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페이지마다 이토록 나를 미소 짓게 만든 책은 근래에 없었다. 망설임 없이 그를 이시구로 앞쪽에 두기로 했다. 소설은 작품성만큼 재미도 중요하니까.
카페에 앉아 반스의 <연애의 기억>을 다 읽고 집까지 걸어온 날이었다. 우체국 앞 꽃집에서 꽃 사진도 몇 장 담고서.알바를 시작하기 전이었다. 저런 날들! 얼마나 한가했던가.집에 도착하자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이게 바로 줄리언 반스 효과겠다. 이것저것 다 넣은 달달한 커피 말고. 아침마다 마시는 카푸치노도 말고. 아메리카노보다 훨씬 쓴 커피가. 이럴 땐 '브리티시'라는 이름을 단 커피가 있었으면 좋겠다.
현관에 조카의 흰 운동화가 보였다. 조카도 뮌헨대학 어학반에 가기 직전이었다. 문제는 내가 누구와 말을 나눌 기분이 아니었다는 것. 조카에게 톡을 했다. 이모, 부엌에 와 있으니 놀라지 마! 눈치 빠른 조카는 두 시간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다 소설 때문이다. 아니다. 반스라는 작가 탓이었다. 내가 생각하던 문체를 그가 써버렸기에.그것도 미워할 수 없도록 멋지게!
자국인 영국은 물론 유럽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반스는 '전후 영국이 낳은 가장 지성적이고 재기 넘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집에 오자마자 두 번째로 집어 든 그의 책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과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행복한 항복! 몇 페이지마다 이토록 나를 미소 짓게 만든 책은 근래에 없었다. 망설임 없이 그를 이시구로 앞쪽에 두기로 했다. 소설은 작품성만큼 재미도 중요하니까.
인생에 문학 같은 결말은 없다는 것. 우리는 그것 또한 두려워했다. 우리 부모들을 보라. 그들이 문학의 소재가 된 적이 있었나? 기껏해야 진짜의, 진실된, 중요한 것들의 사회적 배경막의 일부로서 등장하는 구경꾼이나 방관자 정도라면 모르겠다.
나의 특기는 '특기'가 없다는 데 기반해 있었다. 다른 이들의 눈엔 두말할 것 없이 그냥 숙맥일 뿐이었지만. 가령 한잔 할까요-춤출까요-집까지 데려다 드리죠- 커피 한잔 어때요, 로 이어지는 단순해 보이는 수작마저도 나로선 요령부득인 호방함이 필요했다.
딕슨 선생이 그 말을 했을 땐 재기 넘치고 세련되게 들렸는데, 내가 하니까 그냥 경박하게 들렸다. (..) 내가 베로니카와 어울릴 때, 그녀의 행동은 언제나 본능적인 것으로 보였다. (..) 그리고 설령, 이렇게 나이 든 마당에 그녀가 그때뿐 아니라 모든 순간에 계산적이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한들, 그것이 사태에 무슨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이 경우, 사태란 나를 가리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다.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기본 설정 자체는 괜찮다.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이 책을 손에 들 이들을 위해 반전의 내용은 밝히지 않으려 한다. 세상에 무슨 일인들 못 일어나겠는가. 사람이 무슨 마음인들 못 먹겠는가. 그러니 플롯과 개연성에 트집을 잡을 생각은 없고 다만 한 가지. 마지막에 베로니카가 만나러 간 남자아이가 주인공에게 불편한 감정을 보이는 부분이 수긍이 잘 안 갔다.
그 대목에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대체 언제 봤다고? 그럼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건가? 누군지는 몰라도 보니까 그냥 기분이 안 좋아졌다? 느낌만으로 말이다. 그럴 수 있다. 현실에서는. 소설에서도 그런 처리가 가능하나? 내가 궁금한 부분이다. 누가 설명 좀 해주면 좋겠다. 반스에게 거는 안티는 아니다. 안티라니, 세상에! 내가 그에게, 그의 글에 얼마나 반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