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를 이해하는 나이, 열 살

아이와 읽는 <어린 왕자>

by 뮌헨의 마리


우리 아이는 한국 나이로 올해 열 살. 내게 한국 나이 열 살은 <어린 왕자>를 이해하는 나이로 기억될 것이다.


<어린 왕자>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미니북 003)


요즘은 저녁마다 아이와 <어린 왕자>를 읽고 있다. 예전에 한국에 살 때도 한번 시도한 적이 있는데 아이의 반응이 무척 시큰둥해서 그때 이후로 <어린 왕자>를 다시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읽어주는 책은 아주 작고 귀여운 미니북. 아이가 한국에서 특별히 골라서 사 온 책이다. 제목이 친숙하고, 그림도 예쁘고, 표지가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란색으로 도배된 덕분이 아닐까 싶다.


우리 아이는 한국 나이로 올해 열 살. 지난 주에는 자기 전에 엄마가 읽어줬으면 하는 책을 직접 골라 오라고 했더니 <어린 왕자>를 들고 왔다. 전에는 왜 <어린 왕자>를 재미없어했냐고 물으니 그때는 무슨 얘긴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되더라나. 생각해보니 오래 전 일이다. 어쨌거나 이제부터 한국 나이 열 살은 내게 <어린 왕자>를 이해하는 나이로 기억될 것이다. 매일 저녁 아이는 초집중해서 듣는다. 모르는 어휘도 재빨리 물어 보고. 문제는 잠도 안 자고 계속 읽어달라고 조른다는 것.


요즘 아이는 뜬금 없이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중이다. 피아노도 아니고 바이올린도 아니고 기타라니. 악기는 한국에 있을 때 아이가 원해서 하프를 6개월간 배운 적이 있다. 아이의 바람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나도 모른다. 리액션 없이 조금 더 기다려 볼 참이다. 지난주에 아이는 바바라 고모집에서 고모가 쓰던 기타를 얻어 왔고, 고모와 기타 가게에도 들렀다. 나는 계속 모른 척하기로 한다. 억지로 시켜서 되는 일은 없다. 아이를 키우며 지금까지 배운 교훈이다. 기타 강습을 시킬지 말 지는 아이의 열정에 달렸다. 책 읽기 역시 그런 것 같다.


독일어판 <어린 왕자>. 2000.10.13일에 구입했다. 유로화를 쓰기 전 독일 화폐인 9.80DM(데 마르크). 대략 유로화의 절반 가격이다.


지금까지 한 주 동안 매일 저녁 아이와 나는 어린 왕자와 함께 했다. 어린 왕자는 자기가 살던 별을 떠났고, 여섯 개의 별을 여행한 뒤 마침내 어제 지구별에 도착했다. 지구의 사막에서는 뱀을 만났고, 세 장의 꽃잎을 가진 소박한 꽃도 만났고, 뾰족하게 솟은 산봉우리에서 대답 없는 메아리도 들었다. '안녕!' '당신은 누구세요?' '우리 친구 해요. 외로워요.' 우리 자신과 타인 사이에 메아리처럼 울리던 그런 말들 말이다.


어젯밤 나는 어린 왕자가 마침내 발견한 길 앞에서 읽기를 중단했다. 다음에 올 문장은 이러했다. '모든 길은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 길 위에서 어린 왕자는 오천 송이 장미들을 만나고, 자신의 별에서 매일 아침 물을 주던 장미가 평범한 장미 한 송이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절망해서 풀숲에 엎드려 소리 내어 울겠지. 때마침 그때 나타난 여우와의 대화를 통해 '길들인다'라는 말의 의미와 그것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라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은 사실일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그 말. 그리하여 너한테 나라는 존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될 거라는 그 말 말이다. 사실 내가 방점을 찍고 싶은 건 그 다음 대목의 한 단어다. 만일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그 대상을 길들여야 하고, 그 일에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 세상 모든 일에는 그것이 필요했다. 언젠가 아이가 그 말을 이해할 날이 올까. 오늘 밤 이 대목을 음미할 때 나는 이런 느낌일 것이다. 좋은 것을 나만 아는 어딘가에 꼭꼭 숨겨 둘 때의 두근거림. 딱 맞는 타이밍에 꺼내서 아껴가며 먹을 때의 충만함. 다람쥐처럼 도토리를 숨긴 장소를 잊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작년에 바바라가 내게 선물한 <어린 왕자> 독일어 오디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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