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의 일이다. 퇴근 무렵 남편이 독일 남부의 대표 슈퍼마켓인 알디 Aldi에 들렀다가, 근처 미용실에서 머리까지 깎고 귀가한 건 저녁 7시 반. 그동안 아이는 벌써 두세 번이나 파파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파파, 언제 와? Papi, wann kommst du?"
남편은 상세한 귀가 시간을 몇 번이나 적어 보냈다. 평소보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남편이 식탁에 펼친 책은 어린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로빈슨 크루소. 30분 동안 책을 읽어준 후 남편이 나와 아이에게 사무실에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뭐지? 다음날 일찍 베를린 출장도 가야 하는 사람이. 뭘 좀 가져와야 한단다. 파파가 현관문을 닫기도 전에 예상한 대로 아이가 '파피, 파피..' 하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어쩌면 저렇게 순순히 눈물이 나올까. 신기했다. 아이들의 영혼과 두 눈이 맑은 이유는 저 시도 때도 없이 흘리는 눈물 탓이겠지. '넌 두 눈을 짜기만 하면 금방 물이 나오는구나?' 엄마가 놀리자 장난스럽게 눈을 크게 떴다가 질끈 감으며 눈물방울을 볼 위로 천천히 흐르도록 연출한다. 기분 맑음. 내친김에 한글책 한 권을 읽게 했다. 옛날이야기는 읽기가 만만하지 않았다. 둘 다 급 피곤해져서 엄마의 책 읽기는 다음날로 미루고, 파파가 오는 것도 모르고 잠이 들었다.
새벽 5시. 아침 빵을 먹은 후 사과 하나와 샌드위치를 들고 현관문을 나서던 남편이 빙그레 웃으며 이웃집 현관 앞에 얌전히 놓인 니콜라우스 초콜릿을 가리켰다. 원래는 현관 밖에 신발을 내놓아야 하는데 세 살짜리 사무엘네도 그건 생략했다. 아침 등굣길에 보니 우리 집 1층 아기가 둘인 현관에도 니콜라우스가 세트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를 깨운 후 복도에 불을 켜자 뒤따라 나오던 아이가 눈을 비비며 방문 앞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엄마, 저게 뭐야?' 오 마이 갓!나는 왜 못 봤지? 그제야 남편이 전날 저녁에 사무실을 다녀온 이유와 아침에 혼자 빙그레 웃던 이유를 알았다. 내가 못 본 것을 눈치챈 남편의 미소. 졌다! 저러니 날이면 날마다 파파를 부르며 울지. 나라도 그럴 것 같았다. 다음 수순은 당연히 파파에게 인증샷 보내기로 이어졌다.
12월 독일의 아이들은 신난다. 12월 1일부터 매일 아침 날자별로 하나씩 먹을 수 있는 크리스마스 달력 초콜릿. 오늘부터 우리 아이는 공식적으로 두 개의 달력을 가졌다. 그것도 모자라서 오전 간식 도시락엔 반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비스킷도 몇 개 넣어달란다. 샌드위치와 과일과 야채 스틱보다 더 인기가 많은 과자가 초콜릿 범벅이 아닌 것만으로도 감사할 판이다. 이러니 유럽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을 좋아하는 게 이상하지 않구나.
학교에 늦을까 봐 총총 계단을 내려오는데 뒤에서 아이가 소리쳤다. '엄마, 집집마다 니콜라우스 있는 거 봤어!' 그리고 진지하게 묻는다. '니콜라우스는 산타 할아버지야, 아니야?' 알아보니 맞다! 니콜라우스는 독일의 산타. 원래는 12월 6일 찾아오다가 12월 24일로 바뀌었는데, 중요한 건 지금도 계속 찾아온다는 것. 그러니 독일엔 산타가 두 명인 셈. 오늘 학교에도 니콜라우스가 올 것이다. 니콜라우스 모양의 초콜릿과 사과나 귤과 호두 등을 들고서.
p.s. 심지어 집으로 찾아오시는 니콜라우스도 있단다. 천사들과 함께. 방금 레아마리네에 찾아온 니콜라우스와 천사들 소식을 들었다!
신청하면서 아이들의 세 가지 잘하는 것과 한 가지 고쳤으면 하는 것을 이메일로 보내면 이렇게 직접 와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신단다. 아이들은 니콜라우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바짝 긴장한다나..
보내준 동영상 비디오도 봤는데, 오른쪽 천사는 얼어서 꼼짝 않고 있는데, 왼쪽 지팡이 든 천사가 잠시도 가만히 안 있고 사부작 거리는 거 다 봤어! 입술에 미소까지 띠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