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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17. 2019

아프면 누가 진짜 친구인지 알게 돼!

아이가 말했다


할아버지가 니가 와서 많이 기쁘셨나 봐, 했더니 아이가 말했다. 아프면 누가 진짜 친구인지, 누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게 돼.


5.14(화) 슈탄베르크 병원 앞 저녁 풍경


월요일부터 뮌헨의 날씨는 흐리고 낮 최고 기온이 10도를 넘어서지 못했다. 날씨 때문에 머리가 아픈 적은 드문데 감기 기운이 겹쳐서인지 나흘 동안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틀은 한기 때문에 패딩을 다시 꺼내 입었 집에 오자마자 전기매트누웠다. 그랬더니 어제는 아이가 이불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너는 왜? 아픈 건 엄만데! 아이가 말하길 자기도 온몸이 쑤신다나. 초등 3년이 왜? 독일 초등은 학교에서 뭘 하길래? 매일 행군하는 군인도 아니면서. 그러자 아이가 이렇게 랩으로 답했다.


숙제를 해서 머리가 쑤셔

학교 가방을 들어서 어깨가 쑤셔

도시락이 너무 적어서 배가 쑤셔

학교까지 걸어야 하니까 발이 쑤셔

매일 학교에서 앉아야 하니까

엉덩이가 쑤셔, 쑤시다 쑤셔!!!


아픈 것도 잊고 바탕 웃고 말았다. 덥다고 이불을 걷어차면서도 옆에 누워 책을 읽더니 갑자기  배가 고프시다고. 우리 집 앞에는 이태리 식당뿐 아니라  골목에는 베트남 식당도 있다. 아이는 한번 먹은 그 집 오리고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팁 1유로를 포함 10유로 50센트를 들려서 보냈더니 주인이 아이 얼굴과 아이가 먹은 메뉴도 기억하고 있더란다. 애가 다음에는 50센트를 더 얹어서 11유로를 주자고 했다. 밥도 많이 주고, 엄마가 좋아하는 디저트도 서비스로 주었다.


아이가 베트남 식당에서 테이크 아웃해 온 오리고기 덮밥(9.50유로)


오늘 아침 아버지는 다시 의자에 앉아 아침 식사를 다. 이번 주 내내 침대에서 아침을 드셔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놀랍게도 요구르트도 혼자 드셨다. 빵을 드시고 침대에 누우시자 아직 가지도 않은 나에게 언제 또 오냐, 물으셨다. 오늘 저녁에 바바라랑 아이랑 오든지 아니면 내일 아침에 올게요, 하니 기뻐하셨다. 나중에 아이에게 니가 같이 할아버지가 많이 좋으셨나 봐, 했더니 이런다.


"아프면 누가 진짜 친구인지, 누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게 돼. 요 제목은 알리시아가 한 말이라고 꼭 써야 돼!!!"



매일 아침 아버지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으셨다. 어머니가 '내가 재활 프로그램이 끝나는 대로 당신에게 가겠다.'라고 하자 아버지가 아리아로 답하셨다. '그대는 어서 게로 오라.' 옆에서 책을 읽다가 혼자 웃었다. 들리는 걸 어쩌나. 아버지는 매번 어머니께 내가 와 있다는 알리셨다. '우리의 가장 착한 딸이 와 있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 여기 와 있다.' 표현에도 진화라는 게 있다면 이럴 것이다. 시어머니가 나를 위로하시며 하신 말씀. 월요일부터 숨 좀 쉬고 자유를 누리거라!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왜 아니겠는가. 재활 클리닉을 통틀어 최고로 성실환자는 우리 어머니 것이다. 재활원에 의지로 가득 찬 사람이 승자 아닌가. 저녁아버지께 가려던 계획은 다음날로 미뤘다. 아무래도 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너, 고모랑 둘이서 할아버지 병문안 다녀오면 안 되겠니? 아이가 안 된다고 했다. 엄마가 꼭 같이 가야 한단다. 왜? 엄마는 '생명의 군인'이니까! 뭐? 생명의 뭐라고? '군인!!!' 이런, 군인씩이나. 그런데 저런 앞뒤가 안 맞는 표현은 대체 어디서 들었을까.


2019.5.16(목) 뮌헨의 아침 6시 30분. 낮 최고 11도/최저 -1도. 기상 예보에 따르면 금요일부터 20도로 오른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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