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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15. 2019

사람은 변한다

시누이 바바라


어제 바바라가 부헨벡의 시어머니 댁부터 들르자고 했을 때는 솔직히 놀랐다. 원래는 저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주말에 시어머니와 재활 클리닉에서 점심을 먹을 때였다.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룸의 발코니에서도 레스토랑에서도 카페에서도 티어제의 비현실적으로 빼어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5월 마지막 주에 다 같이 와서 티어제에서 하룻밤을 묵고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고 하자 어머니 말씀하셨다. 우리가 오겠다는 그 주말이 돌아가신 남편의 어버지, 나의 친시아버지 하네스와의 결혼 60주년 기념일이라고.


시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두 분은 1959년 5월 26일에 결혼하셨다. 그리고 20년을 다 헤어지셨다. 하네스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3년 전이다. '날을 내가 어떻게 잊겠니..' 그리고 이어진 하네스 아버지와의 일화들. 내용만 들으면 분명 하네스 아버지의 굴욕이었다. 그럼에도 말씀하시는 시어머니도 듣는 우리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스물한 살 카타리나 아가씨를 부모님께 소개하러 가자 시어머니 되실 분이 '우리 하네스가 아가씨를 데려온 건 니가 처음이란다!' 하셨다나.


하네스 아버지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애라든가 이런 방면에는 숙맥이셨던 모양이다. 네스 아버지는 부 고위 세무사셨다. 시어머니의 말씀으로는 스키 실력 별로 셨다고. 남편은 만 두  시어머니의 다리 사이에서 스키에 입문했는데. 시어머니는 평생 테니스와 스키와 등산과 수영을 즐기신 분이다. 그러니 만 80에 고관절 수술을 받으시고 당일 발가락 운동부터 다음날은 걸어서 화장실을 다니셔서 의사를 깜짝 놀라게 신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날 60년 전의 일을 소환하며 가장 즐거워한 사람도 어머니였다.



오른쪽 위 보랏빛 꽃들이 남의 정원에서 꺽은 라일락


어제저녁 바바라도 그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를 방문하고 8시 반이 넘어 저녁을 먹을 때였다. 카타리나가 하네스 아버지 얘기를 하는 게 듣기 좋았다고. 자기 엄마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억하는 것이 자식들에게 위로가 되는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안타까워하신 건 하네스 아버지의 마지막이 알츠하이머로 끝난 것이었다. 두 분은 헤어진 후 공식적으로 두 번 만났다. 남편 형의 결혼식과 우리 결혼식. 새어머니의 반대로 네스 아버지의 병문안과 장례식에는 못 오셨다.


어제 바바라가 부헨벡의 어머니 댁부터 들르자고 했을 때는 솔직히 놀랐다. 래는 저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을 위한 려심이 말이다. 시아버지를 위해 정원의 꽃도 잘라가고, 침실 머리맡의 인형과 1880년 번역 안데르센 동화집, 그리고 어머니의 사진도 챙겨 가자고. 사람이 이렇게도 변하나. 알고 보니 어머니가 살짝 팁을 주신 모양이었다. 바바라의 가방 안에는 녹슨 전지가위와 꽃병이 들어있었다. 바바라가 이웃집 정원에서 보랏빛 라일락 줄기를 싹둑  땐 아이와 나는 의리도 팽개치고 내뺐다. 주인에게 들킬까봐.


아버지는 반나절 만에 중환자처럼 보였다. 바바라도 나도 아이도 충격을 받았다. 아이는 할머니 부엌에서 찾은 목캔디를 들고 가서 할아버지께 다. 시아버지가 평소 눈에 띄게 편애하시던 남편의 형이 보낸 엽서도 읽어드렸다. 꽃과 어머니의 사진을 오래 바라보시며 '너희들이 와 줘서 참 좋구나!' 몇 번이나 되풀이하셨다. 바바라가 읽어주는 안데르센을 들으며 잠이 드시는 걸 보고 나왔는데 오늘 아침에는 훨씬 나아 보이셨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어제는 바바라가 인사로 볼에 키스를 해주어서 기뻤다고. 평소에는 그냥 손만 내밀었다고.



시아버지 서재에 있는 인형과 큰딸네 친손녀와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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