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주말 내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곧 학교 간다고! 9년 동안 애를 키웠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독일 초등 3년 수학 시험(위) 초등3학년 독일어 시험(아래) 틀린 독일어 문제를 카드 색인에 기록하며 열공하시는 우리 집 어린이.
월요일 아침 카페 이탈리에 갔다. 나도 아침 일찍 아이와 함께 등교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주말 내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곧 학교 간다고! 9년 동안 애를 키웠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작년 여름 방학 때는 엄마랑 집에만 있는 게 너무너무 지루해서 차라리 학교라도 가는 게 낫겠다 뭐 이런 버릇없는 멘트는 몇 번 했다. 그때는 당연히 이해가 되었다.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학교에 가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눈치였다.
어젯밤 아이는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늦게 귀가한 파파가 아이에게 환심을 사려고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파파와 아이의 책 읽기가 9시 반을 넘기는 순간 내 도끼눈이 효력을 발휘했는지 10시 전에 침대 옆의 독서등을 끌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계속 뒤척이는 바람에 옆에 누워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리던 내가 지쳐서 물었다.
-알리시아, 잠이 안 오니?
-드디어! 학교 간다! 신난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이불을 걷어차고 양쪽 팔다리를 허공을 향해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람? 대체 개학 후 학교에 무슨 일이 있다고? 교실을 바꾼다는 건 안다. 레노베이션이 끝난 복도 반대편의 큰 교실로 간다고 부활절 방학 전에 교실에 두었던 물건을 죄다 집으로 날랐으니까. 그래서 어제 아침엔 나도 아이의 짐을 나눠 들고 오랜만에 학교에 간 거고.
레스토랑/카페/슈퍼/책방/와인 창고가 있는 토탈숍 이탈리 Eataly. 왼쪽은 빅투알리엔 시장, 오른쪽의 붉은 지붕/노란 건물이 아이 학교다.
이유는 방학 전에 친 수학과 독일어 시험 답안지를 받는다는 거였다. 아이는 수학을 좋아하고 독일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히 수학 점수는 좋고 독일어는 별로다. 그런데 방학 전에 예고도 없이 친 독일어 시험에서 답을 다 썼단다. 다 썼다고 다 맞다는 보장은 어디 있나? 아이의 고민이 바로 그거였다. (물론 엄마와는 정반대로 행복한 고민이었다!) 아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 다 맞으면 어쩌지? 다 맞는 거 아니야??그러다 독일어 1(최고 점수) 받는 거 아닐까???
결론은? 걱정도 팔자였다. 아이는 독일어 시험에서 2를 받아왔다. 수학은 당연히 1. 엄마는 잘했다고 반색을 했지만 아이는 시무룩했다. 아니 왜? 엄마가 봤을 땐 최고의 점수인데! 아이 왈, 자기는 다 맞을 줄 알았지 그렇게 많이 틀릴 줄 몰랐다나.저 놀라운 자긍심은 어디서 왔을까? 아이와 비교하니 엄마나 이모는 저 나이 때 겸양의 미덕만 주야장천 쌓았구나.
알바를 마치고 다시 카페 이탈리로 갔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며 다음 날 브런치 글 초고라도 써야지. 계산대 옆에서 중년의 바리스타가 미니 디저트를 진열장에 넣고 있었다. 지난 1년간 아침마다 내게 커피를 내려준 사람.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데 그가 디저트 하나를 접시에 담아 슬쩍 건넸다. 개구쟁이 소년처럼 한쪽 눈을 찡긋하며. 반대쪽 옆 라인의 커피 머신 앞에는 오후를 주름잡는 호랑이 바리스타 할아버지. 이런 건 고맙게 받는 것. 달콤한 저 디저트의 이름은 다음에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