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는 나의 진주

시아버지의 사랑법

by 뮌헨의 마리


핑스턴 휴일이었던 월요일은 사십일 만에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그리운 부헨벡으로 돌아오신 날!



월요일은 핑스턴 Pfingsten 휴일이었다. 우리말로 성령 강림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불리는 날. 바이에른은 이날부터 2주간 핑스턴 방학에 들어갔다. 7월 말 여름 방학 전까지의 마지막 방학이었다. 이날은 여러 모로 기억될 만했다. 사십일 만에 시어머니와 아버지가 꿈에도 그리던 부헨벡으로 돌아오신 날. 아침에 남편과 바바라와 아이와 나, 넷이 슈탄베르크로 출발할 때 내가 독일에서 처음으로 운전한 날. 독일에 온 지 1년 5개월 만이었다.


일요일 바바라 집에서 늦은 아침을 먹을 때였다. 앞으로 시어머니 댁을 방문할 때는 내가 운전을 하겠다고 선언하자 남편은 흔쾌히 승낙했다. 언제까지 미룰 것인가. 이번에 두 분이 갑자기 입원하신 일을 겪어보니 더 이상 미룰 일도 아니었다. 시부모님 댁은 시내에서 벗어난 호숫가라 운전이 필수다. 어머니는 팔순이시라 언제까지 운전이 가능하실 지도 알 수 없고. 뮌헨의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독일에서 운전이 처음이고 고속도로를 포함한 동선도 익혀야 해서 연습이 필요했다.


지금 시어머니의 정원은 아메리칸 뷰티!


그런데 시누이 바바라가 내가 운전하는 걸 반대했다. 바바라가 운전을 시작한 건 5~6년 전쯤의 일이다. 40에 담배를 끊고, 50에 운전을 시작했을 때는 많이 놀랐다. 60에는 무슨 일로 나를 놀라게 할지 기대 중인데, 싱글 생활을 접고 연애를 한대도 놀라지 않겠다. 바바라의 요지는 첫 운전에 고속도로는 무리라는 것. 연습 삼아 시내 주행부터 하다가 고속도로를 달려야 한다나. 한국에서 7년 동안 운전했는데? 서울에서는 매일 차로 한강 다리를 건넜고? 그래도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바바라 말도 일리는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다 바쁜 사람들 아닌가. 언제 시내를 주행하고, 언제 고속도로를 달리나. 기회가 올 때 무조건 운전대를 잡아야지. 그래서 양보하지 않았다. 어제 아침에도 바바라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한 손에 차 키를 들고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운전하면 안 될까? 어림도 없는 소리! 대쪽 같이 밀고 나갔다. 그래서? 때도 올 때도 훌륭하게 해냈다. 첫출발 때 이게 브레이크고 저게 악셀레이터지? 면서 바바라 간을 살짝 들었다 놓았던 멘트만 빼고. 그날의 운전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께 드리는 나의 깜짝 선물이 되었다.



두 분이 도착한 것은 월요일 오전 11시 30분.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 1시간 후였다. 원래는 남편이 모시고 오기로 했는데 동생이 너무 힘들다고 바바라가 SUV 택시를 예약했다. 그 돈은 보험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고. 2시간 반 거리의 택시비는 330유로. 남편의 토요일은 바빴다. 혼자 시부모님 댁에 가서 시아버지가 쓰실 환자용 침대를 1층 손님방에 세팅하고, 그 방에 있던 침대 겸용 가죽 소파를 서재로 옮겼다. 어머니 냉장고를 채울 치즈와 햄과 살라미, 과일 등은 미리 사놓았고, 빵과 쿠헨은 어제 아침에 준비했다.


시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창문을 열어 집 안을 환기하고, 정원의 야외 테이블을 닦고, 그 위에 하얀 테이블보를 깔고, 의자용 쿠션을 꺼내오고, 커피와 쿠헨을 올려놓는 일은 바바라와 아이의 몫. 남편과 나는 출입문에서 현관 사이의 정원을 손질했다. 먼저 꽃나무에 갈색으로 말라 붙은 꽃들을 떼어냈다. 시어머니가 집에 계실 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전의 햇살이 꽤 따가웠다. 부지런한 시어머니가 무리하지 않으시게 간단한 정원일을 인수받을 궁리로 바쁜 며느리.



시아버지는 택시에서 내린 후 보조기를 밀며 걸어 나오셔서 우리를 놀라게 만드셨다. 익숙하던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지난 40일이 없던 시간 같았다. 시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으신 듯했다. 거실과 서재와 정원을 하나하나 돌아보시며 감탄사 '멘쉬!'를 반복하셨다. '맙소사! 내가 집으로 돌아오다니. 다시는 못 올 줄 알았는데!' 그리고 우리를 한 명 한 명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너희 모두에겐 좋은 신발을 선물 하마!'


돌아보면 아버지께 중요한 것은 신발이었다. 좋은 신발은 건강만큼, 훌륭한 옷차림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했다. 아이의 인사를 받고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너한테 '할아버지'라는 소리를 들으니 참 좋구나!'(남편 형의 딸은 두 분을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자기 부모가 하듯이 두 분의 이름을 부른다.) 표정은 온화하고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사람이 나이 구십에도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신 시아버지의 그날의 멘트도 감동이었다. '카타리나는 나의 진주 Perle.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그리고 어머니를 조용히 손짓해 부르시더니 입을 맞추셨다. 두 분의 귀가를 열정적으로 기다리며 앞다투어 피어난 진분홍 장미들, 아메리칸 뷰티들의 고요한 소란 아래서.


시부모님 댁 앞 골목, 그리운 부헨벡 7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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