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가을 방학이었다. 방학은 어찌 이리 많나. 지난주에 시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다. 방학 때는 뭐 하니? 할머니 보러 한 번 안 올래? 그 말씀이 어찌나 반갑던지 곧바로 찾아뵈었다. 요즘은 남편 없이도 시어머니를 곧잘 찾아가고, 시어머니와 사시는 양아버지와도 잘 지낸다. 구십이 넘으신 분이 어떻게 바뀌나. 젊은 내가 이해해야지.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하자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나도 내가 이렇게 빨리 철이 들 줄 몰랐다.
점심은 뭘 먹고 싶냐, 손녀가 생선을 좋아한다고 생선 수프는 어떠냐 물으셔서 내가 더 반색을 했다. 어머니의 부야베스 레시피를 제대로 배워보리라. 과연 4가지 생선 및 새우와 얼린 생선 육수와 통 토마토와 맑은 토마토소스 두 가지 그리고 마늘과 통후추, 파아슬리까지 깔끔하게 준비하고 계셨다. 어머니 음식 팬인 며느리는 순서를 잘 지켜보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생선은 10분, 새우는 마지막 5분 전에 넣으시는 것까지 잘 외워두었다. 맛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다음에는 굴라쉬 수프도 배워봐야지. 뮌헨에 사는 동안 어머니 요리는 내가 접수해야겠다. 진작 이런 자세로 살았더라면 요리의 달인이 되었을 텐데. 파아슬리를 식탁에 미리 가져다 놓으라며 어머니께서 고백하시길 준비한 허브를 깜빡한 적이 여러 번이란다. 어떤 날은 메인 요리에 곁들여 먹으려고 감자 요리를 준비해 놓고도 까먹고 테이블에 안 내신 적도 있었다고. 하하하! 음식을 하다 말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마주 보며 큰소리로 웃었다. 이런 이야기마저 편안하게 주고받는 분이 내 시어머니라니.
디저트는 대봉 단감. 여기서는 일본어로 카키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알코올인 슈납스를 살짝 부어 먹었었는데, 요즘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같이 먹는다. 후식으로 초콜릿도 등장. 양아버지께서 어찌나 초콜릿을 좋아하시는지. 당연히 에스프레소 한 잔도 빠지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식기를 세척기에 넣고 정리하시는 동안 나는 폰을 들고 어머니의 정원으로 나가 한창 물들어가는 단풍을 찍었다. 어쩌면 볼 때마다 이리 예쁜가. 어머니의 저 부지런함은 흉내조차 내기 힘들다. 글도 저렇게 부지런히 써야 할 텐데.
점심을 먹고 할머니와 아이와 셋이서 수영장에 갔다. 4년 만에 새로 지은 수영장은 호수와 연결된 야외 데크까지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었다. 내년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아이 수영 실력이 향상된 것은 순전히 할머니 덕이다. 아이가 만 두 돌이 되자 할머니께서 어찌나 수영을 강조하시는지 세 돌 때부터 수영장을 들락거렸다. 운동 신경이 없어도 만 3~4년을 수영장에서 살다 보면 어떻게든 되는 모양이다. 우리 아이가 산 증인이다. 오늘 우리는 할머니를 따라 삼총사처럼 1.25m와 3.5m로 나뉜 풀장을 열 번도 더 왔다 갔다 종횡무진 누빔으로써 수영 대장이신 할머니로부터 아낌없는 칭찬을 들었다. 내년 여름은 호수에도 도전해 봐야지.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수영장 내 비스트로에서 따끈따끈한 감자튀김을 먹었다. 내가 락커에서 돈을 가져오겠다고 하자 어머니께서 아니다 하시며 직접 가져오셔서 사 주셨다. 수영장 유리창 너머로 해가 지는 호숫가 풍경이 보였다. 올해로 만 30년을 살아오신 이곳. 30년을 가꾸어 오신 당신의 정원. 그 정원을 바라보며 30년 동안 써오신 일기장. 할머니의 성실하고 충실한 삶의 자세를 아이가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 '카타리나, 그 일기장은 절대로 버리시지 마세요.' 내 말에 어머니가 수줍게 웃으셨다. 석양빛을 받은 어머니의 양쪽 뺨이 발갛게 빛났다. 단풍처럼 아름다웠다. 할머니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한국이나 독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