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동안 생기라고는 찾을 수 없던 분이 단정하게 이발까지 하시고 새신랑이 신부를 기다리듯 시어머니와의 재회를 손꼽아 기다리고 계셨다.
시아버지께 가는 길에 들른 소도시 카페(위) 티어제여 안녕!(아래)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아버지가 계신 재활 클리닉으로 간 건 5월의 마지막 전날이었다. 그날의 정식 명칭은 예수 승천일. 예수께서 부활 40일 만에 하늘로 올라간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부활절 6주 후 목요일인이 날을 독일에서는 법정 공휴일로 정하고 있다. 우리에겐부활이나승천까지는 아니어도 시아버지가다시 구름 위를 걸으신 날쯤으로 기억될 것 같다. 병원에 입원하신 날로부터 꼭 30일째. 한 달 동안 생기라고는 찾을 수 없던 분이 단정하게 이발까지 하시고 새신랑이 신부를 기다리듯 시어머니와의 재회를 손꼽아 기다리고계셨으니까.
시어머니께는 전날 통화하며 나와 바바라가 짐 싸는 걸 도와드릴 테니 기다리시라 했지만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짐 싸기를 완료! 아이가 늦잠을 잔 데다 차까지 막힌다고 톡을 드리자 걱정 말고 천천히 와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셨다. 짐이 한두 개도 아니고 고관절 수술하신 분이 그렇게 부지런하셔도 되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그 와중에 남편은 한번 더 호수 너머 산 위로 차를 몰고 올라가 아이에게 염소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날 미션에는 분명히 염소가 없었는데. 시아버지가 계신 곳과 동선이 반대라 곧바로 출발한 것을 두고 남편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차만 타고 어른들따라다니느라 아이가 지루했을 거라고걱정하면서.
점심은 가는 길에 어느 소도시에서 먹었다. 나무랄 데 없이 작고 예쁜 곳이었다. 우리는 한적한 곳에 차를 대고 좁은 골목길들을 걸어 광장으로 향했다. 시어머니의 차 안에 있던 도로 가이드북에서 미리 검색했던 레스토랑은 손님이 별로 없었다. 맞은편의 이태리 식당에는 손님이 많았다. 우리도 이태리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시어머니가 수술을 무사히 마치시고 다시 걸으시고 다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은 맛있는 음식과 만나 두 배의 즐거움이 되었다. 오후의 커피는 다른 소도시에서 마셨다. 시아버지와 함께 두 분이 오래전에 10년 동안 휴가를 오시던 곳이라 했다. 한적한 소도시의 정원이 딸린 카페에서 가진 오후의 티타임. 시어머니는 옛날 카페 여주인과 담소까지 나누셨다.
점심을 먹은 소도시(위) 오후의 티타임 소도시 카페(아래)
정오인 12시에 티어제를 떠나 시아버지께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시아버지는 1층 로비의 메인 레스토랑 말고 2층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 중이셨다. 다른 분들의 식사를 방해하면 안 되니 한꺼번에 들어가지 말라고 우리를 안내한 담당자가 주의를 주었다. 시어머니가먼저 들어가셨다. 잠시 후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계신 두 분께 한 명씩 들어가 인사를 드렸다. 시아버지는 편안하고 안정되어 보이셨다. 말씀은 적었으나 소년처럼 기뻐하신다는 것을 안색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잠시 산책을 하고 돌아오겠노라 하고 우리는 재활 클리닉을 나왔다. 날씨까지 좋아서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 속을 다시 걷는 기분은 말로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사이 남편은 차로 돌아가 쉬는 편을 택했다. 운전을 해서 피곤했던 것보다 시어머니를 시아버지가 계신 곳까지 모셔다 드리기까지의 여정이 완료되어 긴장이 풀린 탓도 있었을 것이다. 열흘 후 두 분을 집까지 모셔다 드리는 마지막 미션도 남편 몫이 될 터였다. 아이는 염소를 못 본 것보다 파파와 같이 산책하지 못하는 것을 더 서운해했다. 그 서운함은 곧 고모와의 달리기로 해소되었다. 고모의 신발을 들고 도망가기. 고모와서로 간지럽히며 장난치기. 산책로의 오른편에는 고른 이랑 사이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어린 옥수숫대가 빼곡한 들판이, 이랑 사이로는 아이와 고모 바바라의 웃음 소리가, 왼편에는 흰 마가렛 꽃들과 보랏빛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었다.
산책에서 돌아온 건 1시간 후였다. 시어머니의 말대로 이제 두 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바바라는 시어머니를 위해 한 뼘도 안 되는 미니 독서등을 선물로 사들고 왔다. 시아버지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침대 모서리에 끼워놓고 책을 보시든지 일기라도 쓰시라고 말이다. 요즘 매번 나를 놀라게 하는 바바라. 저런 배려심을 지난 20년간 어디다 숨겨두고 있었던 걸까.시아버지 선물은 왜 없냐고 내가 옆구리를 찌르며놀리자 저분께는 자기 엄마가 선물이니 괜찮다고. 시아버지는아이가 들고 온 초콜릿을 받고 기쁨을감추지 않으셨다. 한 달 만에 예전처럼 기운을 차리신 모습을 보는 일이 무엇보다 좋았다. 두 분이 슈탄베르크의 홈 스위트 홈인 부헨벡으로 돌아오실 날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