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를 받던 날 아이가 말했다. 율리아나는 점수 엄청 잘 받았대. 전부 1 아니면 2래! 우리로 치면 수와 우 잔치라는 뜻이다. 저런 말을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니. 찔리지도 않나?
"엄마, 율리아나 할머니랑 율리아나 엄마가 내 성적표 물어봤어."
"아, 그랬어?"
"그런데, 내가.."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었어?"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어."
"뭐? 아니, 왜!"
2월 중순에 아이는 학교에서 1학기 성적표를 받았다. 학부모 상담을 한 지 1주일이 지난 후였다. 담임샘과 상담하던 그날 우리 다음이었던 율리아나 엄마는 상담 시간 30분을 넘기고도 무려 10분인가 더 시간을 끌었단다. 나중에 율리아나 할머니께 들은 바에 의하면. 아무리 기다려도 딸이 안 나오더라나. 무슨 얘기가 그렇게 길었는지 아직 물어보진 못했다.
성적표를 받던 날 아이가 말했다. 율리아나는 성적 엄청 잘 받았대. 전부 1 아니면 2래! 우리로 치면 수와 우 잔치라는 뜻이다. 에구, 저런 말을 엄마한테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찔리지도 않나? 아이는 상담 때 보고 들은 그대로 1을 두 개, 3을 두 개, 나머지는 다 2를 받았다. 들은 바에 의하면 성적이 1과 2로 도배를 해야 김나지움 진학에 무리가 없다는데. 그것도 독일어와 수학은 반드시 잘해야 한다고 율리아나 할머니께서 강조하셨다. 한숨. 아이의 문제는 독일어가 3이라는 것이다. 우리말로 미!
그런데 아이도 마음이 편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소위 베스트 프렌드가 그렇게 점수를 잘 받았으니 말이다. 성적표를 받고 율리아나 집에 놀러 갔는데, 알리시아 독일어가 약하다는 소리를 나한테 누누이 들은 적 있던 두 사람이 알리시아 독일어가 살짝 걱정도 되고 궁금도 했겠지. 아니, 그런데 숨길 일이 따로 있지, 그걸 왜 숨기느냐 말이다. 당시 대화를 복기하자면 이 정도 되겠다.
"알리시아, 너 이번에 성적 어땠어?"
"1을 두 개 받고 2를 네 개 받았어요." (총 8개 과목이다. 그럼 두 개는? 나라도 궁금하겠다!)
"그런데 독일어는 뭐 받았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기억이 잘.."
허걱! 기억이 안 나기는 뭐가 안 난단 말인가. 뼈에 새기기라도 할 만한 점수인데.
"왜 그랬어? 그걸 왜 숨겨?"
"그냥. 그러니까 엄마도 말하지 마. 제발!"
흥, 내가 그걸 왜 비밀로 해 주냐. 이렇게 만천하에 공개 중인데. 그것도 브런치에 말이다. 그런데 혼난 건 금방 잊고 애가 수선을 피운다. 율리아나 엄마가 완전 무섭더라는 것이다. 어떻게 무섭냐고 하니까 율리아나 독일어 숙제를 점검하며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무지 혼낸다는 것. 아하! 알았다. 너희 엄마는 너무 착해서, 너무 안 혼내서 그렇구나! 아이가 눈을 흘겼다.
그건 그렇고, 종교 과목에 3을 받은 건 웃음을 선사할 만한 일이지만 (실제로 파파와 고모가 엄청 웃었다. 그게 웃을 일인가!), 독일어는 다르다. 여름에 한국에 갈 때 독일어 연습 책을 사서 매일 풀라니까 엄마는 치사하단다. 이게 치사하고 말고의 일인가. 그래, 치사해도 좋다! 그래서 딜을 했다. 엄마도 사실은 한국 가면 매일 글을 쓸 거야. (정말 쓸 수 있을지 없을지는 가 봐야 안다. 서울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을 거라고 벌써 누가 말했다.) 그러니까 너랑 엄마랑 같이, 어때? 비행기표는 끊었다. 8월 한 달을 통째로 끊었다. 과연 웃고 올 지 울며 올 지는 가 봐야 알겠다.
어제는 갑자기 아이가 이렇게 물었다. 우리 파파는 왜 그렇게 마테(수학)를 잘해? 그야 파파는 이과니까 그렇지. (엄마는 문과란다. 호호.) 그럼 난 당연히 이과겠네! 그건 엄마가 원하던 결과는 아닌데. 그럼 엄마 글은 누가 독일어로 멋지게 번역 해 주나? 믿을 사람이 없다. 독일어 공부에 더욱 매진해야겠다. 지난번 율리아나가 우리 집에 온 날. 율리아나 파파가 벨을 눌러서 내가 인터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내려갈게! Wir kommen unten! 급해서 조사는 뺐다. 현관 바닥에 앉아 신발을 신고 있던 율리아나가 목소리를 착 깔고 말했다. 조사도 같이. Wir kommen 'nach' unten! 아이들은 스승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