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넘치는 햇빛, 염소도 행복했던 날

시어머니 재활 클리닉 방문기

by 뮌헨의 마리


시부모님 덕분에 견문이 넓어지는 즐거움.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작은 호수 티어제 Thiersee를 어떻게 알았겠는가.


시어머니 재활 클리닉을 방문한 것은 지난 주말이었다. 다음날 아침 시어머니는 왓쯔앱 단톡 방에 이렇게 쓰셨다. '하늘도 푸르고, 햇빛도 넘치고, 땅 위의 사람도 동물도 모두가 행복했던 날'. 우리 시어머니가 이렇게 풍부한 표현의 소유자인 줄 몰랐다. 매일 쓰시는 일기와, 밝은 성격과, 남의 평판에 신경 쓰지 않는 멘털과 건강한 신체의 결과겠다. 왓츠앱 단톡 방을 열고 나서 알게 된 사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쓰신다! 시어머니의 분방하고 다채로운 글쓰기 스타일에 감탄하는 한국 며느리.


재활원에 계셨던 3주 동안 아침 8시부터 점심때까지 시어머니가 소화하신 재활 프로그램은 무려 다섯 가지였다. 어머니를 슈퍼 우먼으로 존경하는 이유다. 변명과 핑계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평범을 가장한 비범이란 바로 이런 것. 독일로 오지 않았다면 끝까지 모를 뻔했던 어머니의 진면목이다. 실은 이런 게 어렵지 않나. 이런 시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남편과 바바라는 나 안 들리게 수시로 저희끼리 수군거리기도 하지만. 말씀이 많다면서. 애고 어른이고 말이 너무 없어도 어렵다는 걸 모르나.


물론 우리 시어머니께도 단점은 있다. 엄격하시다. 시어머니의 차 안에서는 물 이외의 어떠한 음료나 음식도 먹거나 마실 수 없다. 절대 금기사항. 우유나 커피? 어림도 없다. 과일도 안 된다. 손녀들도 예외는 없다. 안을 더럽히면 안 되니까. 그런데 남편이 시어머니 차를 운전할 때면 가볍게 금기가 깨진다. 지난주도 어제도 우리는 시어머니의 차 안에서 커피를 마셨고, 빵조각을 흘렸고, 심지어 감자칩까지 먹었다! 뒷감당은? 남편의 몫으로 남겨놓는다. 시어머니 귀가하시기 전에 진공청소기로 차 내부 청소 반드시 해 놔야 해!!!



지난주에는 시어머니가 우리 셋에게 용돈도 챙겨주셨다. 남편 200유로, 나 150유로, 바바라는 모른다.(본인이 안 밝혀서. 남편은 자기 용돈을 즉석에서 나에게 넘겨주었다. 이런 건 시키지도 않았건만 참 잘 한다.) 난 시아버지 병문안 다녔다고 주시는 것 같다. 동안 2주를 다녔는데 당연한 일을 차비까지 챙겨주셔서 쑥스럽다 하니 어머니께서 잘라 말씀하셨다. 당연한 일이라고 다 하는 건 아니다! 이럴 때마다 드는 각은 독일에서 며느리 노릇하기 참 쉽다는 것.


바바라는 이번에도 시어머니 댁 정원에서 꽃을 싹둑 잘라왔고, 나는 시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장미를, 아이는 엽서를 준비했다. 아이의 레퍼토리는 언제나 똑같다. 그래도 기뻐하신다. 어머니께서는 호수 건너편 산 꼭대기의 레스토랑에 점심 식사를 예약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독일에서 시부모님과 식사를 할 때는 언제나 시부모님이 계산하신다. 이것도 참 대단하다. 경제력을 끝까지 손에 쥐고 있어야 할 이유겠다. 그래야 자식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 반대 사례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나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까지 논할 필요도 없이.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니 꼭대기에 있는 레스토랑은 맛집인 모양이었다. 넓은 주차장이 만석이었다. 부산 범어사의 '감나무집' 뭐 이런 곳에 온 기분이 들었다. 야외에는 귀여운 염소들까지 있어 아이도 어른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염소 새끼들은 얼마나 귀엽던지! 시부모님 덕분에 견문이 넓어지는 즐거움.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작은 호수 티어제 Thiersee를 어떻게 알았겠는가. 시부모님 덕분에 독일의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독일의 병원 시스템을 살펴보는 즐거움도 컸다. 이래저래 부모님 덕을 보며 살고 있는 독일살이다.



p.s. 이번에 알게 된 몇 가지 사실.


-시어머니 고관절 수술비는 1500유로(시어머니는 3000유로인 줄 알았다고 하시며 기뻐하심. 수술비는 공짜가 아니었나 보다. 병원 입원비와 재활 클리닉은 공짜였음.)


-아버지 구급차 수송비는 700유로(5.1 첫날 시부모님 댁에서 병원까지의 10분 거리가 무려 700유로라고 본인들도 놀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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