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때문에 1001번을 울었어! 한국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라고 아이가 말했다. 그저께 밤이었다. 저녁 8시 반에 침대에서. 아니 저게 대체 무슨 말인가? 내가 언제? 도대체 무슨 일로? 이번 주부터 봄에 읽다가 만 <나니아 연대기>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화기애애하게.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머릿속도 팽팽 돌면서.
미안한데 밤에 물 좀 달라고 하는데 귀찮다고 소리를 질렀다나. 고함치고, 야단치고, 짜증 내고, 기분 안 좋게 삐져있고. 정리하자면 그렇다. 아, 그랬나, 맞다! 엄마라는 사람이 애가 물 좀 달라는데 그것도 미안하다고 단서까지 달고 부탁하는데 그랬다니, 그게 엄마인가. 자기 애가 아니라 남의 애라도 친절하게 물 아니라 뭐라도 건넬 법하건만.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그런데 책 잘 읽고 나서 저런 얘기가 갑자기 왜 나온 거지?
당연히 기억한다. 침대에서 책을 30분이나 읽어줬는데 계속 읽어달라고 할 때. 입 속은 마르고, 눈은 감기고, 무거운 책을 드느라 팔도 아픈데. 겨우 책을 끝내고 미안한데 엄마 피곤하니까 불 좀 끄고 와달라고 부탁하면 싫다며 얄밉게 딱 돌아누운 건 누군데? 그런데 그 상황에서 물까지 갖다 달라고 하면 아무리 엄마라도 화가 난다. 그래서 애를 침대 밖으로 나가게 하고, 물을 마시게 하고, 전등을 끄고 돌아오게 한 적이 여러 번이다. 변명하자면 늘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침대 밖으로 나간 적도 절반쯤 된다.
이번 주부터 다시 나니아를 읽기 시작했다. 1000페이지 중 250페이지 정도를 남기고 중간에 그만둬서 아쉬웠는데 아이가 계속 읽기를 원하자 쾌재를 불렀다. 읽다만 책은 의미가 없다. 읽었다고 하기도 그렇고, 안 읽었다고 보기도 애매하니까. 특히 이런 대작은 끝까지 읽는 게 중요하다. 상징성이 커서. 아이들의 성취감을 불러일으키는 데도 한몫하니까.
대신 아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엄마가 책 읽어주기 전에 아이가 먼저 엄마한테 한글책을 읽어줄 것. 아무리 짧은 책이라도 괜찮다고 하자 아이가 고른 베스트 1,2,3은 다음과 같다. <누가 내 머리 똥 쌌어?><안 돼, 데이빗!><사과가 쿵!>. 1번 책의 작은 글씨 지문은 생략하게 했다. 2번은 워낙 짧고 재미있는 내용이라 애도 낄낄거리며 읽었고, 3번은 아이가 아기 때 책을 찢어서 엄마가 테이프로 붙여놓은 걸 보고 즐거운 추억에도 잠겼다.
이번 주부터 아이는 파파와 도서관에서 빌려온 <로빈슨 크루소>를 시작했다. <허클베리 핀>과 <톰 소여의 모험>과 <80일간의 세계일주> 같은 책들도 자선단체 가게에서 틈틈이 사두고, 파파와 아이가 명작에 얼마나 즐거움을 느낄지 지켜보는 중이다. 일단 책을 읽어주는 파파가 재미를 느껴야 하기에 가능성은 반반. 나 역시 아이의 한글책을 언제부터 어떻게 읽힐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두 손으로 들기도 무거운 <나니아 연대기>에 슬쩍 기대본 게 도움이 되었다.
파파 쪽은 모르겠고, 한글책 시작은 괜찮았다. 다음 책 세 권도 차례로 골라놓은 걸 보면. 대신 아이가 힘들어하면 두세 페이지씩만 읽도록 하고 한 권을 며칠에 걸쳐 읽힐 생각이다. 어떤 언어든 책을 읽지 않고 고급 어휘를 사용하고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말만 할 줄 알고 독해와 작문이 안 되는 언어도 한계가 있다. 한국의 학교 시스템에 포함되지 않고도 충분한 한국어 실력은 책 읽기에 달렸다고 본다.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까? 당연히 아이도 좋아해야 성과가 있겠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만이 엄마의 일.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 야외 전시회 소식은 바바라에게 들었다. 뮌헨의 쾨니히스 플라츠 광장에서. 눈 오는 화요일이었다. 세계대전 당시 쾨니히스 광장에 도열했던 나치 대신 흰 눈 속에서 핏빛으로 피어난 붉은 꽃들. 3,200개의 붉은 실크 꽃들 사이로 'Never Again(Nie Wieder,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이라는 절규가 검붉게 피어나고 있었다. 예술가의 이름은 발터 쿤 Walter Kuhn. 일명 반전 예술 Anti-Kriegskunst로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11월 11일 오전 11시부터 3주간 전시된다.
전시회의 심벌은 양귀비 꽃. 왜 양귀비 꽃이었을까.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1915년 프랑스의 국경지역 벨기에의 플란더스에는 연합군과 독일군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군의관으로 파견 배치된 시인 존 맥크리 중령(John A. McCrae)도 친구를 잃고 양귀비꽃이 만발한 그곳에서 '플란더스 들판에서 In Flanders Fields'라는 시를 쓴 후 전장에서 죽었다. 그래서 영연방 국가들이 현충일로 정한 1차 대전 종전일인 11월 11일은 포피(Poppy, 양귀비) 데이'로 불린다.
눈물에도 총량의 법칙이 있었으면 좋겠다. 1만회라든가 1만 리터라든가. 그래서 아이가 앞으로 흘릴 눈물의 횟수가 1001번만큼 적었으면. 그렇게만 된다면 난 괜찮은 엄마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아이가 흘릴 눈물의 총량을 줄여준 엄마니까. 그런데 전쟁터에서 아빠와 남편과 아들과 친척과 친구를 잃은 수많은 이들의 눈물은 어찌하나. 누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나. 꽃다운 나이에 피지도 못하고 스러진 그들의 넋은 또 누가 위로해 주고? 다시는 전쟁 없는 세상만이 답이겠다. 뮌헨에는 지난 토요일 이후 5일 만에 해가 나왔다. 오늘 한번 쾨니히스 플라츠로 나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