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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Nov 26. 2018

상상의 도시를 걷는 즐거움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1


이탈로 칼비노의 도시들을 머릿속으로 걸어 다니며 드는 생각. 어쩌면 이런 상상력이 다 있나!


이탈로 칼비노의 도시들을 머릿속으로 걸어 다니며 드는 생각. 어쩌면 이런 상상력이 다 있나! 즐거움, 놀람, 기쁨, 그리고 스며드는 궁금증. 도대체 인간이 어떤 유년기를 거치면 이런 창의력과 창조성을 가지게 되나. 내 상상력의 밑천은 글쓰기 초반에 이미 바닥을 드러내던데.

처음엔 그런 글이 부끄러웠다. 누구한테? 글쓰기반 선생님과 문우들에게. 그 후엔 속내를 들켰다. 누구에게? 나 자신에게. 상상의 빈곤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그걸 부끄러워하는 내 마음이 더 부끄러웠다. 각설하고, 이 소설을 보라. 소설이 아니라 시라고 불러도 될 만큼 환상적인 , 이름마저 아름다운 이 도시들을.



육십 개의 은빛 돔과 온갖 청동 신상들, 주석으로 포장한 거리, 수정의 극장이 있고, 황금 닭이 매일 아침 탑 위에서 노래하는 도시 디오미라. 

한 지점에서 똑같이 뻗어나간 운하들로 촉촉이 젖어 있고 연이 날아다니는 도시 아나스타시아. 

구리 시계, 이발소의 줄무늬 차양, 아홉 개의 구멍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분수, 천문학자의 유리 탑, 수박 장수의 좌판, 은자와 사자의 상, 터키 식 목욕탕, 모퉁이의 카페, 항구로 향하는 골목이 차례로 이어지는 도시 조라. 

수천 개의 샘으로 이뤄진 도시, 사람들이 지하의 깊은 호수 위에 서 있다고들 상상하는 도시 이사우라.


깎아지른 듯 가파른 두 산 사이의 낭떠러지에 있는 거미집 같은 도시. 허공에 걸려 있어 나무다리 사이로 발이 빠지지 않게 주의해야 하는 곳, 옥타비아. 낭떠러지 위에 걸려 있는 이 공간의 삶이 다른 도시에서의 삶보다 더 확실한 이유는 그물이 오랫동안 견뎌낼 것임을 주민들이 알고 있기 때문.



설정부터 그랬다. 뒤표지의 설명을 참고해 보자. 정원에 나이 든 쿠빌라이 칸과 젊은 마르코 폴로가 앉아 있다니! 퇴락해 가는 제국 타타르의 황제와 베네치아의 여행자. 쿠빌라이 칸의 청에 따라 마르코 폴로는 자신이 여행했던 도시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두 사람이 주고받는 가상의 대화는 마법과 같은 시간의 도시들을 눈앞으로 불러낸다.


황제는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무거운 제국을 바라보며 연처럼 가벼운 도시를 꿈꾸기도 하고 레이스처럼 구멍이 뚫린 도시, 모기장처럼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도시, 나뭇잎의 잎맥 같은 도시, 손금 같은 도시, 불투명하고 허구적인 두께를 통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세공품 같은 도시를 꿈꾸었다. (P94)

지난밤 황제의 이 같은 꿈에 대한 폴로의 대답.


"폐하께서 꿈에서 본 도시는 랄라제입니다. 이 도시의 주민들은 도시의 밤하늘에서 쉬었다 가라고 달을 초대합니다. 그렇게 해서 끝없이 성장하는 이 도시에 달이 모든 걸 선물하게 하려는 겁니다." (p94)



도시의 밤하늘에서 쉬었다 가라고 달을 초대하는 곳. 이런 도시들은 대체 어떤 생각으로 어떤 방식으로 건설된 것일까. 책 속의 답은 이렇다.


"그건 꿈과 같은 도시들입니다. 가능한 모든 것을 꿈꿀 수 있지만 가장 예기치 못한 꿈은 욕망을 숨기고 있는 수수께끼, 혹은 완전히 전도된 욕망, 두려움입니다. 꿈과 마찬가지로 도시들은 욕망과 두려움으로 건설되었습니다.(p58)"     


모든 욕망은 황금빛이다. 지난주 아이와 집으로 돌아오며 마주했던 석양처럼. 우리 집 건물 외벽이 노란색이란 게 그때서야 이해가 되었다. 우연일까, 아니면 정답을 이미 알고 칠한 결과일까. 해가 넘어가는 오거리에서 마지막 빛을 온몸으로 받고 서 있던, 스스로 빛이 되어 버린 공간에 살고 있다는 벅찬 감격.

11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후 4시. 초겨울의 일몰을 삼십 여분 앞둔 시각이었다. 욕망의 마지막 또한 저토록 찬란하겠지. 그러니 멀쩡하던 사람의 눈마저 멀게 하는 거겠지. 캄캄한 끝을 알면서도 그 속으로 한 발 내디딜까 말까 주저하게 만드는 거겠지. 내 발길을 멈추게 하고, 아이의 손을 놓치게 하고, 넋을 잃게 한 십일월의 끝에서 만난 황금빛 도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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