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에서 오후의 산책

시아버지 재활 클리닉 방문기 1

by 뮌헨의 마리


시아버지가 타신 휠체어를 밀며 산책을 갔다. 늦은 오월의 햇살이 따가웠지만 오솔길의 벤치에 앉아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금요일엔 재활 클리닉에 계신 아버지를 방문했다. 뮌헨에서 북서쪽으로 150km. 차로는 2시간, 기차로는 4시간 걸리는 거리였다. 내가 알바하는 가게에서 오후 2시까지 모이기로 했다. 조카가 아이를 픽업해서 가게로 데려다주었고, 약속 시간에 맞춰서 바바라가 차를 가지고 도착했다. 남편은 조금 늦게 합류했다. 나와 아이는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바바라와 남편을 위해 그날의 메뉴인 볶음 우동을 두 개나 얻어서 출발했다. 날씨가 좋아서 소풍이라도 가는 기분이었다.


재활 클리닉이 있는 바드 그리스바흐 Bad Griesbach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경이었다. 바바라가 광장 카페에서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쉬었다가 시아버지한테 가자고 제안했다. 광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어른 셋은 아포가토를 주문하고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이스크림과 에스프레소의 조합이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나 혼자라면 어림도 없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바라의 말대로 했더니 그것도 괜찮았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번 바바라와 아이와 마지막으로 시아버지 병원을 방문할 때였다. 그날 나는 몹시도 피곤했다. 오전에 시아버지를 방문했고, 알바 일은 바빴다. 나흘째 계속된 두통으로 정신은 혼미했다. 그래도 바바라가 일을 마치고 같이 가자는데 어떻게 마다할 수 있나. 이럴 때 아프다고 안 가는 건 우리 정서가 아니다. 그날따라 남편이 차를 가지고 당일 출장을 가는 바람에 차도 없었다. 우리는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쓰시던 차를 같이 쓰고 있었다. S반을 타고 가며 바바라에게 몸살기와 두통 때문에 피곤하고 힘들었다고 하자 바바라가 말했다.


"우리 슈탄베르크 역 호숫가 카페에서 쉬었다 가자! 너한테도 도움이 될 거야."




정말 그랬다. 잠시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호수를 바라보고, 선선한 바람을 마시고, 조금 걸었을 뿐인데 컨디션이 단번에 좋아졌다. 무척 놀랐다.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갈 줄만 알았지 멈춘다거나 쉰다는 건 내 머리와 몸 어디에도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날 이후로 바바라의 생각을 경청할 줄 알게 되었다. 우리 고모가 '가끔씩' 진짜 좋은 생각을 하지 않니? 아이에게 눈을 찡긋하며 대놓고 칭찬을 하면 '뭐! 가끔씩이라고?' 화난 척 양손을 허리에 얹으면서도 단박에 밝아지는 바바라의 얼굴을 보는 것도 좋았다.


시아버지의 딸 미하엘라가 왓쯔앱을 자꾸 보내서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잘 도착했는지, 자기 아버지는 만났는지, 날이 좋으니 꼭 클리닉 밖으로 모시고 산책을 시켜드릴 것도 부탁했다. 알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산책을 나가는 중에 왓츠앱으로 비디오 콜까지 했다. 그렇게 걱정이 되면서 어떻게 주말에 자기 아버지를 방문을 안 하지?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궁금하지만 참고 내 임무에만 충실하기로 한다. 독일에서는 그렇게 해도 욕을 먹지 않는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


할아버지가 타신 휠체어는 아이가 밀었다.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아서 클리닉을 나와 들판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걸었다. 오솔길의 내리막 경사길에서는 파파가 아이를 도왔다. 하얀 마가렛 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이름을 모르는 큰 보랏빛 꽃들도 보였다. 늦은 오월의 햇살이 따가웠지만 오솔길의 벤치에 앉아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 들판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세상은 고요했고, 간간히 봄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갔다. 시아버지가 혼잣말을 하시자 아이가 냉큼 답했다.


'멘쉬(맙소사)! 언제 너희들과 또 이렇게 산책을 나와 보겠냐!'


'할아버지! 다음 주 목요일에 할머니 모시고 또 오니까 1주일만 기다리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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