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우리는 '마음'을 먹고 돌아왔다

Y의 삼겹 수육 그리고 돼지족발

by 뮌헨의 마리


Y의 초대는 문학 정기모임과 같은 날이었다. 희와는 미리 한글학교에서 만나서 가기로 했다. 희의 제안으로 꽃다발도 준비했다. 그륀발트로 가는 25번 트람을 타고 역에 내리자 가을이 깊어져 있었다. 뮌헨 생활 7년째라는 희가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날도, 단풍도 처음이라고. 곧 트람이 도착할 그림 같은 철로를 감상하며 윤을 기다리는 시간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날 번개 및 정기모임은 Y의 제안이었다. Y의 집에 한 번도 못 온 희를 위해, 그리고 직장 다니느라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을 게 뻔한 윤을 위해서. 그날 자신의 거실 통유리를 뚫고 밝게 비쳐들던 햇살처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던 Y의 마음. 얼마 전 크게 아팠던 희는 조금 여위었으나 밝은 모습으로 모두를 안심시켰고.


그날 우리가 먹고 온 것은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Y의 마음이었다.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Y가 일일이 나열해 주었음에도 이름이 다 기억나지 않는 향신료를 넣고 전날부터 준비했다는 쫄깃한 족발. 또 그처럼 갖가지 향신료를 넣고 만든 수육. 고기와 야채쌈 위에 올리자 반짝반짝 빛나던 보쌈김치. 청국장과 청포묵이라 하던가. 치자 대신 강황 물을 들였다며 단풍처럼 노랗고 곱던. 직접 만든 마늘 고추기름으로 버무린 오이 샐러드. 가지와 양파와 마늘종 장아찌. 그리고 Y가 직접 빚은 만둣국과 노란 현미밥..



늦가을 햇살이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오던 거실의 양탄자 위에 편안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오후. 어두워질 무렵에는 조명을 밝힌 소파 쪽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Y가 내려주는 맛있는 커피와 와인을 마셨다. 아이가 언제 오냐고 자꾸만 톡을 보냈지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쉽사리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 저녁이 자주 찾아오는가.


11월의 알렉시예비치 책은 조금 무겁고 우울했음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주고 작품의 의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써준 모두에게 고맙다.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여러 가지 각도에서 바라본 시선은 함께 읽기의 소득이다. 반복되는 패턴으로 다소 지루한 감이 있었다는 평도 있었지만 이데올로기를 떠나 인간만이 줄 수 있는 묵직한 감동에 동의하는 쪽이 더 많았다.

12월에는 나쓰메 소세키를 읽기로 했다. 아무 작품이든 골라달라는 Y에게는 <마음>을 건네주었다. 성탄절이 오기 전 우리 집 앞 간판 없는 작은 이태리 식당에서 송년회를 하자고 제안한 건 나였다. 예약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아늑한 그곳에 다시 모여 저물어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축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이도 성격도 취미도 다른 다섯 명이 봄에 만나 겨울의 문턱까지 무사히 온 것도 자축하며.

Y의 집을 나온 것은 밤 9시가 넘어서였다. 밖에는 밤안개가 짙었다. Y가 외투를 걸치고 트람역까지 따라 나왔다. 집에서 10분 넘게 걸어야 하는 길을. 봄날처럼 포근한 밤이었다. 고요한 밤길을 함께 걷는 일은 즐거웠다. 인적도 드문 길에 다섯 개의 목소리와 열 개의 발소리가 화음을 맞춰 울렸다. 역에서 다음 트람을 17분이나 기다려야 했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언제나 그렇다. 넉넉한 사람 하나가 열을, 백을 안는다. 평화로운 관계를 위해 꼭 많은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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