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요가를 마치고 집 부근의 마리아 광장에서 열리는 수요 장터로 갔다. 광장의 절반만 사용하는 소박한 장터였다. 남편이 아침 출근길에 장터 오른편에서 팔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사진을 보내왔다. 가장 작은 트리를 사서 거실 유리 테이블 위에 장식을 하나? 아이를 위해서. 우리의 첫 독일 크리스마스를 위해서. 요즘 남편과 나의 생각 거리다.
장터에는 한창 크리스마스 장식을 팔고 있었다. 12월 첫 주부터 하나씩 켜는 장식초 4개(아드벤츠 크란쯔 Adventskranz:강림절초)도 여기서 파는구나! 아드벤츠 크란츠를 만들기 위한 전나무 리스도. 촛불은 12월 첫 번째 일요일부터 하나씩 켠다. 역시 장터에 와서 보고 배우는 게 많다. 사계절과 절기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곳. 장터야말로 도시인들의 삶이 펄펄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대도시에 살면서 흙냄새 나는 야채와 과일과 빵을 사는 즐거움.
칼비노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시가 아치라면 수많은 장터들이 돌 역할을 하는 걸까. 장터의 돌바닥 위에 색색으로 피어난 초들이 꽃처럼 예뻤다. 당연히 꽃도 샀다. 탐스런 장미가 송이당 2유로, 세 송이에 5유로였다. 집으로 돌아와 세 송이를 핑크 찻주전자에 꽂았더니 환상적이었다. 각박해지지 말라고 매주 집 가까이에서 연주되는 삶의 이중주.
꽃은 헬가 외숙모님께 가져다 드릴까 하다가 참았다. 다음 주에 몇 송이 사다 드려야지. 알리시아의 플랫첸 쿠키를 드리기 위해 들른 게 바로 전날이어서. 나이 드신 분들은 주기성이 중요하다. 너무 자주 들러도 별로고, 너무 소원해도 안 된다. 그날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금방 사 온 듯한 크리스마스 꽃화분을 덥석 안겨주신 것만 봐도. 허리 수술은 아주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며 그 와중에도 서서 다림질을 하고 계셨다.
그날 방과 후에 빵집에도 들렀다. 다음 날 아침에 먹을 빵을 사놓기 위해. 빵집 아주머니가 얼굴에 웃음을 띤 채 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준 플랫첸 정말 맛있더라! 아이가 수줍게 웃었다. 독일에서 이런 건 참 좋다.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동등하게 대해준다. 지나친 칭찬도 하지 않지만, 어리다고 무시하지도 않는다.
그날 장터에서 야채도 많이 사 왔다. 싱싱한 콜라비를 다섯 개나 사 와서 깎아먹었다. 아삭아삭한 맛이 그만이었다. 덩치 큰 오이는 오이 무침으로 해 먹어야지. 남편도 아이도 잘 먹는 우리 집 효자 샐러드. 당근도 많이 사 왔는데 당근 신선하고 맛있었다. 독일 시금치를 살까 말까 망설이다 안 샀는데 다음번에는 꼭 사 와야지. 빵과 치즈와 과일 파는 곳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가장 인기 있는 곳은 규모가 어마어마한 야채 가게였다. 천막을 둘러친 가게 안은 훈훈했다.
칸은 마르코에게 물었다. "내가 상징을 모두 알게 되는 날, 그날엔 마침내 내가 내 제국을 소유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자 베네치아인이 대답했다. "폐하,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는 날에는 폐하 본인이 상징들 속의 상징이 되실 겁니다."
이런 센스와 통찰은 폴로의 것인가, 작가 칼비노의 것인가. 칼비노가 폴로이자 칸이겠지. 폴로가 칸에게 들려준 도시들은 보이지 않는 상상의 도시일까, 꿈에도 그리워하던 고향일까. 글쎄다. 답은 각자 찾아보기로 하고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도시들을 폴로처럼 걸어보는 건 어떨까.
혹시라도 물의 도시 에스메랄다처럼 늘 똑같은 장소로 가면서도 매일 새로운 길을 오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지 아는가. 필리스라는 도시의두 주랑처럼 어느 골목길에서 두 갈래 중 하나가 유난히 마음을 끈다면 그것은 삼십 년 전 수놓은 긴소매 옷을 입은 한 아가씨가 (혹은 멋진 청년이!) 그곳을 지나갔기 때문이라는 책의 내용을 떠올려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