아붙인 창작의 무대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당연히 궁금했다.


나는 세 여성에게 관심이 갔는데, 미국이 배출한 가장 지적인 여성이라는 메리 매카시가 첫 번째다. 작업할 때 필요한 조건으로 "빛이 잘 드는 방"을 들었듯이, "빛이 잘 드는 시간"이 필요했던 그녀의 작업 시간은 거의 항상 아침 9시에 시작해 오후 2시에 끝났다나. 점심을 먹으러 집 밖으로 나가는 법도 결코 없었다고. 그것이 자신과 세운 일종의 원칙이었다. 매카시의 부모는 그녀가 여섯 살 때 둘 다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 그래서 두 조부모 사이를 오가며 자랐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녀의 작업 사진을 보라! 같은 여자라도 반하지 않고 배기기 어렵다.


메리 매카시(좌) 나탈리 사로트(중)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우)


두 번째는 나탈리 사로트. 그녀는 러시아에 사는 아버지와 파리와 제네바를 오가며 사는 어머니 사이를 왕래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가 이혼 후 각각 재혼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9시 15분부터 12시 30분까지 파리 집 근처의 카페에 가 있었다. 레바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시끌벅적한 카페로, 그녀는 그곳의 구석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공책에 글을 썼다. 그녀의 작품 대부분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기름기 다 뺀 담백한 노년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이 그 자체로 작품이다. 글쓰기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허공에 뛰어드는 일과 흡사하다. 카페에서라면 쉽게 뛰어들 수 있다."


세 번째는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낳고 열흘 후에 죽었다. 지칠 줄 모르고 여행을 다니던 아버지는 딸을 데리고 각지를 전전하며 키웠는데, 카지노에서 도박을 할 때면 딸에게 자신이 읽던 책을 다 읽으라고 건네고 들어갔다. 작가의 시작은 그렇게 출발했다. 미국인 여성 그레이스 프릭을 만나 오랜 보헤미안 생활을 끝내고 미국으로 건너가 42년간을 함께 살다가 그녀가 죽자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일흔여섯의 나이에 마흔 살 연하의 남성 동성애자 제리 윌슨과 정열적인 사랑에 빠지기도 했던 유르스나르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글을 썼던 작가였다. 그녀의 표정을 보라. 저토록 매력적인 할머니라니!

옥토버 페스트가 끝난 월요일 아침은 흐리고 추웠다. 길거리에는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이 가득. 이러니 내가 겨울을 준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전 내내 날씨가 흐려서 카페 이탈리에 가서 진을 치고 있다가 뭐라도 하나 먹을까 점심때 빅투알리엔 마켓을 어슬렁 거리는데 갑자기 반짝, 해가 나왔다. 당장 집으로 가야겠다 싶어 버스를 탔다. 오전에 카페에서 좀 떨었는지 몸이 으슬으슬 추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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