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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25. 2018

성 안의 작은 크리스마스 마켓

독일의 크리스마스


작은 성 안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했다. 예상보다 아담하고 격조 있는 성탄 마켓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앞둔 주말인 토요일이었다. 남독일의 끝이자 오스트리아의 이웃 마을인 레아마리네를 방문했다. 지역의 중심지인 바드 라이헨할 Bad Reichenhall에 있는 작은 성 안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했다. 예상보다 아담하고 격조 있는 성탄 마켓이었다. 레아마리맘의 초대에 망설임 없이 출발한 것은 작고 소박한 것에서 오평온함이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12월 내내 크리스마스를 향해 치닫는 분위기에 휩쓸려 성탄이 오기도 전에 조금 지친 탓이기도 했다. 크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마켓의 분주함. 학교 행사들. 반짝이는 장식들은 추운 독일의 겨울이 주는 선물임에는 틀림없지만 뭐든 지나치면 피로한 법이다. 하룻밤 묵기를 권하는 따뜻한 초대까지는 응하 못했다. 몇 달 전부터 여왕처럼 위엄 있게 대기하고 있는 친할머니와의 일요일 점심 약속 때문에.


그날은 아침부터 바람이 많이 불었다. 매서운 바람은 아니었다. 모자를 쓰지 않은 머리칼을 제멋대로 휘날리게 하거나 밖으로 내놓은 양손을 서둘러 주머니 안에 넣게 하거나 단단히 옷자락을 여미거나 목 아래까지 단추잠그게 하는 정도. 그러나 오전 10시에 출발해서 정오에 도착하려는 계획은 무산되었다. 다음날 친할머니 방문과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새 할머니 댁에서 사흘간 머물 계획이라 선물 및 여행 준비로 분주한 아침이었다.

그 와중에 남편이 슬쩍 숟가락을 보태는 게 아닌가.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것. 아침을 먹고 차를 빼러 가는 사이 열쇠를 어디선가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우리 동네는 100년 된 건물을 비롯 오래된 집들이 많고 지하 주차장이 없어서 대부분 거리에 주차를 하는데 하필이면 그날은 차를 주차한 곳이 멀었다. 낮도 짧은데 이게 무슨 일이람. 남편은 바가지를 좀 긁혀야 하리. 차를 같이 쓰는 시누이에게 두 번째 키를 받아와서 오후 2시에 성에 도착했다.


  

성 입구의 주차장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산 아래로는 들판이었다. 어두워지는 늦은 오후엔 방문객이 더 늘 것이다. 성 안의 마당은 넓지는 않았으나 성탄 마켓을 열기에 충분했고 둥글게 설계된 성의 1층과 2층 내부에는 레스토랑을 비롯한 다양한 크리스마스 가게들이 보물처럼 숨어 있었다. 우리는 바람 부는 성 마당에 서서 뜨거운 와인인 글뤼바인을 나눠마셨다. 글뤼바인도 맛있었지만 아이들용으로 파는 따끈한 킨더푼치 맛도 상큼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벽난로에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아늑한 동굴 같은 레스토랑에서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잔돈을 받아 들고 가게들을 오가느라 바빴다. 레아마리맘과 나도 아이들을 파파들에게 맡기고 가게 구경에 나섰다. 예쁜 가게와 앙증맞은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눈이 즐거운 성 안 마켓이었다. 그중에서도 처음 보는 터키 가게의 달콤한 군것질 거리들은 색깔도 맛도 일품이었다. 우리는 레아마리 파파가 좋아한다는 아몬드 꿀 스틱을 한 입 맛보았다.


레아마리 집에서 다시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고마움과 미안함이 그리스 신화 속 베 짜는 여인 아라크네의 베틀처럼 상하좌우로 바쁘게 교차했다. 그날의 메뉴는 삶은 돼지 목살 사이로 얇게 저민 배와 사과. 두반장을 가미한 소스가 압권이었다. 잘 익힌 목살과 아삭하고 상큼한 배와 사과의 조화라니! 저런 놀라운 레시피를 귀와 눈을 열어두고 늘 보고 듣고 따라 하는 센스라니! 그보다 더 놀라운 건 하루 중 점심과 저녁 두 끼를 매일같이 4인 가족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짓고 신선한 야채를 데치고 음식을 만드는 저 정성. 디저트는 수제 카스테라였다. 원조 나가사키 카스테라 부럽지 않을 만큼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다음엔 꼭 뮌헨에서 만나자 약속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점점 익숙해지는 레아마리네 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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