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량이 드문 독일의 국도. 자정이 가까운 시간. 캄캄한 밤하늘에는 시어머니 오실 날만 기다리시는 시아버지의 아리아 몇 곡이 별처럼 따라왔다.
시아버지의 병실 문을 들어서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휠체어에서 벽을 바라보며 앉아있던 시아버지. 굽은 상체를 펴지도 않고 고개만 돌려 출입문을 바라보던 시아버지. 처음엔 우리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우리가 들어서자 깜짝 놀라시던 시아버지. 그날은 금요일의 늦은 오후. 월요일 아침에 병원을 출발하셨으니 만 나흘 동안을 세끼 식사 외에는 저러고 계셨던 건 아닐까. 병원의2인실에서는룸메와 말씀이라도 나눌 수 있었건만.
호텔식 재활 클리닉 트윈룸에는 언젠가 올 시어머니를 위해 빈 침대가 하나 더 있을 뿐이었다. 침대 맞은편 벽면에는 작은 티브이가 하나. 침대 옆에는 전화기가 하나. 넓은 발코니는 턱이 있어 불편했다. 재활 클리닉이라 병원보다 활기차고 시아버지께도 적당한 프로그램이 있겠거니 기대가 컸는데 현실은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병원보다 고립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1층 로비의 레스토랑과 카페 바는 안락하고 고급스러웠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옆에 있어주는 것이다. 상냥하고 친절한사람이면 바랄 게 없겠다. 인내심이 많아서 느린 행동을 말없이 기다려주는사람이라면 금상첨화겠지. 한 마디라도 말을 더 걸어주고, 필요한 게 없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불안하진 않는지, 피로하진 않은지, 안색과 기색을 수시로 살펴주는 사람. 입맛이 없더라도 한 술이라도 뜨도록 돕는 사람. 입이 마르지 않게 자주 물을 마시도록 권하고 같은 이야기를 지루해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 그것 말고 노인에게 더 필요한 게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아이는 할아버지를 위해 카드를 준비했다. 카드에는 이렇게 썼다.
'할아버지, 어떻게 지내세요? 저는 잘 지내요. 제가 금방 다시 올게요. 몸조리 잘하세요! 알리시아 올림.'
그날 늦은 오후의 오솔길 산책을 마치고 룸으로 돌아온 건 저녁 7시. 시아버지의 윗옷을 챙겨서 광장 야외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시아버지는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 저녁을 드셨다. 우리는 와인 한 잔씩을 마셨고, 시아버지는 와인 반 물 반인 와인 숄레를 주문하셨다. 온화한 저녁이었다. 춥지도 않았다. 해가 늦게까지 광장 지붕에 머물러 주었다. 기분이 좋아지신 시아버지가 자신의 와인 숄레 잔에 바바라와 나의 화이트 와인을 슬쩍 부으시는 것도 눈감아 드렸다. 아리아도 몇 곡 흘러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밤 9시 반에 우리는 병실을 떠나 뮌헨으로 돌아왔다.
라디오라도 들고 갈 걸 그랬다. 좋아하시는 클래식이라도 들으시게. 초콜릿이라도 사 갈 걸 그랬다. 단 걸 좋아하시는분인데. 우리에게 근처에 숙소를 구해 하루 자고 가면 안 되냐고 물으실 때는 마음이 얼마나 안 좋던지! 남편은 일 때문에, 바바라는 일요일 어머니 방문까지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하기 무리라며 밤늦게 돌아오는 편을 택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량이 드문 독일의 국도. 자정이 가까운 시간. 캄캄한 밤하늘에는 시어머니 오실 날만 기다리시는 시아버지의 아리아 몇 곡이 별처럼 따라왔다.
나에게는 그대가
그대에겐 내가
여자들에겐 달콤한 비밀이
하나씩은 있다네
시아버지는 치과 의사로서 본업 말고도 사랑한 게 많았다. 문학을 사랑했고 음악을 사랑했고 여인들을 사랑했다. 귀티 나는 브랜드 옷과 가죽 신발을 사랑했고 수동 앤티크 시계들을 사랑했다. 샹들리에와 포츨란 앤티크 피구어 도자기들을 사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한 건 시어머니 카타리나였다. 오늘 아침 시어머니의 톡처럼 이제 이틀 남았다. 다시 비 오는 봄날의 아침. 하루가 24시간이어서 다행이다. 시아버지도 48시간을 잘 견뎌내실 것이다. 그러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