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꼼짝없이 아팠다. 모든 병에 전조가 없을 리가 없다. 핑스턴 방학 동안 알바에서 돌아오면 온 몸이 무거웠고, 오후에 시어머니 댁에라도 가는 날엔 집에 있는 아이를 데리고 기차 시간에 맞추느라 도착하면 지쳤다. 한 주쯤 전부터 화장실을 자주 가고, 나중에는 불쾌한 통증. 이게 뭐지?방광염 같았다.
한국에 있을 때도 독일로 이삿짐을 보낼 때 너무 피곤했던지 비슷한 증세가 있었는데 며칠 쉬었더니 나은 적이 있었다. 한국 아닌가. 옆에 언제라도 달려와 줄 언니가 있었고, 언제라도 드러누워 아픈 척할 수도 있었다. 먹거리는 문제도 아니었다. 먹고 싶은 건 언니에게 사 오라고 시키고, 아이 밥도 언니가 해결해준다. 심지어 청소와 빨래까지. 나의 천사.
여기는 뮌헨. 아프다고 달려와 줄 언니도 없고, 맨날 그 나물에 그 밥이 뭐가 맛있냐는 엄마의 밥상도 없다. 정말 그립다. 진짜 그 나물에 그 된장에 그 미역국 그리고 솜씨 좋게 구운 그 생선 하며. 내가 독일에서 생선에 맛을 들이지 못하는 이유다. 주로 오븐에 익혀서 소스를 뿌려 먹는 생선 요리는 너무 부드러워 먹을 때마다 겉은 바싹하고 씹는 맛이 일품인 엄마의 생선구이가 생각나는 것이다.
바바라가 약국에서 사 온 순한 방광염 약
아, 먹는 얘기가 나오니 본론을 잊고 말았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이었다. 2주 방학의 마지막 주말. 방학만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책 읽고 글 쓰는 생활로. 시어머니 방문도 주 1회로 줄이고, 밀린 착한 며느리 노릇을 한꺼번에 해결 하느라 피로했을 내게도 휴식을 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몸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런 게 바로 강제 휴식. 맛있는 밥상만 빠진.
생각해 보면 주말 내내 누워 있으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남편 시켜서 한국 식당에서 음식을 사 오라고 하면 됐을 텐데. 일요일에 힘든 몸으로 세 시간을 병원에 다녀오느라 진을 다 빼지 말고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유유미 (Frauenhoferstr.11)에 가서 뜨끈한 돌솥 비빔밥에 고추장을 듬뿍 넣어 먹었더라면.(이 글을 쓰며 검색했더니 배달 서비스도 되더라는!)
독일에는 언니 대신 착한 시누이 바바라가 있었다. 내가 방광염인 것 같다고 하자 토요일 점심때 약국인 아포테케에 들러 약과 방광염 차를 사 왔다. 대놓고 이름이 '방광염 차(Blasentee)'라니, 세상에! 이런 게 있다는 걸 안 게 이번 투병의 의의다. 한국 지인들에게 나 방광염인가 봐, 흑흑, 했더니 웬걸 대부분이 걸려봤단다. 이번 한국 여행의 선물은 정해졌다. 손만 드시라.
병원에서 처방했던 그러나 방광염 초기인 내게는 너무 강했던 약
바바라가 사 준 순한 약과 차로 금세 방광염 증세는 나았다. 그런데 문제는 일요일에도 몰골이 말이 아닌 나를 본 바바라가 상시 문을 여는 중앙역 근처의 응급센터 (Elisenhof Klinik, Prielmayerstr.)로 가자는 것이다. 성의도 고맙고 궁금도 해서 따라가 봤다. 여기를 안 것이 두 번째 의의다. 뮌헨에 살고 계시거나 여행 오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문제는 거기서 주는 항생제를 먹고 죽다 살아났다. 열이 40도까지 올랐다. 원래 열은 없었는데. 의사가 이거 먹고 열이 39도까지 오르면 다시 와야 한다고 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물론 다시 갈 힘도 없었다. 두 번 먹은 후 항생제를 끊고, 몸을 시원하게 해서 열을 내렸다. 항생제의 무서움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참고로 바바라가 처방전을 들고 가서 약을 받아온 곳은 뮌헨 중앙역 근처 아포테케다. Pharmacy4 munich/Internationale Hauptbahnhof Apotheke (영업시간은 월-금 07:00~20:00/토요일 08:00~20:00) 그날은 일요일 오후 2시경이었는데 오픈.
월요일 아침에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알바도 갔다. 알바 후 아이를 일찍 데리고 집으로 오자 죽을 맛이었다. 머리는 왜 그리 무겁고 아프던지. 방광염 증세는 깨끗이 사라지고 없는데. 모든 것은 과로였다. 갱년기라 조심해야 했다. 오랜만에 연락 온 간호사 친구의 첫 질문도 어디 아픈 데는 없냐,였는데. 건강을 너무 과신하거나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나 보다. 하도 누워만 있었더니 새벽에 잠이 깨서 다시 잠들지 못했다. 아파 보니 알겠다. 아프다는 것은 고독하고 무섭고 고립되는 것이다. 안 아파야 글도 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