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가 병원을 떠나시던 월요일엔 비가 내렸다

재활 클리닉에는 따라가지 못했다

by 뮌헨의 마리


시아버지는 재활 클리닉까지 따라와 주길 바라셨다. 왜 안 그러시겠나. 혼자서 낯선 곳에 간다는 게 쉬운 일인가.



어젯밤 11시였다. 시아버지 친딸이 왓쯔앱 단톡 방을 만들어 글을 올렸다. 오늘 오전 시아버지는 2주 넘게 입원해 계시던 슈탄베르크 병원을 떠나 재활 클리닉으로 가셨다. 그 문제에 관해서였다. 토요일 아침 시아버지 병문안을 다녀오며 마음이 안 좋았다. 시아버지와 같은 병실을 쓰던 룸메 분도 그날 퇴원이었다. 말씀하기 좋아하시는 분이 하루 종일 혼자 계셔야 했다. 왜 친딸인 미하엘라는 일요일만 올까. 토요일도 오고 일요일도 오면 자기 아버지가 좋아하실 텐데.


단톡 방의 요건은 두 가지였다. 욕실 용품을 챙겨줄 것. 잃어버린 한쪽 보청기를 원무실에 물어볼 것. 거기다 내가 기억하는 다른 용무는 시어머니의 당부였다. 구급차 기사에게 팁을 줄 것. 시아버지가 쓰시던 전화 카드의 잔액도 정리해야 했다. 나는 평소대로 월요일 오전 10시까지만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미하엘라 왈, 구급차는 오전 10시가 넘어 올 지도 모른다고. 웁스! 그녀는 내가 알바를 하는 줄 꿈에도 몰랐다.


알바하는 가게 주인에게 톡을 했다. 어쩌나. 이 늦은 시각에. 양해를 구했더니 다행히도 받아주었다. 궁하면 통한다! 시아버지의 짐은 총 8개. 여행 가방 3개, 손가방 4개, 그리고 접이용 보조기. 이 정도면 까무러칠 만하지 않나. 짐만 보면 장거리 휴가를 떠나시는 분 같다. 아침 8시 30분.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원무과부터 들렀더니 보청기 건은 담당 간호사에게 말하란다. 다시 병실에서 미하엘라의 전화를 받았다. 서식 필요 없이 종이 한 장에 내용을 적고 시아버지의 사인을 받아 제출하란다. 아뿔싸, 오늘따라 모를 할 노트 가방에 네.



미하엘라와 통화하는 사이 늦게 오리라 예상했던 구급차 대원과 간호사가 들이닥쳤다. 종이를 구하러 나갈 새도 없었다. 가방에 든 종이라고는 줄리언 반스의 책 <플로베르의 앵무새> 단 한 권. 플로베르여, 앵무새여, 종이 한 장만 다오. 구급차 대원에게 짐을 모두 내리도록 부탁하고 팁 20유로를 챙겨주었다. 구급차 대원이 시아버지 본인을 확인하고 서류에 서명을 받는 사이 간호사에게 10분만 양해를 구했다. 앞뒤 속지를 살피자 흰 종이가 딱 한 장 나왔다! 시아버지께서 불러주시는 대로 받아쓰기 시작..


내 이름은 독터 Dr. 오토 라인하트. (독일에서 Dr. 는 박사 학위 소지자를 뜻한다. 집 문패를 비롯 공식이든 비공식 서류든 이름 앞에 Dr. 를 명기할 수 있다.) 나는 사흘 전에 슈탄베르크 병원의 병실에서 2천 유로에 상응하는 보청기 한쪽(Kind사 제조)을 잃어버렸음.


'2천 유로 상응' 부분에서 내가 멈칫하자 그대로 써주기를 원하셨다. 본인이 원하신다는데야 할 수 없지. 날짜와 이름을 적고 서명을 받아 담당 간호사에게 제출했다. 때마침 들어온 청소부에게도 팁 조금. 이 세대에게 팁을 챙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배운 시간이었다. 지난번 부활절 때 슈탄베르크 호숫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팁은 10유로였다. 마지막으로 잊은 물건이 없는지 병실과 화장실, 욕실과 옷장을 체크한 후 전화 카드 정산까지 마쳤다.



시아버지는 재활 클리닉까지 따라와 주길 바라셨다. 왜 안 그러시겠나. 혼자서 낯선 곳에 간다는 게 쉬운 일인가. 마침 휴무까지 받았으니 안 될 것도 없었다. 같이 가서 물건도 쓰시기 좋게 챙겨드리고 오면 좋을 텐데. 아침에 기차 안에서 돌아오는 차편을 검색했다. 재활 클리닉에서 2시와 3시에 뮌헨으로 오는 두 가지 옵션이 있었다. 두세 번 기차를 갈아타고 4시간 소요. 뮌헨 도착 시간이 저녁 6시와 7시였다. 나쁘지 않았다. 아이는 율리아나 할머니께 부탁드리고 저녁에 데리러 가면 될 테니까.


미하엘라는 따라갈 필요가 없다고 아침에 전화로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의견이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가 원하시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아버지께는 병원 측에서 허락만 하면 동행하겠다고 안심시켜 드렸다. 문제는 간호사와 구급차 대원. 장거리 운전에 나는 동행할 수 없단다.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라고. 이때 만일이란 사고를 뜻한다. 그 차는 구급 대원과 환자 두 사람만 사고 시 보험이 적용된다고. 복잡하다. 그러나 이해했다. 게 독일이고 내가 염려한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다행히 시아버지도 이해하셨다. 독일에서는 떼가 통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배우고 체득한 정서라서 그런 게 아닐까. 그래서인지 억지 부리고 소리 지르는 진상을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예민하고 까다롭게 구는 이웃은 종종 있지만. 아버지를 배웅하러 밖으로 나가니 비가 내렸다. 예상보다 일찍 뮌헨행 기차에 올랐다. 슈탄베르크 호수가 비에 차분히 젖고 있었다. 시아버지께서 내게 선물하신 하루 휴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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