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생일은 3.1절이다. 남편 생일이 3.1절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남편이 태어나던 해는 2월이 다른 해보다 하루가 긴 29일이었는데 예정일을 넘긴 아기가 행여 그날 나올까 노심초사하시던 시어머니가 하루만 더 버티라고 뱃속의아기에게 신신당부를 하셨다는 이야기. 생일이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예정일을 며칠이나 넘기고 나온 남편은 무려 4킬로가 넘는 우량아였단다. 그런 우리 시어머니의 생신은? 8.15 광복절이다.
남편의 생일날 아이와 셋이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계획했던 일은 아니었다. 금요일은 학교 급식 없이 1시 반에 마쳐서 아이가 배가 고플 것 같아 남편을 불렀다. 독일에 와서 외식을 많이 하지 않게 된 것도 달라진 점이다. 독일에 와 보면 안다. 중국, 동남아, 한국처럼 외식하기 좋은 곳도 드물다. 독일 슈퍼에서 파는 야채나 식재료가 대체로 저렴하기도 하고 한국처럼 간편하게 먹으러 갈 만한 곳도 많지 않다.
3월이 되자 날씨가 추워졌고, 바람이 부니 체감 온도가 더 떨어졌다. 이럴 땐 뜨거운 음식이 먹고 싶다. 독일에서 가장 대중적인 식당은 이태리와 중국. 그다음이 태국이나 베트남이다. 그날 우리의 선택은 태국이었다. 완탕 수프, 볶음밥, 치킨 덮밥, 바삭하게 튀긴 오리 고기를 주문했다. 빅투알리엔 마켓 옆의 작은 임비스 Imbiss였다. 우리로 치면 백반집이나 분식점처럼 들를 수 있는 작은 식당이다. 가격도 부담 없고, 분위기도 편안하고, 맛도 주인도 괜찮은 곳.
행복은 얼마일까. 행복에는 어느 정도의 돈이 들까. 그날 우리가 먹은 세 가지 기본 메뉴와 작은 완탕 수프와 차와 맥주 그리고 애플주스 한 잔의 가격은 적은 팁까지 포함 35유로였다. 모퉁이를 돌아서 카페 이탈리에서 달콤한 디저트로 입가심한 비용은 5유로. 그날 우리는 총 40유로를 지불했다. 생각보다 큰돈이 들지는 않았다. 따뜻한 음식을 먹자 금방 유대감이 쑥쑥 오른 분위기까지 합한 비용이니까.
만약, 400유로였다면? 그래도 40유로가 더 좋았어요,라고 궁상을 떨지는 않겠다. 다음날은 시어머니께서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점심을 초대하셨다. 작년에 양아버지의구순 파티를 연 이태리 호텔 레스토랑이었다. 두 분이 좋아하시는 생선 오븐 요리를 따라 주문해 봤다. 남편은 스테이크. 웨이터들이 옆 테이블에서 생선살을 발라주었다. 맛은? 늘 먹던 해산물 스파게티가 그리웠다. 대신 이태리산 화이트 와인은 맛이 기가 막혀서 단숨에 한 잔을 비움으로써 간만에 시댁 식구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계산은 어머니가 하시고 양아버지께서 영수증을 훑어보시길래 옆자리에서 어깨너머로 슬쩍 보니 180유로였다. 시누이까지 여섯 명이니 1인당 30유로. 와인과 물. 애피타이저인 수프나 샐러드 몇 개. 디저트로 커피나 아이스크림까지 포함한 가격이었다. 결과는? 그것도 좋았다. 테이블 세팅이 잘 된 레스토랑에서 친절한 웨이터들과 좋은 와인에 풀세트로 즐기는 느긋한 점심 식사란 언제나 기분 좋은 일 아닌가.
내 말은 행복은 비교불가라는 것. 어디에나 있고 어떤 값으로도 즐길 수 있다는 것. 아, 그런데 왜 자꾸 교훈조로 끝나지? 티타임은 시어머니 댁에서 했다. 근사한 어머니의 애플 케이크와 함께. 아이와 함께 어머니 차를 타고 가다가 남편의 전화를 받고 슈탄베르크 호수 역 근처에 급히 내리자 어머니가 궁금해하셨다. 아이가 말했다. "할머니, 그건 비밀이에요!" 엄마와 고모의 의견은 묵살하고 꽃은 아이가 직접 골랐다. 할머니 당연히 기뻐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