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의 첫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아침은 나의 잃어버린 시간들과 만나는 시간.
유월의 마지막 날인 어제는 미리 예고된 폭염의 날이었다. 이미 그 주에 독일도 35~36도를 찍은 뒤끝이라 걱정이 더했다. 레겐스부르크에계신 새어머니 방문도 한 주 연기하고 종일 외출을 삼갔다. 지난주 내내 폭염으로 머리가 묵직한 일사병 전조를 달고 살았기에.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토요일 만난 현경 맘도 똑같은 증세로 고생했다고. 내 생애 두 번째 유럽의 화염 속을 지나는 지금 그때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라졌나.
2003년의 여름을 지금도 기억한다. 나는 한 해 전에 결혼을 했고, 아이는 없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동북쪽으로 70킬로 떨어진 작은 대학 도시 마르부르크에 살던 때였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시내 중심가에 있었다. 스페인풍으로 창문이 길고 천장이 높은 오래된 돌집이었다. 화랑처럼 긴 복도를 사이에 두고 6개의 방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공간을 거실로 사용했다. 부엌은 작았으나 식품 저장고가 딸려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한여름에도 서늘했다는 점.
당시만 해도 독일에는 에어컨을 보기 힘들었다. 선풍기도 없었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필요 없을 만큼 여름은 축복의 계절이었다. 낮과 밤의 경계가 옅어지고 눈부신 햇살이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비추었다. 2003년 그해엔 이례적으로 선풍기가 품절이란 소리가 들렸다. 며칠 동안 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복도로 나와 돌바닥에 눕기를 여러 번. 자고 나면 남프랑스와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지에서 폭염으로사망자 수가 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올해는 우리가 뮌헨으로 온 지 두 해째. 두 번 다 우리가 독일로 온 지 이듬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16년 전과 비교해 그 사이 독일에도 에어컨 보급이 늘었다. 은행과 관공서는 물론 카페나 레스토랑, 일반 가게나 서점까지. 작년 여름에도 한창 무더웠던 날 시내의 후겐두벨 서점에 피서를 간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에어컨이 집집마다 보급될 정도는 아니다. 학교 사정도 비슷하다. 무더위가 계속되는 날엔 정규 수업이 끝나는 12시 반에 하교를 권장하는 정도. 오후엔 운동에서 하는 물놀이가 다였다.
다행히 새어머니 댁에는 수년 전에 에어컨을 달았다. 그때는 시아버지가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이시던 때였다. 사방이 통유리에 천정까지 유리라 자동 덧문 장치에도 불구하고 더위에 취약한 구조였다. 문제는 가든이 딸린 정남향의 시어머니 댁. 무더위가 걱정되어 여쭈니 덧문으로 햇살을 차단하면 견딜만하다 하셨다. 독일의 부모님들은 평소에도 물을 많이 드신다. 좋은 습관이다. 나 역시 낮에는 창마다 블라인드를 치고, 밤에는 창문을 열어 맞바람 효과로 견뎠다. 그럼에도 어젯밤엔 두 번째로 열대야로 잠을 설쳤다.
오늘은 칠월의 첫날. 뭐든 처음은 반갑다. 이른 아침 카페에 출근해서 글을 쓰는 중에 도착한 '행복한 칠월의 첫날'이 되기를 바란다는 지인의 인사도 반갑고, '팔월에 한국에서 만나자'는 양희 언니의 톡도 반갑다. 오늘은 공식적인 무더위의 마지막 날. 오늘 밤과 내일 반가운 비 소식과 함께 기온도 30도 아래로 떨어질 듯하다. 참고로 독일엔 장마도 태풍도 없다. 칠월의 첫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아침은 나의 잃어버린 시간들과 만나는 시간.나의 폭염을 견디는 방법은 역시 책과 글쓰기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