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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23. 2019

두어 권의 책, 커피 그리고 햇빛

식탁 모서리가 주는 안락함


오늘 아침 부엌의 창을 통해 햇살이 들어왔다. 햇볕 하나로 행복했다. 카페로 출근하지 않아도 좋았다.



오늘 아침에는 오랜만에 해가 나왔다. 지난 일요일 이후로 처음이다. 그 새 뮌헨에는 비가 많이 와서 이자르강이 넘치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강가의 둑 아래 넓은 산책길은 물에 잠긴 지 오래. 누런 황토물이 멀리서도 우르릉 쾅쾅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렇다고 비가 나흘 내내 쏟아진  아니었다. 월요일 오후 집중 호우로 그 정도라니. 작년 오월은 말 그대로 눈부신 봄날이었는데. 그래서 간만에 나온 해가 반갑기 그지없었다.


어제와 오늘은 집안일로 바빴다. 오전에는 밀린 빨래를 돌리고 오후에는 장을 보고 바게트를 사 와서 아이가 좋아하는 브루스케타도 해줬다. 바게트와 토마토와 올리브 오일만 있으면 되니까 이보다 간단한 간식도 없겠다. 한국에서는 바질을 넣는 사람도 많은 모양인데, 나는 이태리 이모부에게 배운 대로 오레가노를 넣는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바게트에 늘을 거칠게 몇 번 문질러 마늘향을 내고 오븐이나 팬에 살짝 굽는다. 그래야 먹을 때 바삭하다. 그 위에 잘게 썬 토마토+올리브 오일+소금+잘게 썬 바질이나 오레가노 가루를 섞는다. 이때 토마토는 방울토마토가 더 맛있다. 이것도 이모부에게 배운 레시피다. 카페 이탈리 매장에서 말린 오레가노 줄기를 팔던데. 한 단 사 와야겠다.



독일에 와서 줄리언 반스 책을 계속 읽다 보니 같은 영국 작가인 이언 매큐언의 작품에도 관심이 간다. 아침에 찾아보니 내가 독일로 챙겨 온 책은 <넛셸> 뿐이다. 가장 위대한 비극 <햄릿>의 가장 파격적인 재해석이라니! 셰익스피어를 문학의 대선배로 둔 나라의 작가들은 어떤 기분일까. <속죄> 등 매큐언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소개는 로쟈의 서평 블로그를 참고하고 있다. 올여름 한국 방문 시 필독서로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오늘 아침 부엌의 창을 통해 햇살이 들어왔다. 햇볕 하나로 행복했다. 카페로는 출근하지 않아도 았다. 커피를 내리고, 어제 아이가 도시락에 남겨온 빵 반 조각을 오븐에 데웠다. 책 두어 권과 식탁 소파 모서리에 쿠션을 몇 개 놓았더니 그보다 편안할 수가 없었다. 햇살을 따라다니며 자꾸만 셔트를 눌렀다. 오늘따라 베란다 밖의 노란 건물벽이 햇살을 받아 예쁘게 반짝거렸다. 아이도 나도 남편도 온 가족이 좋아하는 색. 우리는 노란 집에 살고 있다.


알바 가게의 화요일 메뉴는 치킨마요였다. 의외로 독일 고객들에게 인기 있는 메뉴였다. 가끔 주변 김나지움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테이크 아웃을 해가기도 한다. 주로 남자 청소년들일 경우가 많다. 내가 주걱을 들고 밥을  있는데 아이들 둘이 소리쳤다. '고기 좀 많이 넣어 주세요! 제발요!' 나는 웃음을 참으며 표나게 조금 더 넣어준다.(가게 주인에겐 비밀이다. 아님 벌써 눈치챘을 지도!) 아이들도 잘 안다. 자기 도시락을 열심히 지켜보고 있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 기쁘다. 알바가 일상이 된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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