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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26. 2018

보석 트리를 본 적이 있나요

탄테 헬가의 크리스마스트리


이태리 형부의 외숙모님이자 우리 이웃에 사시는 탄테 헬가의 전화를 받은 것은 알리시아의 성탄 방학 전날이었다.



이태리 형부의 외숙모님이자 우리 이웃에 사시는 탄테 헬가의 전화를 받은 것은 알리시아의 성탄 방학 전날이었다. 이모나 고모, 숙모와 외숙모 등을 지칭하는 '탄테 Tante(Aunt)'는 외숙모님이 알리시아에게만 허락하신 호칭이지만, 여기서는 나도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물론 탄테 헬가와 직접 대화를 할 때는 공손하고 정중하게 프라우 보르도니 Frau Bordoni(Mrs. Bordoni)라고 성으로 불러야 하겠지만.

탄테 헬가의 요점은 알리시아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싶으니 혼자 와서 받아 가라는 것. 당연하지 않은가. 성탄절 선물은 산타가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살짝 놓아두어야 하는 법. 니콜라우스 데이 때 우리가 없어서 1층에서 이웃집 벨을 아무리 눌러도 입구 문을 안 열어주더라고. 하지만 당연하다 하신다. 나 보고도 현관문을 함부로 열어 주면 안 되고 어디에서 나왔다고 하면 신분증부터 확인해야 한단다. 세상 어딜 가나 할머니들의 말씀은 옳다.

탄테 헬가가 오라는 시간에 맞춰 정확하게 방문했다. 허리 수술하신 분 맞나 싶을 정도로 크리스마스트리 등 집안을 멋지게 장식해 놓으셨다. 보석이 반짝거리는 트리는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한 눈에도 비싸 보이는 보석들은 아니나 다를까 너무 비싸서 1년에 하나씩 사 모으신 거란다. 우리 시어머니나 새어머니 트리에서는 보지 못한 취향이다. 트리뿐만이 아니었다. 창가의 예수 탄생 장식인 크리페 Krippe도 멋졌고, 탄테가 어머니로부터 받았다는 장식품 크리스마스 피라미드도 훌륭했다. 초에 불을 켜면 지붕이 바람개비처럼 돈다. 내가 너무 멋있다고 하자 수줍게 '크리스마스니까'라고 대답하셨다.



탄테 헬가는 혼자 살고 계신다. 형부의 외삼촌은 일찍 돌아가시고 자녀는 없다. 집을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게 꾸며놓으신 걸 보자 보는 내 마음도 밝아졌다. 탄테의 설명에 의하면 독일 크리스마스 전통은 이렇단다. 크리스마스이브날 오전에 온 가족이 성당. 점심을 먹고 가까운 시내 묘지에 가족 성묘. 저녁 식사 후 선물 개봉. 그리고 한밤의 성당 미사 2탄. 이런 건 또 처음 듣는다. 이런 게 바로 할머니들에게서만 전해 듣는 꿀 정보.


탄테에게 이태리의 크리스마스 빵 파네토네 Panettone를 사들고 갔는데 역시 꽃을 사들고 가는 게 나을 뻔했다. 너무 커서 혼자서 다 못 드신단다. 아까워라! 금방 먹으면 쫄깃하고 담백하고 진짜 맛있는데. 페스츄리와 카스테라의 조합 같다고나 할까. 우리 형부가 이태리 살 때 내 눈으로 보았다. 크리스마스 무렵 케이크 만한 파네토네를 한 팔에 안고 한꺼번에 다 뜯어먹는 것을. 지금쯤 얼마나 생각날 것인가. 나 역시 문학 수업을 듣고 난 후 언니랑 형부랑 롯데백화점 지하 식당가에서 양푼이 비빔밥을 그렇게 끼고 먹지 않았던가.


탄테 헬가 집을 나오자 밖은 어두웠고 바람이 몹시 불었다. 방학 종강 날이라 일찍 마친 아이를 한국 친구 집에 급히 인계해 놓고 왔기에 바람 같이 그 집으로 달려갔다. 무슨 바람은 그렇게나 불어 대는지. 아이 친구네 부엌에 앉아 있는데 그 집 엄마가 수제비를 끓여 주었다. 얼마 만에 먹어 보는 수제비인가. 놀랍게도 나보다 아이가 더 잘 먹었다. 바람이 심란하게 배경을 깔아주어서인지, 또 한 학기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단순히 그 집의 편안함 탓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렇게 맛난 수제비를 먹은 기억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드물 거란 생각. 수제비가 보석일 리는 만무한데 수제비 속의 노란 감자와 초록 호박과 빨간 단무지가 보석처럼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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