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는 해가 나왔을까
이런 걸 궁금해할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런데 해가 나왔다. 잠시. 봄날처럼 짧았다. 귀한 것은 다 짧구나.
시월을 하루 남겨둔 날이었다. 새벽에 출장을 가는 남편 때문에 4시 반에 일어났다. 하루 전날 느긋하게 출발해서 아침에 충분히 자고 일을 시작하면 좋을 텐데. 아이가 슬퍼한다고 절대 그러지 않는다. 하루 못 본다고 전날 저녁이면 늦게까지 책을 읽어주고, 다음 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5시에 칼 같이 출발했다. 그 이른 시각에 3시간을 차로 달려야 하는데 말이다.
저런 파파를 둔 아이의 마음이 짐작이 안 간다. 눈을 떠서 파파는? 묻는 아이에게 일찍 갔지, 심상하게 대꾸하자 대번에 아이의 눈에 글썽이는 눈물. 저런 건 일부러 시켜도 안 되는 일인데. 파파란 무엇인가. 어떤 존재이기에 하룻밤 떨어지는 이별 앞에서도 저토록 상심을 하고 눈물을 흘리나. 옆에서 본다고 다 이해되는 건 아니다. 나로서는 풀리지 않는 난해한 공식 같다.
며칠 전 10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서머타임이 끝났다. 한국과의 시차는 다시 8시간으로 돌아갔다. 아침 7시에 해가 뜨고 오후 5시에 해가 지는 날들. 같은 시간에 일어나도 여전히 어둡고 저녁도 빨리 찾아온다는 의미다. 새벽 5시 반. 하늘에 핑크빛 물이 들기 시작. 6시 반. 어둠이 물러나는 시각. 사위는 아직 어둑어둑. 7시 반. 지붕 위로 말간 가을 하늘. 지붕이 제 색깔을 띠기 시작. 8시 반. 골목까지 훤하게 날이 밝았다.
할머니 댁을 다녀오는 길. 오후 5시에 뮌헨 중앙역에 내리자 노을이 저토록 붉었다. 슈탄베르크 역에서 S반을 기다리는데 우리로 치면 완행이라고 해야 하나, 레기오날 기차가 도착하길래 탔더니 15분 만에 뮌헨 중앙역에 도착했다. S반과 같은 차표로 탈 수 있었다. 아이가 말했다. 앞으로 이 기차로 할머니 댁에 다니자. 나도 같은 생각이다. 안 그랬음 저런 황금 같은 석양을 어떻게 만났겠는가.
시월 마지막 전날 1박 2일 일정으로 출장을 갔던 남편도 일이 일찍 끝났다고 자정에 돌아왔다. 파파가 온다고 박수를 치던 아이는 11시까지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그 긴 저녁 시간을 어떻게 버텼냐고? 엄마들에겐 이런 때를 대비해 꿍쳐놓은 비상 무기가 하나씩 있게 마련. 침실 문에 붙여놓은 구구단을 2단부터 5단까지 무한 반복시켰더니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역시 한국식이 좋을 때도 있구나. 구구단이 그렇다. 한국 학생들이 수학을 잘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구구단으로 다져온 기본기와 암기력. 독일은 2학년 때부터 구구단을 노래로 배우는데 실제 계산할 때는 우리처럼 술술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구구단은 한국식으로. 이번 가을 방학에 엄마가 남몰래 숨겨둔 미션이다. 짱구의 도움도 슬쩍슬쩍 받아가면서. 아이가 절대 눈치 못 채게, 쉿!
시월의 마지막 날. 아침부터 대대적인 집 정리와 청소를 하며 유튜브로 나가수 노래를 들었다. 박정현이 부른 노래를 원곡의 보사노바풍으로 번갈아 듣는 것도 좋아하는데. 갑자기 아이가 말했다. "엄마, 슬픈 노래 말고 행복한 노래 듣자!" 아, 진짜. 아끼는 김범수와 자우림의 노래도 줄줄이 남았는데. 아이의 요청에 부응해서 김범수의 신나는 노래를 들었다. 아이가 방방 뛰며 내 손을 잡았다. 책장을 싹 치워버려 운동장처럼 넓어진 복도에서 아이와 함께 춤을 추었다.
조르바가 생각나는 시월의 마지막 날. 사려고 오래 별러온 그림이 생각난다. 삶의 물기 뚝뚝 떨어지던 그 댄스 그림은 언제 사나. 11월에는 점찍어 둔 크리스탈 전등을 사서 부엌에다 걸어야지. 가는 시월에 작별을 고한다. 돌아서면 다 과거고 전생 아닌가. 마주잡은 가을의 손을 놓아주기 좋은 오늘. 붙잡는다고 순순히 잡혀주는 게 뭐가 있나. 사람이든 시간이든.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즐거움도 아쉬움도 가슴에 묻는다. 좋은 시간이었다.
시월의 마지막 전날에는 뮌헨에 해가 나왔을까. 한가하게 이런 걸 궁금해할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런데 해가 나왔다. 그것도 잠시. 봄날처럼 짧았다. 귀한 것은 다 짧구나. 그럼 시월의 마지막 날엔? 그날도 나왔다. 그것도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 꽤나 길게. 그리고 해가 지는 5시까지는 구름. 이런 걸 누가 궁금해하겠냐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