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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폭염 끝은 비

그리고 맑음

by 뮌헨의 마리


끝을 아는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다. 복날처럼 무더웠지만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다음 날이면 이 더위와도 작별이니까.



어제는 오전 내내 폭염의 뒤끝을 보여주는 날씨였다. 알바하는 곳의 주방을 한 발짝만 나오면 출입구와 일직선인 뒤뜰 문이 협력하여 맞바람이라도 만들어 내지만 동굴 속처럼 쑥 들어간 주방 쪽으로는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요일 근무자는 나뿐이라 가게 주인과 둘이서 일해야 했다. 주 5일 중 가장 한산한 날이라 다행이었다. 젊고 빼빼하고 강단 있는 가게 주인은 더위를 탈 것 같지 않은 데도 한 덩치 하는 나보다 어제는 더위를 더 못 참았다.


나도 덥긴 했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다. 어제 하루만 버티면 1차 불볕더위가 누그러질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틀도 아니고 하루만 더 참으면 되는 것이다. 누가 아는가. 만 하루가 아니라 오후에라도 당장 비가 쏟아질지. 기상 예보에는 한밤중에나 비가 온다고 우산이 그려져 있었지만 말이다. 끝을 아는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다. 복날처럼 무더웠지만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다음 날이면 이 더위와도 작별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내가 사는 곳이 독일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주말에 우리 집에 다녀간 조카의 생생한 이태리 폭염 보고도 한몫했다. 조카는 6월 핑스턴 방학 때 1주일 간 나폴리를 다녀왔다. 조카의 첫마디. '이모! 나폴리는 사람 살 데가 못 되는 거 같아요!' 물론 날씨만 보고 하는 말이다. 유월의 로마 날씨도 장난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같은 시기에 로마에서 민박업을 하는 조카의 지인이 잠시 뮌헨에 들렀다가 조카에게 했다는 말. '뮌헨이 이렇게 살기 쾌적한 곳이었어?' 3년 전 칠월에는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남쪽 바닷가에 남편의 새어머니 초대로 가족 휴가를 갔다가 연일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놀랐던 기억도 새롭다. 내가 겪은 스페인의 여름이었다.



어제는 알바가 끝나기도 전에 짙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바람 소리에 빗소리가 끼어들다가 말다가 했다. 가게 창문에 드리웠던 블라인드가 바람에 차르르르, 레인트리 악기 소리를 냈다. 바람이 지나가는 곳은 뭐든지 각각 다른 소리가 났다. 추르르릅, 가게 뒤뜰의 손바닥 만한 녹색잎을 지나는 소리는 듣기만 해도 가슴속이 서늘해졌다. 아이를 데리러 가지 않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날 푹신한 방석을 깔고 끼고 안고 발코니에 앉아 책을 읽는 맛이라니! 1시간의 독서는 꿀맛이었다.


오후 4시.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율리아나 할머니를 만났다. 학교 앞에서 트람을 기다리는데 트람은 그냥 가고 6인승 노란 택시가 우리 앞에 서더니 트람 승객은 타라고 했다. 이런 일이? 율리아나 할머니가 대형 택시 앞쪽에서 전두지휘하시는 덕분에 우리가 내릴 다음 정거장에 무사히 내렸다. 바람은 불고 날은 점점 시원해지고 있었다. 할머니가 우기시는 바람에 율리아나 집에도 올라갔다. 율리아나 엄마가 재택근무하는 날. 방해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타 주신 독일 인스턴트커피는 썼다. 조만간 한국의 맥심 커피믹스를 한 번 대접할까 보다.


저녁에는 비가 오락가락했다. 그로부터 12시간 후. 새벽 4시에 드디어 세찬 빗소리가 났다. 오, 할렐루야! 열어 놓은 창문을 환기창으로 바꿔놓고 아이의 이불을 덮어주고 왔다. 핑스턴 방학 동안 읽어주던 멜빌의 <모비 딕>을 끝내고 우리는 어제부터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기 시작했다. 아이도 나도 여러 모로 가슴 아팠던 모비 딕. 오만과 편견에서는 어떤 감정과 대면할지 기대 중이다. 오늘 뮌헨의 날씨는 맑았다가 흐렸다가를 쉼 없이 오갔다. 기온은 30도 아래로 떨어졌다.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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