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의 김치찌개

뮌헨의 조카네 집

by 뮌헨의 마리


"우리 조카는 눈이 보배야!"


어제 점심때 조카집에 다녀왔다. 조카는 우리 집에서 52번 버스를 타고 아이 학교 가는 반대쪽인 뮌헨의 동물원 바로 앞에 산다. 우리 버스 종점이다. 버스로는 조카집에서 우리 집까지 10분, 우리 집에서 빅투알리엔 마켓까지 10분이니 조카는 시내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에 사는 셈이다. 지하철 세 개 노선이 지나는 우리 집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고 중앙역으로 갈 때도 3번째 역. 그 또한 20분 거리다.


여름에 부산에 다녀올 때 2년 묵은 엄마표 김치를 들고 왔단다. 그걸로 이모인 나를 초대해 김치찌개를 끓여주었다. 자기 엄마를 닮아 당연히 손맛이 좋았다. 내 집에서 연륜처럼 잠자코 먼지만 쌓아가다가 화분 받침대로 쓰일 뻔하던 뚝배기가 조카 집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일도 흐뭇했다. 흰 밥에 짜지도 맵지도 않고 입에 착착 감겨오는 김치찌개는 환상이었다. 양파와 주키니만 넣었다는 작은 부침개는 콩만 한 소꿉놀이용 프라이팬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또 그렇게 맛있는 건지!


버스 종점 앞 버스길에는 큰 슈퍼가 있어 장보기에도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조카의 집은 5층 아파트의 꼭대기층. 우리로 치면 옥탑방이라고 불러야 하나. 옥상도 발코니도 없고 바깥에서 보면 달랑 창문 하나만 보이지만 작은 부엌 쪽에서 내려다 보이는 건물 안쪽 풍경은 멋졌다. 정원에는 벌써 낙엽이 지고 가을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용 미끄럼틀과 모래놀이터, 시멘트로 만든 탁구대도 있었다.

조카의 아파트에는 방이 2개. 우리식으로 치면 침실 하나와 거실. 침실엔 먼저 살던 사람에게 산 옷장 하나와 더블베드 하나. 그 침실을 여자 둘이 같이 쓴단다. 둘 다 참 성격도 좋다. 침대 겸용 소파와 TV가 있는, 독일에서는 문이 달려 있어 방으로 치는 거실은 무척 컸다. 그리고 욕실과 화장실. 이태리 친구와 둘이 살기에 적당해 보였다. 무지막지한 뮌헨의 월세는 이런 소형 아파트조차 1,000유로.



버스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갈 때 조카가 다음다음 정류장인 마리아 힐프 성당이 있는 광장에 잠시 내리잔다. 검색해보니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오전에 시장이 열린단다. 그럼 그렇지! 그런 직거래 시장이 없을 리가 없을 텐데 동네 부근에서 본 적이 없어 의아했다. 모르면 묻던가 검색이라도 해보던가. 조카가 없었으면 평생 모르고 살 뻔했다.

빅투알리엔 마켓이나 일반 슈퍼와 비교해도 조금 싼 것 같았다. 싱싱한 야채와 과일 그리고 색색의 꽃들. 알뜰한 주부라면 치즈와 살라미 쪽을 먼저 살폈을 텐데. 이 생에 살뜰한 주부 되기는 글렀다. 꽃들 사이를 누비다 눈에 띈 잘 말린 라벤더 다발이 절반 가격. 오호, 요런 눈썰미로 글이나 쓰면 다행이겠다. 약한 과목보다 강한 과목에 집중하는 게 노력 대비 효과가 크겠지. 정작 공부할 시절에는 없던 통찰이다.


핑크빛이라고 할까 살구빛이라 할까 오묘한 카네이션 한 다발을 샀다. 카네이션은 하굣길에 알리시아의 병문안 카드와 함께 이모부의 외숙모님 탄테 헬가께 선물했다. 허리 수술로 누워계신 지 오래인데 병문안 한번 못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꽃과 카드를 전했다. 침대에 누워계신 분의 집을 어떻게 들어가겠나. 꽃은 탄테 헬가와 잘 어울렸다. 아이를 보고 많이 기뻐하셨다.


저녁에 귀가한 남편에게 아마존에서 전기식 모카 포터를 주문해달라 했다. 빅투알리엔 마켓 앞의 럭셔리한 주방 전문점(80유로)과 서민 백화점 갤러리아(70유로)에 비해 30유로 가까이나 할인한 51유로에 구입이 가능했다. 물론 이 모든 정보는 조카한테서 흘러나왔다. 내가 모르는 건 무조건 조카에게 들이대는 이유다. 검색보다 빠르다! 남편이 자기 와이프를 모를 리가 있나. 깜짝 놀라며 그렇게 가격 차이가 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하는 눈치길래 이실직고했다. "내 조카 눈이 보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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