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의 눈물

다시 부헨벡 7번지로

by 뮌헨의 마리


요양원으로 가신 후 시아버지는 생의 의욕을 잃으신 것처럼 보였다. 당신의 집이면서 천국이었던 부헨벡 7번지로부터 영원히 떠났다는 사실이 당신의 의지를 마른 나뭇가지처럼 꺾어 놓은 모양이었다.





지난주 요양원에 계신 시아버지를 뵈러 갔을 때였다. 갑작스레 집을 떠나셔야 했던 아버지는 생각보다 심리적 타격이 크셨는지 사이 두 눈은 생기를 잃었고, 양볼은 깊숙이 파여있었다. 더 큰 문제는 누가 봐도 생의 의욕을 잃으신 것처럼 보였다. 당신의 집이면서 천국이었던 부헨벡 7번지로부터 영원히 떠났다는 사실이 당신의 의지를 마른 나뭇가지처럼 꺾어 놓은 모양이었다. 그런 시아버지를 보며 시어머니 역시 상심과 회한이 크신 듯했다.


그날도 금요일이었다. 내가 칸티네에서 마지막으로 일하던 날이었다. 퇴근 후 집에서 기다리던 아이를 데리고 S반을 타고 슈탄베르크로 . 어머니가 차로 우리를 데리러 나오셨다. 시아버지가 계신 곳은 슈탄베르크 인근 작은 마을의 양로원 겸 요양원이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처음 본 광경을 잊을 수 없다. 석양이 비스듬히 비치던 시각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로비에 내리자 휠체어에 앉은 노인들이 사위어가는 빛줄기 속에 줄지어 앉아 있던 모습이라니. 그 낯선 풍경을 볼 때의 생경함이라니.


시아버지는 2인실의 안쪽 침대에 창을 등지고 누워계셨다. 방 안의 공기는 건조하고 메말랐다. 아이를 보시자 시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의사의 검진으로 방을 나와야 했을 때는 눈 쌓인 요양원 산책길을 걸었다. 석양을 등지고 선 채로 어머니가 말했다. "저 양반이 저대로 못 일어나시고 병상에서 마지막을 맞이하셔야 한다면 절대로 여기서 보내지는 않을 다. 다시 집으로 모셔야지. 그래야 편히 눈을 감으시지..." 혼잣말인 듯 마지막 문장은 잘 들리지 않았다. 산책길 양쪽으로는 녹지 않은 흰 눈이 소복했고, 어머니의 두 눈자위는 노을만큼 붉었다.


요양원은 크고 넓고 쾌적했다. 건물 안도, 밖도, 복도도, 병실도, 그 흔한 냄새조차 없었다.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는 친절했고, 같은 병실을 쓰는 노인은 조용했다. 그럼에도 적적하고 고적했다. 직사각형으로 지어진 2층 건물 안쪽의 넓은 정원에도 고독과 적만만이 바람처럼 떠돌고 있었다. 어머니는 하루 두 차례 시아버지를 방문, 세 끼 식사를 도왔다. 어머니 댁에서 요양원까지는 차로 10분. 오전에는 시아버지와 요양원에 계시다가 오후에는 집에서 쉬고 오후 늦게 다시 오셨다.





칸티네를 그만둔 후로도 나는 시아버지를 방문하지 못했다. 슈탄베르크 역에서 그곳까지는 버스로 15분쯤 걸린다. 뮌헨에서 가도 1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멀지도 어렵지도 않다. 하지만 예상에도 없던 코로나에 발목을 잡혔다. 현재 유럽에서 코로나는 빠른 속도로 확산 중이다. 아이의 독일 초등학교에서는 파싱 방학이 끝날 무렵 중국, 한국, 이란, 이태리 방문 여부를 전수 조사했다. 현재도 학교는 연일 코로나 관련 공문을 보내는 중이다.


이번 주 뮌헨의 한글학교는 임시 휴교를 결정했다. 뮌헨의 이미륵 한국문화공간에서는 주말에 계획 중이던 <기생충> 상영을 연기했다. 이 사태가 어디까지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난주 요양원에 도착했을 때 간호사 한 명이 강한 의혹의 눈초리로 요양원 입구를 들어서는 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던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밖은 전염병, 안은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인들. 이 와중에 외부에서 아시아 여자가 방문했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시아버지 방문 문제로 어젯밤 시어머니께 왓츠앱을 보내자 주말에 시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오기로 했다는 답을 받았다. 어떤 상태이신지, 집으로 모셔오기로 한 배경에 대해서는 아직 듣지 못했다. 아버지께도 내게도 결정은 다행이었다. 시아버지를 뵙고 온 후로 병실을 나설 때 보았던 그분의 눈물이 계속 내 마음을 적셨기 때문이다. 그날 어머니는 병실을 먼저 나가셨다. 담요 하나로는 시아버지가 밤새 추우실 거라며 데스크에 이불을 요청하러 가신 것이다.


시아버지의 머리맡에 라디오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병실을 나서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작별 인사를 하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강건하게 버티셔야 한다고. 그러자 언제나처럼 너희들만 보면 기쁘고 힘이 난다고 하셨다. 언제 오냐고. 곧 다시 오겠다고. 그리고 내가 말했다. 아이에겐 할아버지가 필요하다고, 우리 곁에 오래 계셔달라고. 당신은 훌륭하신 할아버지라고 말하고 돌아서다가 그분의 눈에 고이는 맑은 눈물을 보았다. 밖은 캄캄한 2월의 마지막 주였다. 봄도 멀지 않았다. 봄이 오면 모든 것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아니면 왜 봄이겠는가.



오늘 아침 하늘은 봄빛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