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버터플라이>에 기대는 마음

시아버지, 다시 쓰러지시다

by 뮌헨의 마리


해는 지고 어두운데, 아이는 할아버지께 <어린 왕자>를, 시누이는 음악에 맞춰 아이와 춤을,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저녁을 떠먹여 드리던 그 밤. 나는 시아버지 침대 옆에 말없이 앉아 그분이 좋아하시는 푸치니의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를 함께 들었다.


아이가 할아버지께 읽어 드린 독일어판 <어린 왕자>. 그리고 시어머니의 변함 없이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



어제는 오랜만에 슈탄베르크의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찾아뵈었다. 2주 전 금요일이었다. 평소대로 금요일마다 두 분을 방문하기 위해 오후 3시 퇴근 후 서둘러 집으로 왔다. 아이는 금요일마다 학교가 일찍 끝나서 먼저 집에 있었다.


"늦으면 안 돼. 빨리 우반역으로 나와. 할아버지께서 기다리시잖아!"


아이와는 우리 동네 지하철 우반역에서 만나기로 한 후 시어머니께 왓츠앱을 보냈다.


"할머니! 저희 지금 출발할게요."


표를 사기도 전에 시어머니의 답이 먼저 도착했다.


"지금 할아버지가 독감이 심하시니 오늘은 안 오는 게 좋겠구나. 너희에게 감기 옮기면 큰일이잖니. 너도 새벽부터 일하느라 피곤할 테니 푹 쉬고, 다음 주에 보자꾸나."



시아버지가 몹시도 사랑하시던 물건들. 수동식 시계들, 도자기 피구어들 그리고 샹들리에도 주인의 눈길을 잃어가고 있다.



남편의 퇴근을 기다려 저녁 8시에 안부 전화를 드렸을 때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우리와 왓츠앱을 한 뒤에 시아버지께서 혼자 침대에서 일어나시다 쓰러지셨다. 시어머니가 우편물을 받으러 나가신 그 짧은 시간에! 그것이 시어머니를 놀라고, 화나게 만든 것이다. 며칠 동안 독감으로 자리에 누워계셨으니 다리에 힘도 없으셨을 게 아닌가. 어린애도 아니고, 왜 잠시를 못 기다리셨단 말인가. 하소연을 털어놓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반반이었다.


그날 시아버지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셨다. 어머니 혼자 쓰러지신 시아버지를 일으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수년 전 여행지에서 넘어지셔서 한쪽 골반뼈를 수술하셨다. 시어머니는 그것을 염려하셨다. 아버지는 2주간 병원에 계셨다. 다행히 크게 다치시진 않으셨지만 두 번 다시 걷지 못하실 만큼 약해지셨다. 의지도 꺾이고, 기력도 후퇴했다. 만으로 92세 생신을 막 지난 때였다. 2주 동안 매일 아침 8시에 어머니가 병원으로 출근하셔서 시아버지의 아침과 점심 식사를 도왔다. 재활 클리닉에 자리를 신청해놓고 기다리는 동안 잠시 분의 보금자리인 부헨벡 7번지로 귀가하신 것이다.



시아버지의 빈 자리. 이제는 우리와 함께 식사도 못하시고, 아이와 같이 영화도 못 보신다.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단 소식을 듣던 날 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병원에 계실 때는 시어머니가 독감에 걸리시는 바람에 병문안도 못 갔다.그러므로 오랜 기다림 후의 방문이었다. 시누이 바바라도 같이 갔다. 아이는 침대에 누워계신 할아버지를 위해 큰소리로 책을 읽어드렸다. 어릴 적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병환으로 사랑방에 누워만 계셨던 우리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께 언니와 내가 번갈아가며 책을 읽어 드렸다.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이었다. 한글은 그렇게 깨쳤다. 시아버지가 기뻐하시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손톱을 깎아 드리던 내 머리도 몇 번. 그 옛날 우리 할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해는 지고 어두운데, 아이는 할아버지께 <어린 왕자>를, 시누이는 음악에 맞춰 아이와 춤을,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저녁을 떠먹여 드리던 그 밤. 나는 아버지 침대 옆에 말없이 앉아 그분이 좋아하시는 푸치니의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를 함께 들었다. 시아버지의 아버지가 음악을 몹시 사랑하는 분이었다고. 당신 어머니와 함께 간 오페라 하우스에서 처음 보았던 공연이 소년이었던 시아버지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는데 그 오페라가 푸치니의 <마담 버터플라이>였다고. 나는 소망한다. 푸치니의 아름다운 마담과 아버지의 영원한 '레이디' 시어머니와 우리 세 명의 아가씨들, 바바라와 나와 우리 아이가 곁에 있는 한 생의 의지를 게 놓지는 하실 거라고. 그래서 안 된다고.



좋아하시던 책도 영화도 발레도 못 보시게 된 지금 시아버지의 유일한 구원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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